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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아 스리니바산,
성에 관한 철학

섹스, 정치, 학문의 역할에 대해.

  • Arts & Culture

섹스, 정치, 학문의 역할에 대해.

‘성적 욕망은 우리 안에 은밀히 머물다가, 상황에 이끌려 드러나게 될 때를 기다린다. 우리는 욕망을 통제할 힘이 없고, 욕망이 현명한 일일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다. 욕망이 사적이며, 자연적이며, 고정되어 있다는 이런 생각은 시대를 초월한 계율이자 현대 성문화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욕망을 타고난 것으로 취급하는 대신 조건에 따라 다르며 다분히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 교수 아미아 스리니바산이 매료되어 있는 아이디어다. “좋은 정치란 건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신성시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녀는 썼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성적 취향은 바뀔 수 있고, 바뀌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렇게 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스리니바산 특유의 감수성에 따른 것이다. 감정의 문제를 진지하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 집중하는 것, 일상생활의 경험에 관심을 두는 것, 분석적 탐구의 도구를 사용하여 세상의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는 태도 등. 좁은 관념에 집중하는 것이 관례인 학문적 철학의 영역에서 그녀와 같은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스리니바산은 종종 자신의 마음이 ‘가지치기하듯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로서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이 대중 사상가와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귀결될까 봐 두려웠다. “철학 훈련을 받을 때는,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고 싶은 야망을 한 편에 치워두어야 했어요.” 11월 초,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 날 옥스퍼드 내 단과대학에서 만난 그녀가 한 말이다.

이제 서른일곱 살이 된 스리니바산은 그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천착하면서 이 이슈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덕분에 오늘날, 그녀는 살아 있는 가장 흥미로운 공공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거침없이 에세이들을 써내고, 옥스퍼드에서 인정받는 지위를 얻고, 가장 최근에는 성적 욕망의 정치학에 관한 책을 내는 등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게다가 스리니바산의 가장 독특한 점은 분석 철학자로서의 연구가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욕망, 동의, 포르노그래피, 학생과의 동침에 따르는 윤리 등을 다룬 에세이집 섹스할 권리(The Right to Sex)는 현대 페미니즘의 한계를 탐구하는데, 스리니바산의 특징이라 할 예리한 질문과 섬세하면서도 엄격한 성향이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불평등한 권력 역학 내에서 성적 현실에 직면했을 때,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구제책으로서 ‘동의법’의 제정을 제시했다.1 그러나 진정한 동의의 미묘한 차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협약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리니바산은 조심성이 많아서 단순해 보이는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이 질문에 답하기가 그처럼 어렵다는 건 법이라는 도구를 택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 아닐까요?”

빛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드리우고, 감청색 진과 흰색 스니커즈로 캐주얼한 차림을 한 스리니바산은 활달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다. ‘올 소울즈 단과대학’에 있는 그녀의 사무실은 인상적인 나무 패널로 꾸며져 있었고, 액자 속 포스터, 녹색 벨벳 소파 위에 놓인 잡지 한 권, 벽난로 선반에 놓인, 라다크 지역에서 가져온 무굴제국 시대의 미니어처와 티벳 불교 의식에 쓰는 심벌 같은 것들이 온화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스리니바산은 바레인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인도인이다. 그녀가 책을 헌정해 올린 대상인 그녀의 어머니는 댄서이자 안무가였으며, 아버지는 은행가로 지내다 은퇴했다. 그녀는 힌두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처음으로 인도 철학을 접했고 뉴욕, 싱가포르, 타이완과 런던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스퍼드의 치첼레 대학 사회정치이론 교수로 임명(나는 이 직함을 제대로 발음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그녀는 시인인 필립 라르킨이 ‘비칠리(bitchily, 성마르다는 뜻-옮긴이)’와 라임을 맞추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된 이후의 몇몇 인터뷰에서 스리니바산은 엄격한 인상을 남겼다. “일부러 원래의 나보다 더 진지한 모습을 연출해 보이는 때가 종종 있어요. 순전히 내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한다. 혹자는 이것을 그녀의 연구 분야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섹스할 권리의 서문에 그녀가 어느 유명한 남성 철학자와 얽힌 이야기를 쓴 대목을 보면 그렇다. 이 남성 철학자가 그녀에게, 자기가 페미니스트적인 성 비평에 반대하는 이유는 “진정으로 정치와 상관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로지 섹스할 때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부러 원래의 나보다 더 진지한 모습을

연출해 보이는 때가 종종 있어요.

순전히 내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에요.”

스리니바산이 쓰는 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신념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천분을 자각하는가,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다른 것을 원했을 것인가 같은 상황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 누구나 섹스할 권리가 있는가?-2018년 ‘#MeToo’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된 후 화제가 된 권위 있는 에세이-에서 스리니바산은 22세의 인셀(incel, 원하지 않았으나 성관계를 해보지 못한 사람) 엘리엇 로저의 사례로 글을 시작한다. 그는 2014년에 캘리포니아 이슬라 비스타에서 여섯 명을 살해하고, 열네 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로저가 한 일은 역겨운 여성 혐오와 뒤틀린 인종차별 의식에 떠밀린 것이었다. 그러나 스리니바산은 그가 내놓은 장문의 성명서에서 특정 신체(거드름 피우는 금발 계집)에 대한 성적 특권 의식을 찾아냈다. 그것은 현대의 성적 정치학을 형성하는배제를 나타낸다. 특정 신체(로저가 느끼기에 자신의 몸도 포함됨)섹스하기 적합지 않다고 여겨지는 배제가, 욕망이 정치적이며우리의 사회적 편견을 면밀히 추적하는 방식이라는 방증이다. 한때는 페미니즘이 이것을 숙고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지만, 이제는 여성의 욕망은 행위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뿐 정치 비평의 장에서 멀어졌다.

