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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좋은 느낌만

억지 긍정에 대하여.
글 by Rebecca Liu. 사진 by Evelyn Hofer of Saul Steinberg in New York, 1978.

소셜 미디어의 부작용 중 하나는 종종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우리를 가깝게 이어준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화나게 한다. 지식을 전달한다고 공언하지만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빌 게이츠가 악마의 화신이라는 확신을 심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는 위안을 주는 공간을 추구한다지만, 수그러들 줄 모르는 명랑함은 오히려 유해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기분으로 평준화하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문제다. 이제 ‘나쁜 에너지’와 ‘혐오자’를 금지하는 인스타그램 문구로 오로지 신나는 기분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억지 긍정’이 인터넷에서 나온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대중의 인식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는 인터넷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단어의 구글 검색 빈도는 2019년 2월에 처음 증가했다가 집단적 고통과 정신적 불안의 해인 2020년에 『보그』, 『더 컷』, 『허핑턴 포스트』, 『리파이너리 29』 등에서 비중 있게 다루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보그』는 특히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등장하는 응원 댓글을 지적했다. “연인과 헤어졌나요? 곧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예요!” 남들의 힘든 감정, 기쁜 감정을 존중하려면 친밀감, 너그러움, 서로 간의 신뢰,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는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런 미덕은 사실 자신이 잘 살고 있음을 불특정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해 찾는 공간인 소셜 미디어의 지배적인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 보니 용기를 불어넣으려는 시도에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소셜 미디어에서 이 엄격한 기준을 충족할 이용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온라인에서는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억지 긍정의 진정한 수혜자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유명인은 팬데믹 기간에 파티를 연다는 비판을 회피하는 데 억지 긍정을 동원한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용기 충전’ 물병에 인쇄할 문구로 “당신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당신과 함께할게요.”보다 “힘내라, 여성들이여!”가 낫다고 본다. (억지 긍정은 여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응원 문구를 남성 언어로 바꾸면 근엄한 권위자의 목소리로 내뱉는 “못난 놈처럼 굴지 마라.”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연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심지어 그냥 일진이 사나운 사람들에게 진부한 응원은 별로 필요 없다(용기 충전 물병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마도 최고의 ‘긍정’은 괴로운 감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해줄 누군가를 얻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식의 구호에서 위안을 찾기보다 고통을 나눌 사람들과 함께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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