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중에 있다는 것은 출발과 도착 지점 사이의 공백을 지나간다는 뜻이다. 비행기를 타고 지상에서 벗어나면 시간과 공간은 무심히 지나간다. 타원형의 창문을 통해 모호한 위치 감각을 간간히 느낄 뿐이다. 평원에 새겨진 둥근 초록빛 농지, 어둠 속에 점선으로 엮인 도시의 조명들, 얼음 속에 갇힌 검은 화강암 산봉우리. 자동차 여행에서는 이 매혹적인 장면들이 나들목, 주유소, 식당, 싸구려 모텔 사이에 짧은 간격으로 나타난다. 잭 케루악이 풀어놓는 「길 위에서」라는 이야기는 ‘미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빨간 선’이라는 그의 목표를 따라가지만 여정의 분위기와 가치는 경로를 벗어난 지저분한 길가에서 한층 고조된다. 그가 모험을 시작할 무렵 불길하게도 6번 도로의 베어마운틴 브리지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버려진 주유소에서 차를 태워줄 사람을 홀로 기다리며 ‘오랫동안 갈망해온 서부’를 기대하던 케루악은 자신이 이미 그 거대한 선 위의 어디에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고독한 현장의 구슬픈 매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끼 위로 흘러내리는 빗물, 낡아빠진 주유 펌프, 붙박이창에 삐딱하게 걸린 ‘영업 끝’ 푯말, 텅 빈 도로. 나중에 시카고와 덴버 사이 어딘가의 어둑한 버스 정류장 카페에서 케루악은 일하는 여종업원을 보며 기분 좋게 애플파이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나라를 횡단하는 내내 내가 먹은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가 말한다. 그리고 한참 후 “음침하고 낡은 플레인스 여관”에 묵던 그는 “가장 묘한 순간에” 경계 공간에서 잠을 깬다. “나는 집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금이 간 높은 천장을 보고 있으려니 한 15초 동안 내가 누군지 정말로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을 반쯤 건너와 나의 과거를 뜻하는 동쪽과 미래를 뜻하는 서쪽을 나누는 경계선에 위에 누어 있었다.”¹ 전환기를 묘사한 케루악의 생생하고 불안한 일화와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은 대개 중간 지점에 대해 훨씬 낙관적으로 설명한다.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베르거는 문간, 층층대, 층계참, 발코니, 현관 등 즉흥적인 휴식과 우연한 만남을 포용하는 ‘사물 사이의 살 만한 공간’을 칭찬한다.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우리가 일터와 집을 오가며 빈번히 들르는 공간인 ‘제3의 장소’를 찬미한다. 소탈한 공동체와 시원한 맥주, 따뜻한 커피, 맛난 음식을 들며 나누는 유쾌한 대화 때문이다.² 두 장소 사이에서 누리는 이런 행복은 틀에 박힌 일상을 환히 밝힌다. 케루악은 목적지 사이의 경유지에 드리워진 깊은 그늘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 그늘 안에서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을 예리하게 의식하며 잠시 단정한 자아에게 낯선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어둑하고 서먹한 방은 다른 가능성으로 들어서는 문턱이 되고, 타인들의 말투와 습관은 단순히 낯선 이들의 버릇이 아니라 그들의 장소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다채롭고 혼란스럽게 보여주는 그림자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신속히 옮겨주는, 목적지 사이의 지긋지긋한 거리를 무심히 가로지르는 편리함에도 큰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인생이 황홀한 색조와 뜻밖의 가치를 드러내는 외진 정류장에서 여행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NOTES 1. 경계 공간은 대체로 창조성과 관계가 있다. 이는 인생의 과도기와 여행에 똑같이 적용된다. 「호밀밭의 파수꾼」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영화 「크로스로드」까지,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가 우리를 열광시키는 이유는 어린 시절을 벗어났지만 아직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찾지 못한 시점의 주인공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2. ‘제3의 공간’에 대한 올덴버그의 애정에서 주의할 점은, 그 공간들은 이미 정립된 공동체 안에 존재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교외가 제멋대로 뻗어나가고 통근자 거주 지역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사교의 장이었던 동네 술집의 이웃들을 빼앗아갔다고 비판한다. NOTES 1. 경계 공간은 대체로 창조성과 관계가 있다. 이는 인생의 과도기와 여행에 똑같이 적용된다. 「호밀밭의 파수꾼」부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영화 「크로스로드」까지,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가 우리를 열광시키는 이유는 어린 시절을 벗어났지만 아직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찾지 못한 시점의 주인공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2. ‘제3의 공간’에 대한 올덴버그의 애정에서 주의할 점은, 그 공간들은 이미 정립된 공동체 안에 존재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교외가 제멋대로 뻗어나가고 통근자 거주 지역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사교의 장이었던 동네 술집의 이웃들을 빼앗아갔다고 비판한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컬트 룸 알프스의 산기슭, 올리베티의 주목할 만한 ‘산업도시’인 이브레아에 사회주의와 모더니즘과 제조업이 모여들었다. Arts & Culture 궁정광대의 특권 짧게 보는 코미디 로스트의 역사 Arts & Culture 가족 대화 현대적 가족 생활. Arts & Culture 명백한 사실 문학적 특권 면책고지 Arts & Culture 따라와! 인플루언서 활동가는 실제로 누구를 돕는가? Arts & Culture 마주치는 사람들 가벼운 지인의 깊은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