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즈와 페스터의 시기별 동선은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고 둘 다 수수께끼 같은 빈칸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페스터가 아베즈의 히트곡인 ‘네이처 보이’에 영감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 1946년 아베즈가 자비 출판한 악보의 표지에는 웃통을 벗은 머리 긴 남자가 어깨에 작은 자루만을 걸친 채 가시 돋친 선인장 길이 펼쳐진 사막을 홀로 걷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는 페스터인가? 아니면 아베즈 본인인가? 아니면 사막을 떠도는 누군지 모를 남자인가?
아무튼 노래 자체와 “매우 낯설고 신비로운 소년이 있었네 / 사람들은 그가 육지와 바다를 거쳐 매우 먼 곳에서 왔다고 말하지”라는 수수께끼 같은 가사는 수백 만 명의 청취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베즈의 노래는 1947년 냇 킹 콜이 불러 차트 정상에 올랐고 지금까지 재즈 명곡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큰 행운을 누리고 있다. 아베즈는 미국의 여러 잡지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되었고 갑자기 부자가 되었음에도 돈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의 노래가 유명해진 후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는 샌들을 신고 자전거를 타며 무대로 들어왔다)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다 해도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어떤 돈도 내가 갖게 된 것을 나에게 주지 못했으니까요. 애나와 나는 자연과 단순한 삶이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네이처 보이즈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갔다. 막시밀리안 지킹어는 그가 벌거벗은 채로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태양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사진을 표지로 한 「고전 영양학(Classical Nutrition)」이라는 식생활에 관한 얇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유명인들의 운동 트레이너가 되었고 70대까지 아슈람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부츠는 1958년 할리우드에 아내 루이스와 함께 연 ‘백 투 네이처 헬스 헛’이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는 3년 후 인기 있던 레스토랑의 운영을 중단하고 과일 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견과류, 과일, 그리고 집시 부츠”라는 문구를 측면에 적은 밝은 색상의 밴(이보다 약 50년 먼저 오토 카르크가 운행한 ‘건강 자동차’의 아이디어와 동일하다.)을 이용했다. 익살스러운 그의 행동 덕분에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유명인 고객들을 생겨났고 1960년대 초 부츠는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무모한 자연인 역할을 맡아 허리에 천을 두른 차림으로 밧줄에 매달려 무대를 건너고 갓 짜낸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며 사회자와 운동을 하는 단골 출연자가 되었다. 괴짜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던 부츠는 1960년대 후반 많은 사이키델릭 밴드들과 같은 무대에 섰고 대안적 삶의 방식에 굶주려 있던 새로운 세대에게 성화를 넘겨주는 ‘원조 히피’로 여겨졌다.
아베즈는 계속 단순한 삶을 살았으며 작곡을 이어나갔다. 1960년 발표한 『에덴스 아일랜드(Eden’s Island)』는 오늘날 사이키델릭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7년 녹음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나무 피리를 들고 있는 그의 옆에 앉은 비치 보이즈의 브라이언 윌슨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로스앤젤레스가 지금도 자랑스러워하는 건강식의 전통을 따라 ‘래디언트 래디시(Radiant Radish)’라는 유기농 및 건강식품 매장을 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1967년 여름 10만 명 이상이 집결한 반문화 축제 및 운동-옮긴이)’이 열렸던 같은 해에 노래 ‘네이처 보이’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보컬 그레이스 슬릭의 리듬감 있는 포크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베즈의 강렬한 가사 “당신이 살면서 배우게 될 가장 멋진 사실은 / 사랑하고 다시 사랑받는 거야”는 반문화의 순수한 이상주의를 반영하며 새로운 관객에게 도달했다.
과거의 ‘자연으로 돌아가자(back to nature)’는 ‘땅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land)’로 재탄생하면서 약 백만 명이 사람들이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의 공동 생활을 실험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미국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이었고, 이는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하게 만든 충동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신선하고 활짝 열려 있고 기회가 가득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썩은 과일로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이 옛것의 껍질 안에 지어지고 있었다. 반체제 신조, 독특한 식생활, 길고 다듬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와 같은 혁명적 상징들이 돌아왔고 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져나갔다. 이 모든 것은 급진적이고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아르놀트 에렛의 헛소리도 다시 등장했다. 1910년대에 그는 “남자의 수염은 이차적인 생식기다.”라는 글을 썼다. 그는 정화된 몸은 전기를 띠는 “사랑의 진동”을 발산하고 이것이 머리카락과 같은 “무선 장치”에서 수신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들은 1970년대에 새로운 장발 세대에 의해 발견되었고, 출판사들은 수염은 있지만 의욕이 넘쳐 보이는 에렛의 저자 소개 사진을 꿈에 잠긴 듯하고 예언자의 느낌을 풍기며 수염과 머리카락이 수북한 모습을 한 부드러운 스케치로 교체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독자를 찾았고, 그들은 또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라이라 킬스턴의 「태양을 쫓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치유법(Sun Seekers: The Cure of California)」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