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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샤히라 파미

At Work With: Shahira Fahmy

이집트를 대표하던 건축가는 어떻게 칸의 레드카펫을 밟게 되었을까?
Words by Rima Sabina Aouf. Photography by Marsý Hild Þórsdóttir. Hair & Makeup by Roberta Kearsey.

나이 마흔에 샤히라 파미는 첫 배우 수업을 받았다. 마흔셋에 그녀는 첫 작품인 프랑스-한국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시사회를 위해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이자벨 위페르의 상대역을 연기했다. 모험과 보상이 얽힌 그녀의 사연은 눈부시다. 파미가 이미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시도다. 건축가로서 그녀는 카이로에 사무실을 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컬럼비아 대학에 출강하는 한편 종종 연설자로도 활동했다. 그러다 세트 디자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연기에 호기심을 품게 되어 서서히 그 분야를 탐구하면서 다른 건축가들의 놀라움, 때로는 경멸을 샀다. 이제 마흔다섯의 파미는 거의 평생을 살던 고향 카이로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하면서 또 한 차례 격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사용 포장 상자들 사이에 앉아 그녀는 연기와 건축의 유사점에 대해, 불확실성이 어떻게 기회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RSA: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은 건축가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도 변화를 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SF: 내 친구가 첫 장편영화의 대본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네게 세트 설계를 부탁하고 싶으니 내 시나리오 좀 읽어봐줘”라고 부탁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었다. 원고를 읽고 나는 ‘이 영화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이미 주연배우를 정해두어서 “그 여자 대신 내가 주연을 맡고 싶어”라고 나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 2~3년을 함께하면서 대사를 읊는 배우들과 촬영기사들을 지켜보고, 직접 대본을 읽어보니 친구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기분이었다. 친구 역시 미술을 전공했고 영화는 공부한 적이 없어 한창 배우는 중이었다. 친구는 연기 수업도 받고 있었다. 3년 후에 나는 친구의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도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RSA: 언제부터 당신이 연기를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SF: 이 선생님에게 수업을 네 번 받고 나서 같이 커피를 마셨는데 그분이 나더러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드렸잖아요! 이제 겨우 발성 연습만 하고 있는데요”라고 했더니 그분이 “당신은 존재감이 있고 연기에서는 존재감이 가장 중요해요”라더라.

RSA: 그 후에 당신은 곧바로 연기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뉴욕의 〈우스터 그룹〉 극단에서 인턴을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SF: 나는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싶었다. 일단은 지켜보고 싶었다. 내가 정말 이 일을 원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좀 더 신중하고 싶었던 거다.

RSA: 인턴은 젊은 사람들만 하는 거라 생각하니 좀 재미있다.

SF: 내 주위 사람들은 전부 젊었다.

RSA: 그래서 기분이 어땠나? SF: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분야를 벗어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RSA: 가장 말단으로 돌아가 하루 종일 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가 힘들지 않았나?

SF: 나를 보고는 일을 함부로 시키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었으니까. 뭔가를 시킬 때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요구했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전화 받는 일부터 의상 바느질, 조감독 역할, 제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까지 다양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인턴 생활이 꽤 즐거웠다.

파미는 칸의 한 카페에서 한국 영화감독 홍상수를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에 처음으로 출연했다

RSA: 한창 연기 수업을 듣던 2014년에 당신은 건축가들의 안식 기간을 지원하는 하버드 대학의 러브 연구비를 받았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본업을 완전히 쉴 필요가 있었을 것 같다.

SF: 휴식이 매우 중요했다. 덕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는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건축에서 2년간 안식 기간을 얻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RSA: 건축에서 얻은 교훈이나 통찰 가운데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것, 또는 연기를 통해 건축에 도움을 받은 점이 있다면?

SF: 내가 볼 때 둘 다 일종의 관찰 방식에 속한다. 관찰의 결과이자 관찰의 성과이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준다. 성공을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팀과 의사소통을 잘 해야 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표현할 시간이 없다면 프로젝트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훌륭한 설계가 전부는 아니다. 고객, 협력자, 컨설턴트 등 훌륭한 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릴 때 나는 수줍음이 많아 주로 사람들을 지켜보는 쪽이었다. 점심시간, 저녁 시간, 사회 활동 시간에 나는 침묵을 지킬 때가 많았다. 경청하고 관찰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RSA: 자꾸 나이 얘기를 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나이와 노화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듣고 싶다.

SF: 언젠가 카를 융이 말하길 마흔 전의 인생은 전부 탐색에 불과하고 진짜 인생은 마흔에 시작된다고 했다. 나한테 딱 맞는 말 같아서 그 글귀를 읽고 무척 기뻤다. 내가 무슬림으로 자라서(독실하지는 않지만 무슬림은 맞다) 그 말이 더 와 닿았다. 이슬람에서도 마흔은 큰 의미가 있다. 「코란」에도 나온다. 양쪽에서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런 느낌이었다.

RSA: 당신은 지금까지 쭉 카이로에서 살았다. 정치적 격변기에 사람들은 개인 생활에서 안전과 위안을 갈망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SF: 그런 케케묵은 통념은 당장 깨부수고 싶다! (웃음) 혼란의 시대는 변화하기 가장 좋은 때다. 이를 테면 나는 지금 여기 브렉시트를 앞둔 런던에 왔다. 지금이 최고의 시기다. 나는 이집트에서 그것을 배웠다. 기회를 발견하는 최적기는 미지의 시대이다. 불확실성이 있으면 무언가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매우 체계적이라면 뚫고 들어가기가 어렵지 않을까?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너무 정체되어 있다면 어떻게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기반이 바뀌고 있다면 자신을 바꿔야 한다.

RSA: 지난 몇 년 사이 당신이 배운 교훈 가운데 큰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가?

SF: 나는 인생을 나와 협력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나는 침묵한 상태로 인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인생이 나를 어디로, 왜 데려가고 싶어 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과거에 나는 좀 더 체계적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제는 모르는 것이 많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불안했다. 지금은 모르는 것이 있어서 더 행복하고, 너무 잘 아는 것이 많아질까 두렵다.

"언젠가 카를 융이 말하길 마흔 전의 인생은 전부 탐색에 불과하고 진짜 인생은 마흔에 시작된다고 했다. 나한테 딱 맞는 말 같아서 그 글귀를 읽고 무척 기뻤다."

"언젠가 카를 융이 말하길 마흔 전의 인생은 전부 탐색에 불과하고 진짜 인생은 마흔에 시작된다고 했다. 나한테 딱 맞는 말 같아서 그 글귀를 읽고 무척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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