(1) 2018년에 <리갈플링(LegalFling)>이라는 네덜란드 회사가 섹스하기 전에 파트너가 계약에 서명할 수 있는 앱을 홍보하면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일이 있다. 비평가들은 성적 동의란 어제든 철회할 수 있으므로, 이 회사가 성적 동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 1944년에 설립된 이래, 사회정치이론의 치첼레 대학 학장은 이전에 이사야 베를린을 비롯한 일련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이 맡아 왔다. 스리니바산은 최초의 여성이자 유색인종이며, 가장 어린 나이에 그 역할을 맡았다.

철학의 불편함과 복잡성에 대한 스리니바산의 태도는 다소 구식이며, 대단히 참신하기도 하다. 섹스할 권리의 리뷰에서 아일랜드 소설가 나오이즈 돌란은 스리니바산에 대해 “책을 주로 트위터에 올리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 하는 꼬장꼬장한 검토에 대해 대범하다. 아무리 애써도 험담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써서 쓴 단락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그녀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 비평가들이 그녀의 연구와 작업에 대해 반지성주의적 태도라고 한 것에 대해 우려했다. (섹스할 권리에 덜 우호적인 어느 리뷰에서 이 책은 ‘소비에트 스타일로 성을 재교육’하는 ‘전체주의적 소책자’로 요약되기도 했다)3 “사람들이 분노하고 성내는 대상이 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으려 하는 건… 그건 정말 거슬리더라고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스리니바산의 작업은 철학자들에 비해 훨씬 더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올해 초, 그녀는 『보그』지에 모습을 보였다.4 나는 그녀에게 철학이나 철학자의 사회적 쓰임 및 대중들이 쉽게 자신들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일반적으로 철학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스리니바산은 대중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버나드 윌리엄스와 데릭 파핏 같은 철학자들을 존경한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철학의 복잡성과 난해함에 대한 비판이 계속 있었고, 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늘 있었어요. 저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대중에게 복잡한 사상을 전달하는 데 따르는 문제는 철학자들의 빈약한 글쓰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공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지식이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보수적인 공격용으로 쉽사리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흔히 ‘쓸데없다’고 하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스리니바산의 저술에서 보이는 섬세한 붓놀림은 강의실 외부 세상의 어지러움과는 담을 쌓은 것 같다. 실제로 그녀의 책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주로 그녀의 제자들과 학문적 동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물론 대학 풍경도 10년 사이에 많이 바뀌기는 했다. 지금으로부터 채 20년이 지나지 않은 과거, 스리니바산이 예일대 학부생이었던 시절만 해도 페미니즘은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서, 그녀가 옥스퍼드에서 가르치는 페미니즘 이론의 학부 교과목은 팬데믹 이전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수강해서 대학 내에서 가장 넓은 강의실로 옮겨야 했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성내는 대상이 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으려 하는 건… 그건 정말 거슬리더라고요.”

스리니바산이 성인이 된 후 엘리트 대학들을 오가며 배우고 가르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녀가 그 안에서 늘 편안하게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로즈 프로젝트(The Rhodes Project)』에 실린 2015년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옥스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연결되는 느낌이 거의 없고 어울릴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낯선 땅의 이방인같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의 진행자가 그녀에게, 인생에서 앞으로의 10년이 어떨 거라고 상상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루할 틈이 없고, 남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지금의 그녀를 보면 쉬운 대답, 환원적 사고에 대한 저항으로 자신의 열망을 실현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3) 『더 텔레그래프』지에 기고한 글에서 제인 오그래디는 성적 취향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스리니바산을 비난했는데, 섹스할 권리에서 스리니바산은 자신이 ‘정의의 요구에 의해 규제되는 욕망이 아니라 불의의 속박에서 해방된 욕망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4) 스리니바산은 2021년 3월 런던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납치해 살해한 사라 에버라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보그』와 인터뷰했다. 스리니바산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사복 경찰을 배치하는 보수당 정부의 해법을 지지하는 여성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 권력은 신중하고 섬세하게 쓰여야 해요. 안타깝게도 아직도 페미니스트들이 전력투구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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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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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텔레그래프』지에 기고한 글에서 제인 오그래디는 성적 취향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스리니바산을 비난했는데, 섹스할 권리에서 스리니바산은 자신이 ‘정의의 요구에 의해 규제되는 욕망이 아니라 불의의 속박에서 해방된 욕망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4) 스리니바산은 2021년 3월 런던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납치해 살해한 사라 에버라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보그』와 인터뷰했다. 스리니바산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사복 경찰을 배치하는 보수당 정부의 해법을 지지하는 여성이 많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 권력은 신중하고 섬세하게 쓰여야 해요. 안타깝게도 아직도 페미니스트들이 전력투구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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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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