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 Arts & Culture

애비 스타인:
나는 원했다. 지적인 이단아가 되기를

랍비 애비 스타인이 「언오소독스Unorthodox」의 저자 데보라 펠드먼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의 성전환에 대해, 전통과 그녀의 관계,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몸담고 성장했던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와의 결별에 대해.


Photography by Katie McCurdy. Styling by Dominick Barcelona.

애비 스타인은 스물아홉이란 나이에 매우 드문 타이틀을 얻었다. 그녀는 초정통파 하시디즘 유대교 공동체에서 성장한 후 본인이 트랜스젠더임을 공개한 최초의 여성이다. 현재 콜롬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이 여성은 강연자, 사회 활동가, 그리고 「비커밍 이브: 초정통파 유대교 랍비에서 트렌스젠더 여성으로의 여정Becoming Eve: My Journey From Ultra-Orthodox Rabbi to Transgender Woman」의 저자이다. 하지만 그 위치까지 다다르는 길이 결코 평탄할 순 없었다. 스타인은 뉴욕 브루클린이라기보다는 19세기 동부 유럽 슈테틀이라는 유대인 집성촌을 훨씬 닮은, 윌리엄스버그라는 이문화 집단 거주지의 명망 있는 랍비 가정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영어를 전혀 쓰지 않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성차별을 하는 공동체에서 남성의 역할에 갇혀 지냈다. 2012년 스타인이 그 공동체를 떠난 후 제일 먼저 읽은 책은 그 해에 출간된 데보라 펠드먼의 회고록 「언오소독스: 나의 하시드 뿌리의 불미스러운 거부/나의 하시드 뿌리 거부에 관한 스캔들」이었다. 스타인과 같은 지역 공동체를 버리고 떠나온 펠드먼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미니시리즈(한국어 제목 <그리고 베를린에서>-옮긴이)로 제작되며 전 세계가 그녀의 이야기를 시청하게 됐다. 펠드먼은 줌을 통해 두 사람의 공통된 여정에 관해 스타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현재 스타인의 신앙과 종교 의식, 최근에 다시 시작한 랍비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즐거웠던 부분이들 그리워지기 시작했어요.”라고 스타인은 말한다. “음식과 음악, 공동체 같은 것들요. 그런 것들을 다시 마주하는 게 괜찮아지기까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린 공개 토론회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당신은 <언오소독스>의 넷플릭스 드라마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죠.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뿌리와의 결별 과정부터 얘기해주세요.

제가 처음 계율을 위반한 안식일은 2012년 1월, 제 아들의 할례 직후였어요. 그때만 해도 영어로 읽거나 소통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히브리어 포럼을 열람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성전환자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부분이 기억나요. 첫 몇 달은 정말 너무 힘들어서 누구든 저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어요. 그런데 예전에 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의 페이스북 모임에 어떤 분이 저를 초대해줬어요. 당시에는 인원이 2백 명 밖에 되지 않았죠. 그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누었어요. 성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고 종교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분명 절 떠날 거라 생각했죠. 2012년 유대교 섣달그믐에 아내의 부모님이 아내에게 저랑 갈라서라고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아내는 싫다고 했어요.

 

 

“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때쯤, 이미 애는 다섯이고 그 공동체에 갇힌 몸인데, 그곳을 탈출해서 살아갈만한 기술조차 하나 없는 거죠.”

 

 

 

정말 놀랍네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우리 집은 랍비[하시디즘 공동체에선 귀족과 동등한 위치] 집안이었기 때문에 레베rebbe[최고 종교 지도자]께서 제 아내와 얘기를 나눠보겠다고 했어요. 원래 그런 분은 여성과는 얘기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아내의 부모님은 아내가 저를 떠나도록 설득할 사람이 필요했죠. 하지만 레베께선 결혼생활 유지를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 할뿐이었어요. 예를 들면, 도서관에 출입을 금지시킨 것 같은. 정말 너무나 1930년대스럽지 않나요! 그분이 루마니아에서 십대였을 때는 도서관이 동네 문제아들이 모이는 곳이었던 거죠. 대신 매일 기도를 해야 한다 등등의 조건을 달았어요. 결국엔 제가 아내에게 이제 난 정통파 유대교도로 남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신 기꺼이 절충안을 낼 의향은 있다고 말했어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저의 이단 행위를 비난했죠. 그러다 아내의 어머니가 어느 날 나타나더니 딸을 집에 데려간다고 통보했어요. 그 뒤로 아내는 제 삶에서 사라졌죠. 아내가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몰라요. 우리는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 했으니까요.

