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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알루아 아서

죽음 인도자
알루아 아서가 삶의 마지막 의식에 대해 카일라 마셜과 이야기 나누다.







Photography by Kanya Iwana.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 라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그래서 결국 죽음 인도자가 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며 알루아 아서는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완전히 번아웃 됐다고/심신이 완전히 소진됐음을 느낀 그녀는 한숨 돌릴 생각으로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일 뻔 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는데 그날 그 사건 이후에 버스에서 만난 어떤 승객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암에 걸렸다는 그 여자는 알고 보니 같은 날 알루아를 칠 뻔했던 차에 타고 있던 여자였다. 그로부터 고작 두세 달 후, 아서의 형부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아서는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언니가 기댈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돼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자기 자신도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터득해나가야 했다. “왜 해답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걸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돈을 얼마를 내라고 해도 낼 텐데, 하며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던 기억이 나요.”라고 알루아는 말한다.

그로부터 1년 후, 고잉 위드 그레이스(Going with Grace, 품위 있게 떠나기)가 탄생했다. 아서의 이 회사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죽음 인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혹은 ‘죽음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정도 제공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오는 법에 대해선 배우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법에 대해선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갈 때 그 머리맡을 지키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교육을 받아야겠죠.”

 

성장기에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죽음에 대해 언제나 편안하게 느꼈나요?

저는 죽음과 친해지는 법에 대해 배워야했어요. 형부의 죽음 이전에는 충격적인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 했어요. 그 다음은 [쿠바의] 버스에서 만난 여자였죠. 그 여자는 저보다 두 살 밖에 많지 않았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구나. 이젠 정말 죽음이라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겠구나. 저한테는 도움이 됐어요. 왜냐하면 당시에 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삶을 돌아볼 계기로 삼았죠.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을 해보았죠. 만약 이 병으로 내가 죽는다면―우리, 솔직히 인정하기로 해요, 우울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았나, 나는 내 삶을 통해 무엇을 이루었나, 나는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 마치 죽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커다란 질문들을 바라봄으로써 저의 병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병을 이기는 법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당신의 동영상 중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살아있음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게 있더군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막 생명이 다 한 육체를 보고 있으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요해요. 우리는 알죠. 이제 그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말도 더 할 수 없다는 걸.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다신 그 누구도 만질 수 없죠. 다시는 조카를 바라볼 수도 없고 조카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없죠. 오렌지를 하나 더 먹을 수도 없어요. 내게 주어진 삶 안에서 그런 것들을 할 땐 그 순간에 정말 오롯이 존재할 수 있고, 훨씬 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요. 살아있음을 정말 강렬하게 확인할 수 있죠. 왜냐하면 아, 나는 진짜로 아직 살아있구나, 생각하게 되거든요. 우리에게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도 상기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러니 지금 이걸 해야겠다, 저 남자랑은 헤어져야겠다, 피지로 떠나야겠다.

당신은 어떤 죽음을 원하나요?

웬만큼은 늙어서 죽고 싶지만 너무 오래 살고 싶진 않아요. 사는 날까진 보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원해요. 그러다 죽을 때가 됐을 땐, 내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좋고, 얼마간 살았던 내 집의 데크 위라면 더 좋겠죠. 물론 야외였으면 좋겠어요. 나를 둘러싸고 황혼이 지고 있다면 좋겠죠. 가족들이 곁을 지키고 있길 바라지만 아무도 나를 만지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게 하면 저를 땅에 묶어놓게 될 것 같은데 저는 마음껏 날아가고 싶거든요. 유향 냄새도 좀 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와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급히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냥 잔잔히 흐르기만 하면 좋겠어요. 하늘의 색깔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감상하고 싶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쯤엔 이미 그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고 그들이 내 삶을 얼마나 충만하게 해주었는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내겐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고 말해 준 다음일 거예요. 그리고 내가 죽는 순간, 혹은 내가 더 이상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으면 그들이 박수를 쳐줬으면 해요.

“우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오는 법에 대해선 배우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법에 대해선 배우지 않습니다.”

죽음의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이른 나이는 몇 살일까요?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삶을 마감하는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네, 18세까진 아이들의 선택에 부모의 책임이 커요. 그러니까 그 시점 이후부터, 특히 자녀들이 대학에 가거나 독립해서 자기 명의의 은행 계좌[반드시 만들어야 해요]를 만들 때부터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저는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한 개념을 청소년기에 심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그들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아준다기보다는 좀 더 신중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평범한 보통 사람이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해요. 일단 각자 자신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걸 시작으로 그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기 시작할 거예요. 누가 나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줄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생명 유지 장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무엇일까? 저는 이번 코로나19라는 판데믹/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어딜 가나 산소 호흡기에 대한 얘기를 하거든요. 나의 시신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생각해야겠죠. 어떤 식의 장례 형태를 원하는가? 어떤 식의 방향 제시도 다 좋아요. 작약 대신 해바라기를 원한다고만 말해도 장례식의 테마가 달라지니까요. 반려동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도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유언장이 있나요, 아니면 신탁이 있나요? 있다면 어디에 두었나요? 사람들은 이런 걸 숨겨두는 경향이 있고 결국 아무도 찾지 못 해요. 나의 모든 자산도 명시해야죠. 내 은행 계좌에 연계된 사람은 누구인지, 은퇴자금 계좌는 어디에 있는지, 생명 보험은 있는지? 핸드폰, 컴퓨터의 비밀번호는 무엇이고, 온라인 뱅킹과 이메일의 비밀번호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종이에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이미 죽음에 대한 교육이 시작됐다고 봐도 좋아요.

만약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당신의 죽음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사람들―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고 당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애써야 해요.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접근인데 사실 우리 문화 자체가 그래요, 그래서 모두가 힘들죠. 우리는 우리가 공동체에 속한 인간이란 것보다 독립적인 인간을 너무 강조하는 면이 있어요.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죽을 거고 우리의 공동체는 당신이 여기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당신의 삶을 정리할 책임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죽음을 앞당기진 않는다. 죽음은 이미 오고 있다. 그저 죽음이 우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준비를 갖추고 있도록 도울 뿐이다.’라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죽음을 앞당기진 않는다. 죽음은 이미 오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죽음을 앞당기진 않는다. 죽음은 이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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