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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
트라오레

미술계의 다음 큰 흐름은 갤러리스트다.
글 by Kyla Marshell. 사진 by Emma Trim. 스타일링 by Jèss Monterde.

  • Arts & Culture

미술계의 다음 큰 흐름은 갤러리스트다.
글 by Kyla Marshell. 사진 by Emma Trim. 스타일링 by Jèss Monterde.

해나 트라오레 갤러리의 첫 인상은 뉴욕 다운타운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예술 공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햇살이 커다란 유리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공기는 고요하다. 그 자체로 미술 작품으로 보이는 흰색 부클레 직물로 덮인 소파가 공간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갤러리의 진정한 면모가 나타나는 벽면은 색상으로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갤러리의 첫 전시 「색조(Hues)」는 반짝이는 노란색,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청록색,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나타내는 패턴 등 다양한 무지개 색조들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벽 한 면은 녹색, 다른 면은 노란색과 사탕수수 빨간색의 두 가지 색상이 칠해져 있다. 「색조」의 모든 작품들은 유색인종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것은 마케팅이나 일회성 홍보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소외된 예술가들이 중심에 위치한다.

스물일곱 살의 트라오레는 토론토에서 자랐다. 캐나다인 백인 어머니는 섬유 예술가이자 컬렉터였으며 아버지는 말리의 이민자였다. 그녀의 가정은 예술을 옹호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창조적 관심사를 탐구하라고 격려했다.1 그녀가 2018년 뉴욕 현대 미술관의 큐레이터 인턴에서 단 몇 년 만에 갤러리의 주인이 된 과정을 듣다 보면 몇 가지 단계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를 짧게 설명하자면, 그녀에게 발생한 시련이 계기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트라오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인종차별을 겪었다. 2020년 4월 뉴욕 포토그라피스카에서 해고된 후 그녀는 자신의 갤러리를 열겠다는 꿈을 되살렸다. 뉴욕 북부에 위치한 스키드모어 컬리지에서 보낸 학창 시절, 그녀는 졸업논문을 위해 미칼린 토머스와 케힌드 와일리데 작품을 포함하여 야심 찬 전시를 기획했다.2

예상치 못하게 생긴 자유 시간은 그녀에게 추진력을 주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나는 왜 이 모든 생각들을 억누르고 있지?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겨야 해.” 우리가 대화를 나눌 동안 갤러리의 두 개의 넓은 방은 트라오레와 그녀의 어시스턴트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오프닝, 패널 토론, 야간 행사 등 이미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트라오레는 오프닝을 준비하며 매주 100시간씩 일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트라오레가 자신의 비전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허세가 전혀 없는 자신감이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비추고 있다. 그녀의 가장 주된 아이디어는 역사적으로 대표성이 낮았던 집단의 예술가들-유색인종, 여성, 퀴어 예술가들-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그녀가 설명한다.

다른 곳에서도 그러하듯 미술계에서는 천재성과 젊음을 중시하지만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인식이 있다.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큐레이팅도 오랜 현장 경험과 같은 그 자체의 관문들이 있다. 트라오레는 이 주제에 대해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저는 분명 지금과 같은 일을 하기에 충분한 업무 경험, 다시 말해 적절한 업무 경험이 있지만 이를 여전히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죠.”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젊음을 자산으로 봅니다. 업계에 더 오랜 기간 몸담아온 다른 사람들처럼 규칙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녀는 자신의 업계 주변 사람들에게 일련의 정보성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그들의 조언을 통해 비즈니스 컨설턴트, 미술 전문 변호사, 홍보 에이전트, 멘토와 같은 팀을 구성했다. 그녀는 그들을 자주, 이름과 함께 언급하는데, 그중에는 뉴 뮤지엄의 부관장 이졸데 브리엘마이어와 토론토의 미술 컬렉터 케네스 몬태그도 있다. “그들이 지지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여정을 떠나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죠.”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지지가 계속 커져갈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부의 추진력이 분명 있으며 그녀는 그러한 무언가가 가족들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나를 믿는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나를 믿도록 만들었어요.” 그녀는 어린 시절 예술을 비하하던 친구의 어머니와 같은 의심하는 예전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녀는 내 어머니에게 ‘아이들 모두가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다니 곤혹스럽겠어요.’와 같은 말을 했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에요. 절반은 예술, 절반은 사업과 같은 무언가를 함으로써 예술 분야에서 성공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나는 이러한 지지가

계속 커져갈 것이라고 믿었어요.