 

아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제 경우엔 제가 떠난 가장 큰 이유가 아들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각고의 노력 끝에도 아이를 데리고 공동체를 떠나는 데 끝내 성공하는 여성은 정말 드물어요. 그런 시도를 한 남성에 대해선 들어보지도 못 했어요. 많은 이들에게 자식과의 연이 완전히 끊어진다는 바로 그 점이 공동체와의 결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잖아요.

처음 몇 주간은 공동체에서 완전히 차단당했어요. 아들을 아예 못 만나게 했죠. 그쪽에서 양육권을 다 갖고 저는 아들과 어떤 형태의 관계도 맺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명시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종교법에 의거한 이혼]을 먼저 해야 했죠.

맞아요.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남편만이 이혼을 허락할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아내가 이혼 서류를 원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이혼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급할 게 없어요. 저는 이혼을 하든 말든 상관없고 이혼 서류가 필요하지도 않아요.’

세트 디자인: 하비에르 이리고옌, 헤어: 다나 보이어, 메이크업: 케이티 멜린저

주석

1. 「언오소독스: 나의 하시드 뿌리를 거부한 불미스러운 스캔들」은 데보라 펠드먼의 2012년 회고록으로, 브루클린 유대교 사트마르 공동체에서의 어린 시절과 열아홉 살에 첫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결혼 생활에서 도망친 후 독일에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2. 풋스텝스(Footsteps, 발자국) 뉴욕의 비영리 조직으로, 하레디파나 유대교 하시디즘 공동체를 떠나길 원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정서적으로 지원하며 더불어 교육과 구직 가이드를 제공한다. 풋스텝스는 2003년 설립 이래 1700명 이상을 지원해왔다고 밝혔다.

아들과의 면접권을 확보하기 위해 그것만큼 영향력 있는 조건도 없겠네요. 저는 공동체를 떠날 때 그런 힘을 갖지 못 했고, 그래서 정말 여러 해 동안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야했어요. 그래서 책을 꼭 써야했어요. 양육권 협상에 꼭 필요했으니까요.

아내 측에선 초고속 이혼을 원했어요. 당시엔 이유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아내가 비밀리에 약혼을 했던 거예요. 그들은 아내의 영혼에 불운이 깃들까봐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저를 압박해왔고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좋아요, 일반적인 공동 친권에 합의하는 것으로 하죠.’ 처음에는 좀 버텼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저는 합의서에 몇몇 조항들을 영리하게 끼워 넣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아들을 만날 때 그들은 나의 복장에 간섭할 수 없다.’ 같은 거요. 그때 그들은 마음이 너무 급했던 나머지 그 조항을 그저 하시드 유대인 복장을 갖추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했어요. 저는 그때 이미 그 조항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정말 유리한 합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고, 이혼을 하고나자 하시드 공동체에 저를 붙잡는 건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공동체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공동체의 자기 성찰은 전혀 없다고 보나요?

저의 아버지가 제게 말했듯이 그들이 소위 ‘나약한 젊은이들’에 대응하는 방법이란 것이 열여덟에 결혼시켜서 손발을 묶어두는 거였어요. 아버지는 그런 말을 대놓고 했어요. 전통을 따르면서 생기는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인 전략인 겁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25세가 돼야 두뇌가 완전히 발달한다는 심리학 연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때쯤, 이미 애는 다섯이고 그 공동체에 갇힌 몸인데, 그곳을 탈출해서 살아갈만한 기술조차 하나 없는 거죠.”

이제 떠나는 사람들을 공동체가 독단적으로 차단할 수 없게 하는 새로운 정책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 중에 떠나버린 자식이 없는 집안은 찾기 어려워요.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잖아요? 이젠 공동체를 떠나도 예전처럼 완전히 차단당하지 않죠.

