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길모어 걸스」의 팬들은 오리지널 시리즈가 끝난 후 조숙한 주인공 로리 길모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 알게 되기까지 장장 9년을 기다렸다. 첫 일곱 시즌을 거치며 로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녀가 앞으로 큰 사람이 될 거라 짐작할 수 있다. ٤부작 후일담에서 그녀는 직장에서 해고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 현재 약혼 상태인 대학 시절 남자 친구와 다시 로맨스를 시작한다. 『뉴요커』에 실린 (자주 언급되는) 기사 한 편 덕분에 지역신문 편집자로 새 출발을 하지만, 그녀는 마을에 오래 남아서 동네 ‘30대 패거리’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내내 주장한다. 한때 차세대 거물로 촉망받던 사람들은 실제 세계에도 얼마든지 있다. 학창 시절 싱글 음반이 라디오 방송을 타기도 했던 재능 넘치는 밴드를 기억하는가? 스포츠 에이전트에게 스카우트된 옆 마을 남자는? 이런 사연들은 짧은 기간 마을의 전설이라는 지위를 유지하지만 그런 전설에 매달리는 사람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전직 차세대 거물뿐이다. 일단 명성을 얻게 되면 그 이전의 순간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성공을 빼앗긴 사람들만이 성공을 할 뻔한 순간을 그리워할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잘될 수 있었을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어디 걸려 넘어지는 것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더 아프고 창피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개인의 성취를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지표로 보는 사회 인식과, 특별한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공허한 약속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일깨운다. 그럼에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의지가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상을 받기 전의 황홀한 기대의 순간 역시 보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소중한 경험에 속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표가 가치 있는 것인지 끝내 알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그런 기대를 간직하고 살 수 있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동료 리뷰 미술 잡지 <프리즈> 편집자 앤드류 더빈, 작가이자 사진가 에르베 기베르의 강렬한 매력을 논하다. Arts & Culture 임계 질량 모두가 비평가라면 누가 비평가인가? Arts & Culture 상에 대해 생각함 예술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Arts & Culture 모조품의 이점 인조 녹지가 주는 혜택에 대하여 Arts & Culture 혼합된 은유 오리들을 같은 페이지에 놓자. Arts & Culture 상자에서 갓 꺼낸 언박싱의 특이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