2022년 1월 갤러리를 연 이후 트라오레의 시간 대부분은 사진 촬영과 그녀의 이야기에 관한 인터뷰 등과 같은 언론 매체로 채워졌다. 한편 그녀가 즐기는 요소도 있다. 패션, 특히 밝은 색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향은 그녀에게 중요하다. 이것이 이 갤러리를 세상에 소개하는 첫 번째 전시회를 「색조」라고 부른 이유 중 하나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갤러리 공간은 그녀가 아니라 예술가들을 위한 것이다. 트라오레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미리 전제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이 발생했으며 미술계에서도 인종차별적 인식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수행적 동맹(performative allyship)’이라는 불가피한 부산물도 생겨났다. 또는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거리 평판”을 위해 유색인종 작가들과 일하고 싶은 갤러리들이 생겨났다.

그녀는 그녀가 함께 작업하고 있는 제임스 퍼킨스라는 작가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회화와 매력적인 대형 컬러 블록들을 사용한 설치미술을 작업한다. “그의 작품을 봤을 때 그가 흑인 작가라는 것을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나에게 그런 점 때문에 그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라고 트라오레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흑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흑인이기 때문이죠.”

(1) 어린 시절 트라오레는 미술 캠프와 미술관뿐만 아니라 세 명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한 가내공업, 암실에서의 사진 현상작업, 도예 등 다양한 예술에 노출되었다.

(2) 트라오레의 학부 논문은 말리의 사진작가 말릭 시디베의 작품들을 탐구했다. 2017년 그녀는 시디베와 그가 영향을 준 케힌데 와일리 등의 예술가의 작품을 포함한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을 위해 큐레이팅을 하면서, 하산 하자즈, 무르조니 메리웨더, 댐 램, 웬디 레드 스타 등 그녀의 예술가들에게 다른 갤러리스트들이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토큰화하거나 토큰화되지 않는 즐거움을 넘어서 (그녀는 그녀의 첫 흑인 상사였던 브리엘마이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죠.”) 자신의 예술가들을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갤러리스트가 되는 것도 경쟁 우위가 된다. 큐레이션은 벽에 그림을 거는 것 이상으로 확장된다. 많은 경우 그녀는 작가들이 작품 작업을 할 때 관점과 의견을 제공하면서 그들과 협업하고 있다. 「색조」에서 그러한 작품 중 하나가 파키스탄 조각가 미샤 자판왈라의 「둔드(번역: 안개)」로 작가의 어깨와 가슴을 밝은 파란색 주조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의도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트라오레는 자신이 “작가에게 작품에 대한 자율성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큐레이터들이 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작가의 가슴을 작품에 담는다는 것이 그녀의 문화에서는 진정한 전복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큐레이터를 신뢰하는 것-작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맥락화하며 대변하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만남 후 트라오레는 그 작품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자 미샤 자판왈라의 말을 인용하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것은 작가를 대변하는 또 다른 활동이기도 했다.

트라오레는 갤러리가 무엇이며 갤러리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념에도 도전하고 싶어 한다. “미술계에서 우리는 예술가들이 단지 예술가임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해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복잡한 존재이며 다양한 영역에 재능이 있기 때문이죠.”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전시회 중에는 기존에 상업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카밀라 팔케즈의 첫 갤러리 전시회와 조각가가 패션 컬렉션도 보여주는 하이브리드 전시회도 포함되어 있다. 경계를 초월하는 활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갤러리는 현재 하산 하자즈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방문객들이 그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표로 일한다는 것은 타협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할 시간을 좀처럼 낼 수 없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을 부전공하면서 도예와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도 그것은 확실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나는 집에서 제본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예술 창작을 하면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요.”

수많은 도움을 받았던 트라오레는 이제 스스로 멘토이자 롤 모델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누군가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기댔던 많은 멋진 흑인 여성들이 있었으니까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뉴욕 시티에서 활동하는 흑인 여성 갤러리스트 열 명 이상의 이름을 댈 수 있지만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고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확고할 것이다. 야심 있는 젊은 갤러리스트들을 위해 그녀는 세 가지 조언을 해준다. “가능한 한 많은 조언을 구하세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세요.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큰 공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믿으세요.”

이 공간에서 그녀의 여러 아이디어와 예술을 결합시키는 것은 믿음, 즉 그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나누며 틈틈이 그녀가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전시회를 언급한다. 올해의 갤러리 일정은 이미 가득 차 있고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우리가 이것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내가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좋습니다. 이것은 나와 내가 논의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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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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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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