네. 이젠 수치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을 수치로 여겨서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계속 가까이 지내다보면 어느 날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때문인 것도 같고요. 저의 가족도 제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다음에도 저와 연락을 하며 지냈어요. 제가 커밍아웃하기 전까진 말이죠. 그러다가 저는 다시 가족의 수치가 됐죠. 제가 최초의 성전환자가 됐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로는 정말 저와 연락을 끊어버렸죠.

제가 사로잡혀 있는 인물 중에 이디시어 문화 서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루드미르의 처녀가 있어요. 하시드 유대교도 여성 중에 레베[영적 지도자]가 된 유일한 여성이죠.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롤모델이 없죠. 왜냐하면 적어도 정통파 유대교에서는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신분으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여자가 영적으로 더 높은 신분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선 남자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거죠. 그 반대의 변화를 유대교에서는 신에게서 멀어지는 행위로 볼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당신이 속했던 공동체에서 트랜스젠더 남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제 아버지의 경우에는 당연히 있었어요. 저는 2015년 9월에 제 육체의 성 전환을 시작했어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기 전에 굉장히 진보적인 저의 랍비에게 먼저 모든 걸 얘기했고, 그 분은 제가 아버지에게 커밍아웃할 때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랍비께서도 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에서 성장했고 이미 저의 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으셨죠. 아버지는 늘 그분과 논쟁을 벌이곤 했어요. 아버지는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확신하셨던 것 같고, 어머니는 저의 성향을 어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난감해하셨죠. 하지만 두 분 다 늘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하셨어요. 다만 성전환자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탈무드에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나요? 더 이상 쉬쉬할 비밀이 아니잖아요.

예시바(정통파 유대교도를 위한 학교-옮긴이)에 다닐 때 그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탈무드에는 적어도 여섯 개의 성性이 존재한다고 나오지 않냐고. 하지만 대답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요. ‘아, 고대 예루살렘에는 존재했었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더 이상 없어.’ 정해진 대답이었죠! 그게 아니면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했어요. ‘그건 영혼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란다.’ 이것도 애용되는 답변이었죠. 제가 십대가 된 이후로 아버지는 제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아버지의 감은 틀린 게 아니었어요. 저는 2년간 남자 아이와 사귀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보다 오래 누군가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누구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 했지만 우린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터득해나갔어요. 그리고 2015년 11월, 저는 아버지와 마주 앉았어요. “아버지는 제게 분명 뭔가가 있다고 늘 말씀하셨죠. 이제 말씀드릴 준비가 됐어요. 저와 랍비를 만나러 가시겠어요?” 저는 제 감정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랍비는 확실히 현명하셨어요. “아니. 영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셨죠.

일리가 있네요. 아버지의 언어를 사용하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우린 정말 흥미로운 글을 찾아냈죠. 18세기 즐로초브 왕조의 하시드파 레베 미셸의 말씀 중에 때로는 여성이 남성의 육체로 환생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는 그분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말을 그냥 묵살할 수 없었죠. 랍비와 저는 저의 성전환에 대해 이런 영적인 개념을 활용했어요. 사실 제겐 정체성과 생물학적 문제였지만 아버지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의 틀은 영적인 거였어요.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아버지가 납득했다는 것을 아버지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 이런 일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치자. 하지만 오직 자딕[유대교의 성인聖人, 고결한 자]께서만 이 사실을 확실히 아실 수 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당신이 신뢰하는 권위자가 확인을 해주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였죠.

남자들이 몸의 육체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분리하기 위해 가르틀[기도할 때 허리에 두르는 띠]을 두른다는 거 아시죠? 여자들은 그 띠를 두르지 않죠. 왜냐하면 여자는 육체적이기만 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남자들은 영적이고 여자들은 육적인 존재라는 설명을 들으며 자라났어요. 남자들은 신과 소통하고 여자들은 남자를 통해 신을 영접하기 때문에 남자들이 신과 소통할 수 있도록 나머지 궂은일을 모두 해야 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당신의 아버지께선 당신의 성의 전환이 영적으로 멀어지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었겠어요. 여성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신에게서 멀어진다고요.

