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2011년, 지진과 쓰나미가 강타한 일본 동부 해안가에 내던져졌다가 회생한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 피아노가 만드는 이상한 소리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마치 익사했던 피아노의 시체를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2017 년 그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Coda」에서 한 얘기다. 이런 발언은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소리에 대한 그의 끝없는 호기심,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감성.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한 그의 열정과 애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로어 맨해튼에 첫눈이 내리던 날, 「레버넌트」, 「마지막 황제」 같은 영화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곡가이자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창단 멤버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람들은 왜 트라우마가 생기면 음악을 듣지 않는가?’, ‘왜 자신의 과거를 마무리된 챕터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는 ‘왜 뉴욕의 단골 레스토랑에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창을 열고 녹음기를 밖에 내놓는다.”

당신은 작곡할 때 바흐가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원래 곡을 쓸 때 질문을 하는가?

바흐는 희망을 주는 곡을 썼다. 하지만 「마태오 수난곡」처럼 그의 대표적인 곡들은 내게는 고통 그 자체로 들린다. 나는 그가 주위 사람들의 비극과 슬픔을 지켜보았다고 확신한다. 그가 자신의 음악으로 세상을 구하려고 한 건 아닐지라도 그의 곡은 그의 기도였을 것이다. 일본의 쓰나미와 핵발전소 사고의 충격은 아직도 여기 남아 있다. (그가 심장을 만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나는 피해 지역의 아이들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에게 다시 음악을 돌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건들에 대한 생각이 나의 음악에 영향을 준다.

 

애초에 왜 곡을 쓰는가? 당신은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소리에 매료돼 있고, 심지어 사로잡혀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야외에 나갔을 때 음악을 듣는 것은 시간 낭비다. 바깥세상에는 이미 너무나 흥미로운 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창을 열고 녹음기를 밖에 내놓는다. 나는 늘 놀랄 준비가 돼있다. 바르셀로나나 다른 도시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길거리에서든 어디에서든 나는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이것저것 두드려보기도 한다. 소리에 대한 완벽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나는 늘 찾고 있다. 만약 내가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했다면 음악을 작곡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곡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게 모순인 것 같다.

 

요즘 세상에는 음악이 넘치지 않은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개념인데, 대학에서 음악 인류학을 전공할 때 어느 교수님께서 해주신 얘기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마을 중에는 오직 하나의 노래만 존재하는 곳이 많았다고. 가사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하나의 멜로디가 결혼의 행복에서부터 장례식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표현했다는 거다. 그런 곡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든게 아니라 시간이, 역사가,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음악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을 벌겠다는 욕구로 만든 음악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정성을 갖고 음악을 하는 창작자, 예술가들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세상에는 음악이 너무 넘친다고 생각한다. 적정한 곳에 꼭 맞는 적정한 음악이 있다는 것이 당신의 철칙인 것 같다. 당신의 영화음악도 그렇고, 당신이 작년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준 카지추라는 레스토랑을 봐도 그렇다.

 

그런 프로젝트의 음악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선별하는가?

소리라는 것은 음식의 질과 그 공간의 미학과 어울려야 한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카지추의 음식은 일본 전통 가이세키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요리는 아주 천천히 조용히 하나씩 나온다. 바에서 트는 음악은 맞지 않고, 아예 음악이 없어도 좋겠지만 손님들은 약간의 변화를 좋아할 수도 있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정말 약간의 분위기만 제공하면 된다. 나는 가끔 소리를 체크하러 그곳에 가곤 하는데 소리가 너무 크다고 지적하고 올 때가 많다.

 

소리에 대한 그런 세심한 조율이 휴대전화 회사 〈노키아〉의 전화벨 소리를 작업 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1970년대 초부터 나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도시의 소음과 신호음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요청을 받아서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런 흥미 때문에 70년 대와 80년대 일본 TV의 광고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일본 사람들의 소리 환경을 바꾸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벨소리 작업을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나는 공항이나 거리에서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시끄러운 소리에 지쳐 있었다. 그 유명한 벨소리, 그 우렁차고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대지 않았는가!

 

당신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소리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아마도 처음 영화음악을 들었던 기억일 것 같다.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때였는데 어두운 공간에서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영화관이었던 것 같다. 흑백영화였다는 것과 영화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매번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나오면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음악이다! 그 음악!” 그리고 수십 년 후, 그 음악이 니노 리타가 작곡한 펠리니 감독의 「길」이라는 영화의 테마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를 하던 시절에는 소리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달랐는가?

지금 그때의 음악을 들으면 정말 강렬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음악을 굉장히 차가운, ‘컴퓨터 음악’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사실 80퍼센트는 손으로 연주한 음악이다. 만약 이제 와서 내게 다시 연주해보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다. 그 음악은 젊음이었다. 이제는 완전한 나의 과거가 돼버렸다. 이제는 끝나버린 이질적인 기억일 뿐이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한 챕터였고, 나는 늘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이제는 당신에게 정적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적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쁘게 돌아가는 포스트모던의 도시에서는 특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우리의 뇌를 비우기 위해서라도 정적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인풋이 있고, 그것은 곧 표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인데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2016년에 내가 「Async」 앨범을 만들던 시기에는 나 자신에게 페이스북과 트위터 보는 것을 금지했다. 앉아서 정보를 집어먹기만 하면 움직일 수가 없다.

 

비극 이후에는 극도의 정적이 흐른다. 당신도 지켜보았겠지만 9.11 이후의 뉴욕처럼 말이다. 뉴욕은 왜 그렇게 반응했던 것 일까?

그 충격이 가라앉기 시작하기까지 뉴욕 사람들에겐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첫 사흘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일단 친척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정말 긴박했다. 음악을 듣거나 음악에 대해 생각할 여력조차 없었다. 음악은 절박함이 지나간 다음 순서이 다. 내가 암 진단을 받은 다음에 나 역시 그랬다. (사카모토는 2014년 3기 인후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호전되고 있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긴장하기도 했던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음악이 구제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장례식에서 노래를 한다.

피나 바우쉬는 늘 말했다. “춤추라! 춤추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꼭 문화적인 현상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우리에겐 춤과 음악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적은 더 중요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적은 더 중요해진다.”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