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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수잔나 무어

상류사회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을 지닌 작가,
그리고 슈퍼 모델로 활동한 과거
글 by Charles Shafaieh. 사진 by Lulu Sylbert.

작가 수잔나 무어의 젊은 시절은 마치 동화 같다. 1995년작 에로틱 스릴러 「인 더 컷In the Cut」을 비롯한 논픽션 작품과 소설로 호평받는 작가가 되기 전에, 그녀는 「투나잇 쇼」에서 모델로 활약했고, 워렌 비티와 잭 니콜슨의 대본을 검토했으며, 앨리스 카이저(기업가 헨리 카이저의 아내), 존 디디온 같은 은인들과 친구가 되었고, 오드리 햅번,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의 연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동화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 폭력과 학대, 거기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후유증은 화려한 삶과 애정 관계를 억눌렀다. 2020년에 출간된 무어의 자서전 「미스 알루미늄」은 잃어버린 세계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려는 젊은 여성을 섬세하게 그린 초상이다.

CS: 「미스 알루미늄」에서는 의상 자체가 캐릭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방식, 당신이 자신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의상의 힘을 처음 간파한 것은 언제인가?

SM: 어릴 때 나는 옷과 겉모습은 변장과 공격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이다. 할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던 집 안주인에게서 얻어 온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수선해 내 어머니에게 입혔다. 우습게도 카이저 부인이 열일곱 살이었던 내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고급 의상을 보냈을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 옷은 그것들이 전부였다. 그 옷들을 보고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추정했다. 이를 테면 내가 부자인 줄 착각한다든지. 나 역시 체면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흉내 내며 거들먹거렸다. 특히 여성이 방에 들어오면 나는 나보다 젊은 사람이라도 벌떡 일어서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렇게 늙었는데도!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그들의 망령 때문이다.

CS: 그것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일종의 연기 같다.

SM: 10대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부터 나는 꽤 거칠고 반항적인 아이가 되었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험한 말을 쓰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 역시 어떤 면에서는 여성스러워지는 것을 극구 거부하는 수단이었다. 일종의 연기였던 셈이다. 나중에 나는 모델로서 연기를 했다. 내가 모델을 하기에 아깝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 그런 식으로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해서였다. 사진작가가 “섹시해 보여요!”라고 하면 나는 질색했다! 하지만 내게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히는 순간 다리와 입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잘 아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감탄한다!

CS: 유명인이 잔뜩 모인 만찬에서처럼 당신 자신을 별로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었다.

SM: 진정한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인 듯이 행세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글을 쓸 때도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확실히 알았다. 훌륭한 모델이 아니고 절대 배우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일부 여성들처럼 육감적이지도 않아서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그 시대에는 내가 마치 남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똑똑했고 책에서 매기 툴리버, 이저벨 아처에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 방식을 발견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스며들 수 있고, 내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치를 사용했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내가 지미 스튜어트 옆에 앉아 있다면 긴장해서 피가 마를 텐데! 당신은 어떻게 버틴 거죠?” 나는 고집을 피우지 않고 늘 경청했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침묵은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람들이 내게 이것저것 털어놨으니까.

CS: 당신은 예리한 관찰자다. 하지만 회고록은 기억에도 의존한다.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간단한 과정이었나?

SM: 기억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나는 원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원고를 보내 불편하거나 불쾌하거나 부정확한 부분을 알려주면 삭제하겠다고 했다. 일종의 검열이지만 내게는 그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결국 몇몇 사실을 틀리게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내 동생도 비슷한 착각을 한 적이 있다. 동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가 동물원에 간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이 있었다고 동생에게 장담했다. 그 후 몇 주에 걸쳐 동생은 기억의 토막들이 돌아왔다는 편지를 보냈다. 감동적이었다.

CS: 당신의 작품이 다 그렇지만 「미스 알루미늄」은 내용과 문체를 매우 신중하게 구성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상세히 다룬 시기에 해당하지 않는 당신이나 타인들의 삶은 언급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설정했나?

SM: 사건 이후 50년간 습득한 지혜와 경험으로 논평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글 자체가 내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나는 보복을 하거나 전부 까발리는 것은 원치 않았고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글쓰기에 대한 글은 진부해지기 십상이다. 나는 질질 짜거나, 불쌍한 척하거나, 너무 예민하게 굴지 않고 이 모든 사건 속에서 내가 연기한 역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사진 속의 화려하고, 아름답고, 유명한 사람들에게 반격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나에 대해 꽤 많은 것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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