아버지는 종교적 은유 따위를 모두 버리고 이디시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랍비를 우리 대화에서 소외시켰어요. “너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하찮은 존재잖니.” 아버지는 마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듯이 얘기했어요. “아무리 여자들 기분을 맞춰주려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해도 너랑 나, 우리끼린 진실을 알고 있잖니.”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한 시간 넘게 제 마음 속 얘기를 다 쏟아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니까요. 제가 서너 살 때 제 남근을 잘라버리고 싶었던 일까지 다 말씀드렸는데 말이죠.

애비씨, <언오소독스>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하시드파 사람들이 앞 다퉈 이런 칼럼을 썼던 거 기억하세요? ‘이건 역겨운 거짓말이다. 여성은 우리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존재다.’ 그리고 성서에서 ‘여성의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기록되어있는 부분들을 찾아내어 증거로 제시했던 것?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성서를 공부하고, 최고의 권위는 성서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그 말씀을 매일 무시하고 있다고?

그들은 종교에 집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그 사람들에겐 첫째도 문화, 둘째도 문화, 오직 문화, 문화만을 강조할 뿐이에요. ‘네가 만약 옷을 이렇게 입지 않는다면’, ‘네가 만약 이런 언어를 쓰지 않는다면’, 이런 것들은 사실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저는 어린 시절에 겪은 이런 모순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요.

당연히 트라우마가 되죠. 저는 오로지 성서의 말씀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달렸다는 건 무슨 의미죠?

제가 열여섯 살 때 「샤아르 하길굴림」[환생의 문](하이임 비탈이라는 랍비가 16세기에 그의 스승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옮긴이)을 공부하며 성을 전환해서 환생하는 것에 대해 읽었거든요. 하지만 이 책을 아버지에게 들고 가서 “아버지, 이게 나예요.”라고 말한다고 해도 아버지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고 인정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성서와 현실에는 괴리가 있었어요. 저는 성서의 말씀에만 집중했어요.

그렇다면 가족과 공동체를 떠날 때도 성서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나요?

사실, 저는 성서를 거부합니다. 성서가 무조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제게 하나님을 믿냐고 물어오면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합니다. “먼저 믿음과 하나님의 의미를 정의내려야겠죠.” 우리의 성장기에 함께 했던 하나님을 떠올려보면, 저는 하늘에 사는 무서운 귀신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만……. 하시드 유대교나 전체로서의 유대교의 메시지 중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도 많아요. 그저 자기 편한 대로 이건 취하고 이건 버리고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요, 저한테는 맞지 않아도 그들에겐 그 방식이 맞을 수 있고,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통파 공동체가 아닌 곳에선 질문을 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특징이라고 하잖아요. 어릴 때도 그렇다고 들으며 자라났던 것 같은데, 현실에선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죠.

여자들이 율법을 공부하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님이 여자를 질문이 너무 많은 존재로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질문이 많은가보네요.

지금 당신과 종교의 관계는 어떤가요?

저는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합법적으로 공인된 랍비 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법적으로도 저는 여성이기 때문에 저는 하시드파의 첫 번째 공인된 여성 랍비이기도 하죠. 학위를 따기가 쉽진 않아요. 5년이나 걸렸죠. 하지만 저는 제가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저는 제대로 배운 이단아가 되고 싶었죠.

랍비의 의무도 수행하고 있나요?

처음에는 그와 관련된 일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차츰차츰 깨닫기 시작했죠. 제가 그 방면에 능력이 있다는 걸 말이죠. 좋은 의미로 힘이 있는 자리란 것도 깨달았어요. 진보적인 집단에서도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의식이나 관습을 지키는 것에 나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어떤 공동체에 속하길 원한다면 영적인 공동체를 찾아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 지금도 누군가 절 ‘랍비 애비 스타인’이라고 부르면 손발이 오글거려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타이틀이라기 보단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 호칭에 좀 더 편안해졌어요. 진화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늘 세상에는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고 삶은 불변하다고 들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삶의 모든 것을 다 통달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다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