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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처럼 추억을 병에 담을 수 있는 발명품이 있다면. 절대 바래지도, 퀴퀴해지지도 않는다면. 그리고 추억을 되살리고 싶을 때, 병의 코르크를 여는 것만으로 그 순간을 고스란히 다시 음미할 수 있다면.”

대프니 듀 모리에가 소설 「레베카」 에 자신의 생각을 처음으로 담아낸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 벤 고햄은 모리에가 바라던 것을 현실로 이뤄냈다. 스웨덴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를 만든 고햄은 언제나 수첩을 갖고 다니며 감정과 경험을 곧바로 메모해둔다. 이렇게 휘갈겨 쓴 메모는 이후 전 세계 매장 선반에 깔끔하게 진열된 향수로 변신한다. 병 안에는 파도치듯 자유로운 고햄의 생각이 담겨 있다.

피가 철철 흐르던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를 영감으로 삼은 최근작을 예로 들어보자. 친한 타투 아티스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향수 ‘무인지대의 장미’는 최전방에서 활약했던 간호사에 바치는 플로럴 향 찬가다. 이들 간호사는 위험천만한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에서 쓰러진 부상자들을 구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해 주었다. 당시 부상병 중 여럿은 귀환한 뒤, 그 공로를 기려 간호사의 그림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헌신을 다룬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야기였죠. 향수는 이야기를 전하기에 알맞은 수단이라 생각했어요.” 고햄이 핑크 페퍼와 터키시 로즈가 깃든 탑노트를 지닌 자신의 향수를 두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일화를 해 로즈, 콜레트, 바니스 등에서 판매되는 <바이레도> 컬렉션의 제품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건, 향수 제조 과정에서 그만의 강렬한 통찰력을 부어 넣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는 고햄 자신의 편린도 들어 있다. 너무 다양해서 뭘 새겼는지 잊을 정도라는 고햄의 수많은 타투 중에는 빳빳한 간호모를 쓴 간호 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인 어머니와 캐나다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고햄은 예상외로 프로 농구선수에서 조향사로 변신했다. 비록 정식 조향 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2006년 <바이레도>를 창립한 뒤 고햄의 아이디어는 열정이 담긴 프로젝트에서 글로벌한 제국으로 진화했다. 오늘날 <바이레도>의 매장 수는 45곳에 달하며 제품군은 피혁제품과 향초뿐 아니라 올리버 피플스와 함께 생산하는 선글라스로도 확장되고 있다. 2015년, 고햄은 스톡홀름에 있는 플래그십 매장에 이어 뉴욕 소호에 두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규칙적 일상과 저는 정말 맞지 않습니다. 밥 먹듯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까요.” 고햄은 급히 뉴욕에 다녀온 뒤 막 스웨덴에 도착한 참이었고 피곤해 보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손대고 있는 일도 백여 가지는 족히 된단다. 거대한 꿈을 이루자면 어쩔 수 없는 힘겨운 일정이다. “저는 속도를 늦추질 못하는 편이라서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을 탐색해요.”

원래 스웨덴 당국의 우체 본부로 쓰이던 <바이레도> 본사는 고햄의 높다랗게 솟은 꿈을 드러내 보인다. 스웨덴의 소소한 햇볕을 한껏 맞이하는 큼직한 창문 반대쪽에는 섬세한 진녹색 벽난로가 자리 잡고 있다. 천장은 높고, 윤을 낸 목제 패널이 벽에 덧대져 있다. 도시 외곽에서 자라난 소년이 스톡홀름의 패션 및 디자인계의 중심에 자리한 남자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 주는 상징인 셈이다.(어린 시절 고햄은 ‘좁디좁은 아파트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고, 거리에 아이들 무리가 어슬렁거리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다고 한다). “언제나 꿈이 컸죠.” 이처럼 웅장한 분위기는 명품 중의 명품을 추구하는 고햄의 성향을 시각적으로 웅변한다. <바이레도>는 원래 향수 브랜드였지만, 이제 고햄이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새로운 관심사를 시험해 보는 장으로 변모했다. 뷰티 업계의 틀에 갇히는 듯한 느낌이 들 즈음, 고햄은 피혁을 향한 개인적인 애착을 사업에 부어 넣었다. <바이레도>의 캐멀 컬러 송아지 가죽 지갑은 5백 달러, 핸드백은 수천 달러에 팔리고 있다.

