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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사물

코드피스의 간략한 역사.
글 by Stephanie d’Arc Taylor. 사진 by WBC ART / Alamy.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빅토리아 밀러에 따르면 힐러리 맨텔의 헨리 8세 이야기를 각색한 BBC의 2015년 드라마 「울프 홀」은 환상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꽤 정확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코드피스였다. 그녀는 『가디언』지에 이 코드피스가 “너무 작다. 적어도 두 배 크기는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밀러는 코드피스 전문가다. 코드피스는 용두사미로 끝난 16세기 초중반의 패션 유행으로, 당시 기사도에 맞는 젊은이라면 코드피스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 생식기 위를 덮도록 재단된 천 주머니인 코드피스는 처음에는 놀랍게도 더욱 몸을 드러내는 스타일의 호즈와 더블렛이 유행하면서, 수수하고 얌전한 의복으로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기사도의 출현으로 남성들이 자신의 용맹함을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해지자, 코드피스 역시 관심을 끌었다.

16세기 말이 되자 코드피스의 인기는 사그라들었다. 1580년대에 이 의복이 예의 바른 사회에서는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신체 부위에 관심을 끌게 했다고 말하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코드피스의 쇠락을 “공허하고 쓸모없는 것의 모범 사례”라며 축하했다.

4세기 후, 코드피스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스포츠 용품으로서 국부 보호대의 형태로 남성 탈의실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1960년대에 가죽 의상을 선호하는 게이 남성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헤비 메탈의 상징인 주다스 프리스트가 이런 스타일을 차용하였다. 1980년대 후반, 액슬 로즈는 백합처럼 하얀 허벅지 안쪽이 모두에게 보이도록 가죽 코드피스와 가죽바지를 입고 순회공연을 했다. 장 폴 고티에는 코드피스를 런웨이에 내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끈으로 이루어진 베이지색 코르셋과 짝을 이룬 코드피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코드피스는 과시욕이 넘치는 사람이 전통적인 패션과 도덕성을 향해 썩 물러가라고 하는 외침이다. (소문에 따르면 「울프 홀」의 미국판 제작자들이 코드피스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고증한 크기대로 (크게) 만들었다가 큰 파장이 일어난 바 있어, 영국에서는 실제보다 작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한다.) 겸손한 사람도 모두 코드피스를 차고 있었던 시절과는 그야말로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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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2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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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2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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