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월릿』을 세 차례 출간하는 와중에도 올슨은 미술 전시회 큐레이팅, 영화 제작, 강연(너무 반응이 좋아 지난해에 ‘출판업에 대한 재고’라는 강연이 책으로 나왔다) 등 끊임없이 골치 아픈 일을 벌였다. 2018년에 그녀는 포르투갈 리스본 외곽의 포도원에 위치한 185제곱미터 크기의 창고를 구입, 개조해 작업실 겸 생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뉴욕이나 런던이라면 콧구멍만 한 공간을 겨우 구할 돈으로 무엇을 누릴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정신없이 보낸 지난 5년간의 생활을 접고 오슬로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격리 생활을 하는 듯 마음이 답답했다.” 그녀가 말한다. “친구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조금 외롭긴 해도 내겐 잘된 일이다. 몇 달 동안 내 감정을 마주하며 균형을 되찾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자연이 풍부하다. 오슬로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5분만 가면 숲이다.”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규칙적인 산책에 올슨도 매력을 느꼈다. “걷다 보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그녀가 말했다.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그녀는 이 기회를 활용해 오슬로에 ‘국제 패션 연구 도서관’을 개관하는 새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이 시설은 단행본, 잡지와 더불어,도서관에서 일반적으로 외면하는 룩북, 카탈로그, 광고 포스터 등 상업 출판물을 아우르는 패션 인쇄물의 저장소를 표방한다. “홍보물 역시 패션 업계의 본질적인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올슨이 말한다. “창조성은 상업적 측면에 크게 의존한다.”
올슨이 멘토로 여기는 문화 평론가이자 뉴욕의 음악 평론가 스티븐 마크 클라인이 수집품을 기증했다. 그는 컨테이너 하나를 가득 채운 출판물을 선적으로 오슬로에 보내왔다.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 미술, 건축, 디자인 박물관이 도서관 공간을 내주었다. 2020년 10월에 개장한 디지털 도서관은 5천 종 이상의 출판물을 소장하고 있지만 판권 문제로 모든 페이지를 읽을 수는 없다. 실제 도서관은 올봄에 개장할 예정이며, 〈꼼데가르송〉, 〈프라다〉, 『아이디 매거진』 소속 명사들을 비롯해, 올슨이 구성한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패션 인쇄물을 수집하거나 패션 저널리즘의 혁신을 위해 분투하는 사명을 올슨은 ‘책임’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문화 여건에 좌절하는 청소년은 많아도 상황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판단하는 청소년은 거의 없다. 나는 그녀에게 이 문제를 그토록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느낀 불만을 해소하고 싶었다. 어릴 때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패션 도서관을 만드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녀가 설명한다. “나는 내 동료, 독자, 특히 내 주위의 젊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낀다.”
“감당해야 할 것이 많을 텐데.” 내가 말했다. “감당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작은 침실 창밖의 잿빛 노르웨이 하늘을 내다보았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생각을 바꿨는지 그냥 이렇게만 덧붙였다. “진짜 그렇다.”
열세 살에 편집장이 되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어린애답게 천진난만했다. 그 나이에는 다행히도 패션 산업과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꽤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당시의 나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잃을 게 없으니까. 이제 나도 스물한 살이 됐으니 더 이상 어린 나이를 핑계 삼을 수 없다. 그 당시에는 눈만 뜨면 나가는 게 전부였다.”
올슨은 나이를 빼앗긴 기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항상 완벽히 통제해온 것 같다. 그녀는 어린 나이가 유용할 때 나이를 이용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자 겨울 코트처럼 나이를 훌훌 벗어던졌다.
2018년에 〈구찌〉의 지원으로 올슨에 대한 「유스 모드Youth Mode」라는 단편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리뷰』의 출간과 18세에 사임한 그녀의 결정을 연대순으로 기록한다. 여기서는 미디어에서 흔히 드러나지 않는 올슨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자지러지게 웃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욕조에 앉아 친구들과 장난치는 그녀. 평범한 10대의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 언론에 노출될 때 일부러 진지한 이미지를 만든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이라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전화 저편에서 정체 불명의 목소리가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하는 순간에 영화는 끝난다. “어릴 때 성공을 한 대가로 뭔가를 놓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나?” 전화는 끊기고 질문은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나는 올슨에게 이 장면 얘기를 꺼냈다.
“영화에서 당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할 수 있나?”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가족, 친구, 업계의 동료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너무 빨리 커버렸거나 어린 시절을 놓친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느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멋진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의 일부를 보았고,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굉장한 대화를 나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다른 길을 원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