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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쫓는
사람들

「태양을 쫓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치유법에서 라이라 킬스턴은 골든스테이트에 퍼져 있는 반(反)문화 신화로부터 매혹적인 한 장면을 가져왔다.
글 by Lyra Kilston.

  • Arts & Culture

「태양을 쫓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치유법에서 라이라 킬스턴은 골든스테이트에 퍼져 있는 반(反)문화 신화로부터 매혹적인 한 장면을 가져왔다.
글 by Lyra Kilston.

1948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협곡을 배경으로 한 흑백사진 한 장이 있다. 사진 속에는 턱수염을 기르고 웃통을 벗은 남성 일곱 명이 길게 자른 수박을 들고 있다. 그들은 환한 웃음에서 굳은 얼굴까지 표정도 다양하고, 금욕적인 요가 수행자에서 근육질 서퍼까지 체격도 서로 다르다. 마치 덤불에서 나온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은 ‘네이처 보이즈(Nature Boys)’라는 그들의 별명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 모두는 문명을 저버리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어요.”라고 그들 중 한 명이 당시를 회상했다. 그들은 태양, 물, 신선한 농작물, 약간의 동지애 정도의 최소한의 것만을 필요로 했다. 그들이 해가 내리쬐는 보도에서 웃통을 벗고 만돌린, 기타, 드럼을 멋지게 연주하는 사진도 있다. 이것이 ‘최초의 히피들(proto-hippies)’ 혹은 아마도 ‘캘리포니아의 자연인들(California Naturemenschen)’이라고 부를만한 이 느슨한 그룹을 기록한 단 두 장의 사진이다.

“우리는 여러 다른 도시, 심지어 여러 나라에서 왔어요.”라고 가장 어린 멤버였던 집시 부츠(Gypsy Boots)가 회상했다. “한때 거의 15명이 언덕에서 함께 지내고 동굴과 나무에서 잠을 잤죠.” 그들보다 앞서 중부 유럽에서 비슷한 생활을 했던 청년들처럼 네이처 보이즈는 과일과 견과류를 찾아다니고 별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 그들의 온화하고 목가적인 방식과 완전히 대조적으로 로스앤젤레스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도시는 교외 주택, 두 대의 차가 들어가는 차고, 매끈하게 깎은 잔디밭이 격자무늬를 만들어내며 넓게 펼쳐졌다. 자유분방한 긴 머리의 남자들이 그들의 시골풍 은신처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꽤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네이처 보이즈에 대해서는 소문 외에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에서 194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가 묘사될 때 그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샌들을 신은 성스러운 모습의 네이처 보이”가 잠시 보였다는 장면에서 짧게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천연꿀을 찾아가는 꿀벌들처럼 리히터 부부가 운영한 유트로페온 카페에 자주 들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그곳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네이처 보이 중 한 명인 에덴 아베즈(eden ahbez, 1908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조지 알렉산더 아벌르)는 유트로페온에서 연주를 하는 대가로 식사를 해결했고 때때로 동료들을 데려와 네이처 보이 트리오로 공연을 했다. 그의 물결치는 금발 머리, 풍성한 수염과 몽환적이고 지지한 눈빛은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하나님(God)’과 ‘무한(Infinity)’이라는 단어만 대문자로 써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이 새롭게 지은 이름을 소문자로 표기한 아베즈는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기 전에 도보로 여덟 번 전국을 여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침낭, 옷가지, 과일 착즙기를 등에 메고 여행을 하면서 이동 중에 가사를 휘갈겨 썼다. 때때로 아베즈는 리히터 부부의 집 뒷마당에 있는 과일 나무들 속에서 잠을 잤다. 그는 또한 도시 근처의 여러 협곡에서 야영을 했고 한동안 할리우드 간판이 드리우는 그늘에서 생활했다. 그는 아내 애나(2인용 침낭을 구입)와 아들 타타 옴과도 이러한 생활을 지속했다.