“전혀 생소했던 분야에 뭔가를 더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죠.” 고햄이 인터뷰 내내 그랬듯 겸손하게 말했다. “오직 가능성만 보는, 그런 벅찬 감정을 다시 느끼는게 좋았어요.”

방향, 혹은 기분 좋은 향기를 의미하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영감을 받은 <바이레도>는 달콤한 향기가 스민 고햄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탈바꿈하는 동화 같 은 이야기, 놀라울 만큼 잘생긴 외모, 흠잡을데 없는 취향. 혹여 그에게 결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운동선수로서, 지금은 사업가로서 삶을 빈틈없이 이끌어 왔던 대로 그 단점 또한 없애나갈 것이다. 고햄은 자신의 성공은 ‘내가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 강박적이고, 쉬지 않으며, 발전하고 진화해가는 인격’으로부터 나왔다고 믿는다. 아버지 없이 크는 아들이 문제아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교외의 꼬맹이가 찾아낸 첫 애착대상은 농구였다. 매일 공을 드리블하며 등교했던 시절을 떠올리던 고햄은 농구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자, 제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죠.”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고햄의 어머니는 재혼해서 토론토로 옮겨왔다. 소년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에 맞닥뜨렸다.

“캐나다는 톨레랑스가 있고 다문화적인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게는 매우 낯선 인종 요소가 있었습니다.” 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지낸 세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고햄이 말했다. “스웨덴에서는 스웨덴 사람 아니면 외국인으로 양분되었죠.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게 더 작은 집단으로 세분되더군요.”

사업을 하면서 고햄의 다층적인 배경은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바이레도>의 브랜딩에 얽힌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연상케하며, 아련히 풍기는 카다멈과 향 냄새에는 외가 식구들과 인도에서 보낸시절이 담겨있다. 하지만 당시 새로운 문화에 이식된 10대소년은 일단 ‘뭐가 뭔지 파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손에서 농구공은 놓지 않았다. 라이어슨 대학교에서 스포츠 장학금을 받았고, 프로 농구선수로 뛰고 싶어 유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속계약의 전제조건인 스웨덴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당국과 실랑이를 벌인 뒤, 고햄은 농구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접었다. “영주권을 따지 못할 수도 있고, 설사 따내더라도 프로선수로 뛸 수 있는 햇수가 얼마 남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 모든 에너지와 꿈을 다른 일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햄은 그렇게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을 이끌고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신체적, 물리적 요소에 바탕을 두고 쌓아온 삶이 회화, 조각, 미술사, 사진에 둘러싸인 추상적이고 창작적인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어느날 저녁 디너파티에서 저명한 조향사 피에르불프 곁에 앉은 고햄은 불프가 일하는 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그 시간은 이후 10여 년에 걸친 고햄의 삶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그때까지는 향기에 문외한이었지만, 향기가 실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으며 흥미로운 방식으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 고햄은 직장도 없었고 매일 밤 친구네 집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제 아이디어를 믿어주고, 자금을 대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고햄은 진솔하게 말했다.

고햄은 불프를 좇아 뉴욕의 사무실까지 날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저명한 조향사인 올리비아 자코베티와 제롬 에피네트를 고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향으로 옮겼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맡았던 그린빈 냄새에 바탕을 둔 그의 첫 향수는 무척 감상적이다. 향수를 만드는 내내 고햄은 자기 내면의 역사를 되새겼다.

