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F: 당신이 튀니스에 처음 정착할 무렵부터 다룬 소재다. 친숙한 대상이었기 때문일까?
DDC: 물론이다. 그저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내게 익숙하고 의미 있는 소재를 가져온 것 뿐이다. 이제 나도 이 나라에 오래 살았고 아침 식사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지만 매일 같은 길을 걷더라도 매번 같은 것만 보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다들 내게 아침 식사 그림만 기대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LF: 당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나아가고 싶나?
DDC: 첫째는 풍경 시리즈였다. 사물과 건물을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소박하게 그리는 거다. 그리움의 대상이라고나 할까? 다음으로는 사람을 좀 더 많이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좀 사귀었기 때문이지만 한창 좋은 시기가 지나가면 어색한 관계가 되기도 하더라.
LF: 과거에는 사진과 도예 쪽 작품이 더 많았다. 그림을 그리려고 튀니스에 왔나?
DDC: 가족 없이 홀로 이 도시와 친해지고 싶었다. ‘제3의 문화권에서 온 아이’ 같은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다녔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는 뿌리는 튀니지였지만 아랍어가 서툴렀다. 지금은 유마Ÿuma가 부른 튀니지 노래 「니기르 알릭Nghir Alik」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다며 울컥하더라.
LF: 당신에게도 비슷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있나?
DDC: 자라면서 노상 튀니지의 백파이프인 미즈위드 음악을 들었다. 처음 튀니지에 왔더니 사람들이 나더러 아주 이상한 아랍어 단어와 표현을 쓴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노래에서 아랍어를 배운 탓인가 보다. 술 취했을 때 듣는 슬픈 노래들이라 울음과 비탄, 실연에 대한 내용 일색이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아주 형편없고 너무 감상적인 음악이라 여겼다.
LF: 곧 있을 전시회에 대해 소개해달라.
DDC: 가제는 「3오크바 리크3okba lik」인데, 아마 많이 들어본 표현일 것이다. 학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덕담의 일종인데, 공부가 끝나고 나면 결혼에 대한 덕담이 된다. “결혼해서 행복을 누리기를.” 좋은 뜻이긴 한데 그게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면 어쩌라고?
LF: 벽에 걸린 이 그림은 상당히 화사하고 행복한 분위기다.
DDC: 내 친구의 임신 사진을 소재로 그렸는데 재밌는 작업이었다. 비욘세는 성모 마리아처럼 연출한 임신 사진을 찍었는데 미혼의 임신부를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너도 거룩한 분위기를 연출해 아기를 세상에 데려오는 일을 축하하자고. 결혼식은 요란하고 불쾌한 행사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에도 조금은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전시회도 우스꽝스러운 결혼식 피로연처럼 보이길 바란다.
LF: 튀니스가 당신의 작업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DDC: 내가 핀란드에만 머물렀더라면 사정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튀니지의 빛은 정말 특별하다. 모든 것을 풍요롭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곳 예술가들은 흑백이나 어두운 색을 주로 쓴다. 반면에 그토록 춥고 칙칙한 핀란드에서는 과감하고 다채로운 색이 많이 쓰인다. 역시 남의 떡이 항상 더 커 보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