다음으로 1930년대에 고국의 신체문화운동, 나체주의, 일광욕요법, 자연 치유에 대한 열정과 함께 (부상하는 파시즘을 피해) 무단으로 기차에 올라타고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반듯한 외모의 독일인 막시밀리안 지킹어(Maximilian Sikinger)가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지킹어는 집시 부츠(본명 로버트 부츠진)를 만났고 부츠는 그의 레벤스레폼(Lebensreform, 생활개혁) 철학을 지지하는 열렬한 사도가 되었다. 부츠는 이미 절반쯤은 그 길에 올라서 있었다. 러시아인 어머니는 그에게 뻑뻑한 호밀 흑빵을 구워주었고 일요일이면 그녀의 아이들에게 철로를 따라 산행을 하며 먹거리를 찾는 법을 가르쳤다. 폐결핵으로 형을 잃은 부츠는 특히 신체 단련법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했다. 지킹어는 그에게 단식과 요가를 가르쳤다. 이 독특한 한 쌍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뜻이 맞는 친구들을 찾기 위해 유트로페온의 문을 두드렸다.

이 레스토랑의 가장 헌신적인 손님들은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점차 이 도시를 영원히 떠나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리히터 부부는 동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팜 스프링 근처의 오두막에서 사는 독일인 채식주의 은둔자인 페스터에 대해 알고 있었다. 페스터는 도시 거주자들이 자연 생활에 완전히 몰입하기로 결정한다면 비전을 갖고 빛나는 이상을 구현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문명을 저버리고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어요.

메마른 산과 그곳에 숨겨진 협곡을 종종 찾던 네이처 보이즈는 인구 밀도가 극히 낮은 사막 지역에 매력을 느꼈다. 타키츠 캐년은 열기를 피할 수 있는 오아시스였다. 그곳의 바위투성이의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느다란 폭포가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못으로 떨어지는 희귀한 장관이 펼쳐졌다. 야영을 하거나 심지어 몇 달간 살기에도 이상적인 장소였다. 후에 부츠는 붉은꼬리 말똥가리들이 날아다니는 맑은 하늘 아래 협곡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그곳에서 아베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아베즈는 “언젠가 턱수염 백만 명이 이곳에 몰려들 거야.”라고 예언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그가 옳았다.

1930년대 후반 아베즈가 타키츠 캐년에서 머물었다면, 어느 더운 날 아침 눈을 떠서 직접 만든 샌들을 신고 살며시 걷는 흐트러진 머리의 남자를 봤을 가능성이 있다. 카우야 원주민도, 햇볕에 그을린 정착민도 아니었다. 그는 바로 이제 수염에 희끗한 줄무늬가 생긴 진정한 네이처 보이인 페스터였다. 아베즈가 타키츠 캐년에서 페스터를 만났다면 분명 서로를 알아보고 동류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아베즈와 페스터의 시기별 동선은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고 둘 다 수수께끼 같은 빈칸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페스터가 아베즈의 히트곡인 ‘네이처 보이’에 영감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 1946년 아베즈가 자비 출판한 악보의 표지에는 웃통을 벗은 머리 긴 남자가 어깨에 작은 자루만을 걸친 채 가시 돋친 선인장 길이 펼쳐진 사막을 홀로 걷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는 페스터인가? 아니면 아베즈 본인인가? 아니면 사막을 떠도는 누군지 모를 남자인가?