“제 일은 많은 부분에 허구 요소가 있지만 사랑, 상실, 죽음 등의 더 큰 개념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 향이 완성되었을때는 마치 저희 아버지가 방안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아버지의 냄새를 맡아보기는 고사하고 그를 만나본 적조차 없는 조향사에게 향의 이미지를 전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조향에 관련된 전문용어를 몰랐던 고햄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고, 오랫동안 그림, 글, 시, 음악으로 향수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요즘은 향수에 대해 조예가 깊어지면서 재료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조향사에게 제가 가닿고픈 지점이 어딘지 설명합니다.” 고햄이 향수를 추상적인 아이디어에서 구체적인 제품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제 아이디어에 아주 가까워서 조금만 수정하면 목표에 이를 수 있는 버전이 탄생하기도 하고, 아예 내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해서 밑그림부터 다시 그리기도 하죠. 저는 향기에 대해 천 가지는 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제가 사물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어버렸죠. 그걸 조향사가 이해할 수 있게끔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제 일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초기 버전이 탄생하기까지 길게는 여섯 달가량이 걸리며, 향을 다듬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바이레도>는 향수를 제작할 때 적게는 서른번에서 많게는 2백번에 걸쳐 수정하기 때문이다. 고햄은 언제 수정을 멈춰야할지 안다고 한다. “향수 제조란 완성되었다는 걸 직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이레도>가 글로벌 브랜드로 급성장하면서, 고햄은 자신의 기업이 자기만의 니즈를 훨씬 뛰어넘는, 큰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제 회사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상업 조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에 푹 빠져 있었던거죠. 저 자신을 위해 제품을 만들었고 오랫동안 나, 나, 나만 찾아댔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저희가 만든 제품과 감성적 차원에서 공감하고 있으며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일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죠. 그저 향수, 그저 가방일 뿐이지만요.”

기업의 성장과 함께 찾아온 책임감 외에도 고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은 또 있다. 두 딸이 태어난 것이다. 첫째는 일곱 살, 둘째는 18개월이다. “딸이 태어나기 전 보냈던 32년보다 지난 7년간 더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가 고백했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로서의 삶은 ‘삶에서 나를 가장 중시하지 않게 되고, 사물에 반응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 심지어 삶의 효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온갖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들’을 겪게 했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더니 고햄이 덧붙인다. “전 꽤나 얼빠진 사람이거든요. 특히 아이들 곁에 있을 때는요.”

고햄의 집은 예전에 갔던 곳에서 모아온 옛 물건과 가구로 가득하다. 60년대 중후반 이탈리아 디자인의 팬인 그는 복도에 걸린 에스토레소트사스의 ‘울트라프라골라’ 거울을 무척 아낀다. 소장가들이 침 흘리는 또 하나의 물건은 핀란드 디자이너 알바 알토의 ‘스크린 100’으로, 집에 깔끔한 북유럽풍선을 더해준다. 예술과 조각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고햄의 집은 <바이레도>의 차가운 미니멀리즘보다는 향수 어린 편안한 분위기에 가깝다. “출장이 잦은터라 스톡홀름의 집에 머무는 게 진짜 호사스러운 시간이죠.”

주말이면 그와 가족은 평범한 북유럽 사람들처럼 스톡홀름에서 차로 25분 거리인 섬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스웨덴의 근사한 풍경 속에서 친지와 어울리며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바다에 맞닿아 있어서 수영을 하거나 사우나를 하러 가거나 카누를 탈 수 있답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삶이지만 행복을 만끽할 수 있죠.” 광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고햄은 이처럼 단순한 삶의 가치를 인생에 들여놓고자 애쓴다. 근무 시간이나 장기 출장을 줄여 ‘분주한 면이 줄어들고 보다 삶의 균형이 맞게끔’ 집에 머물 때면 그 순간에 집중한다.

사업 운영이라는 지적인 과제에 지친 고햄은 최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 바로 운동으로 돌아왔다. “운동선수로 지내던 시절 몸을 움직이던게 그리워서 러닝과 역도, 권투, 레슬링, 암벽등반, 서핑, 카누, 스키를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상태가 되거든요.” 목소리에 쓴웃음을 실어, 그가 덧붙였다.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건 아닐까 고민 중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애쓰며 토론토에서 자란 10대 소년이었던 고햄은 어린 시절 이미 위기를 경험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농구를 그만두면서, 10대 때 만들어낸 정체성은 다시금 산산이 부서졌다. 현재 사업가, 리더,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그의 삶은 지극히 다면적이며 다시 운동에 집착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다. 통증이 매해 심해진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타투를 하고 있는 그인 것이다.

그게 바로 고햄이다. 그를 멈출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문신은 계속 늘어날 테고, 사업은 점점 성장할테고, 너무나 풍부해서 ‘일종의 저주’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인 그의 아이디어는 병에 담겨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열 번, 어쩌면 백 번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아니라 일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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