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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문제적 물건

십자말풀이의 검색하는 역사.
글 by Stevie Mackenzie-Smith. 사진 by Cecilie Jegsen.

오락거리로서 십자말풀이는 꽤 평판이 좋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 한 자루로 진짜 네모 칸들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다면 인스타그램의 네모 칸들을 뒤적거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오락거리가 등장할 때면 늘 그렇듯 십자말풀이도 첫선을 보였을 때는 의심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1913년에 처음 출판된 ‘단어 십자 퍼즐’은 조지프 퓰리처가 발행한 신문 『뉴욕 월드』의 영국 출신 편집자 아서 윈의 발명품이다. 그의 퍼즐은 수수께끼라기에는 너무 직설적이었다. 윈의 첫 단서 중 하나는 이랬다. “이 퍼즐은 어떤가?” 답은 ‘어렵다(HARD)’였다.

요즘 『뉴욕타임스』는 월요일에는 쉬운 문제로 시작해 난이도를 점점 높이다가 일요일에는 머리를 쥐어뜯게 만드는 십자말풀이로 정점을 찍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간지는 처음에 십자말풀이를 “원시적인 정신운동”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 신문의 기자는 한가한 말장난은 미국인의 정신을 타락시킬 수 있는 죄악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대중은 그것을 좋아했다. 윈과 동료인 마거릿 페서브리지는 열혈 독자들이 보낸 우편물에 허덕였다.

진주만 공격 후, 이제는 윈의 아내가 된 마거릿 페서브리지 파라의 설득으로 『뉴욕타임스』의 인식은 변했다. 『뉴욕타임스』 발행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점점 걱정스러워지는 세상”에는 퍼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그 주장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십자말 퀴즈를 푸는 동안만큼은 근심 걱정을 접어둘 수 있다.” 그녀는 이 신문 최초의 십자말풀이 편집자가 되어 윈의 발명품을 오늘날까지 아침 식탁 앞에서 골몰하는 퍼즐의 형태로 개량했다.

물론 폭넓은 팬층이 생겼다고 취급하는 어휘의 폭이 크게 넓어진 것은 아니다. 그간 십자말풀이 작가와 편집자들은 미국 어휘의 다양성을 드러내지 못했다.¹ 오페라, 라틴어, 위대한 백인 남자들에 대한 지식은 낱말풀이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제는 추세가 변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은 십자말풀이를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독자의 문화적 소양을 확인하는 대단히 흥미로운 테스트로 본다. 십자말풀이는 우리가 항상 낯선 가능성에 마음을 열고 깨어 있게 한다. 다음번에 네모 칸들을 대면하면 이렇게 자문해보자. 오늘 나는 어떤 새로운 세계에 대해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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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말풀이 작가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현실적 이유는 별로 돈벌이가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말풀이 작가 중에는 평생 이 퍼즐의 팬이었다가 은퇴 후에 이 일을 새 직업으로 삼게 된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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