아무튼 노래 자체와 “매우 낯설고 신비로운 소년이 있었네 / 사람들은 그가 육지와 바다를 거쳐 매우 먼 곳에서 왔다고 말하지”라는 수수께끼 같은 가사는 수백 만 명의 청취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베즈의 노래는 1947년 냇 킹 콜이 불러 차트 정상에 올랐고 지금까지 재즈 명곡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큰 행운을 누리고 있다. 아베즈는 미국의 여러 잡지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되었고 갑자기 부자가 되었음에도 돈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의 노래가 유명해진 후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는 샌들을 신고 자전거를 타며 무대로 들어왔다)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진다 해도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어떤 돈도 내가 갖게 된 것을 나에게 주지 못했으니까요. 애나와 나는 자연과 단순한 삶이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네이처 보이즈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갔다. 막시밀리안 지킹어는 그가 벌거벗은 채로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태양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사진을 표지로 한 「고전 영양학(Classical Nutrition)」이라는 식생활에 관한 얇은 책을 출간했다. 그는 유명인들의 운동 트레이너가 되었고 70대까지 아슈람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부츠는 1958년 할리우드에 아내 루이스와 함께 연 ‘백 투 네이처 헬스 헛’이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는 3년 후 인기 있던 레스토랑의 운영을 중단하고 과일 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견과류, 과일, 그리고 집시 부츠”라는 문구를 측면에 적은 밝은 색상의 밴(이보다 약 50년 먼저 오토 카르크가 운행한 ‘건강 자동차’의 아이디어와 동일하다.)을 이용했다. 익살스러운 그의 행동 덕분에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유명인 고객들을 생겨났고 1960년대 초 부츠는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무모한 자연인 역할을 맡아 허리에 천을 두른 차림으로 밧줄에 매달려 무대를 건너고 갓 짜낸 주스를 벌컥벌컥 마시며 사회자와 운동을 하는 단골 출연자가 되었다. 괴짜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던 부츠는 1960년대 후반 많은 사이키델릭 밴드들과 같은 무대에 섰고 대안적 삶의 방식에 굶주려 있던 새로운 세대에게 성화를 넘겨주는 ‘원조 히피’로 여겨졌다.

아베즈는 계속 단순한 삶을 살았으며 작곡을 이어나갔다. 1960년 발표한 『에덴스 아일랜드(Eden’s Island)』는 오늘날 사이키델릭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7년 녹음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나무 피리를 들고 있는 그의 옆에 앉은 비치 보이즈의 브라이언 윌슨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브라이언 윌슨은 로스앤젤레스가 지금도 자랑스러워하는 건강식의 전통을 따라 ‘래디언트 래디시(Radiant Radish)’라는 유기농 및 건강식품 매장을 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1967년 여름 10만 명 이상이 집결한 반문화 축제 및 운동-옮긴이)’이 열렸던 같은 해에 노래 ‘네이처 보이’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보컬 그레이스 슬릭의 리듬감 있는 포크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베즈의 강렬한 가사 “당신이 살면서 배우게 될 가장 멋진 사실은 / 사랑하고 다시 사랑받는 거야”는 반문화의 순수한 이상주의를 반영하며 새로운 관객에게 도달했다.

과거의 ‘자연으로 돌아가자(back to nature)’는 ‘땅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land)’로 재탄생하면서 약 백만 명이 사람들이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의 공동 생활을 실험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미국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이었고, 이는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하게 만든 충동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것은 더 이상 신선하고 활짝 열려 있고 기회가 가득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썩은 과일로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이 옛것의 껍질 안에 지어지고 있었다. 반체제 신조, 독특한 식생활, 길고 다듬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와 같은 혁명적 상징들이 돌아왔고 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퍼져나갔다. 이 모든 것은 급진적이고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아르놀트 에렛의 헛소리도 다시 등장했다. 1910년대에 그는 “남자의 수염은 이차적인 생식기다.”라는 글을 썼다. 그는 정화된 몸은 전기를 띠는 “사랑의 진동”을 발산하고 이것이 머리카락과 같은 “무선 장치”에서 수신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들은 1970년대에 새로운 장발 세대에 의해 발견되었고, 출판사들은 수염은 있지만 의욕이 넘쳐 보이는 에렛의 저자 소개 사진을 꿈에 잠긴 듯하고 예언자의 느낌을 풍기며 수염과 머리카락이 수북한 모습을 한 부드러운 스케치로 교체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독자를 찾았고, 그들은 또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라이라 킬스턴의 「태양을 쫓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치유법(Sun Seekers: The Cure of California)」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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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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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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