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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쇼룸 투어:
〈뉴 크래프츠맨〉

아우터헤브리디스에서 센트럴런던까지 캐서린 록은 영국의 공예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글 by Malaika Byng. 사진 by Cecilie Jegsen.

 

<뉴 크래프츠맨> 쇼룸을 둘러보면 브리튼 제도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각 물건은 장소와 그 장소의 전통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미술공예운동(아트 앤 크래프트) 시대의 건물 한구석에 놓인 <비빙스 앤드 헨스비>의 스핀들 백 벤치는 웨일스의 윈저 의자 제작 전통을 통해 우리를 웨일스로 데려다준다. 근처의 테이블 위에는 안네마리 오설리번이 헤더(낮은 산에서 자라는 야생화-옮긴이)로 만든 새둥지 형태의 조명이 매달려 있다. 이 조명을 통해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토착 관목으로 생활용품을 만들어온 스코틀랜드의 오크니섬의 야생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 가운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캐서린 록이 오크 테이블에 앉아 도자기 머그잔에 담긴 차를 마시고 있다. “기술에 의존하며 일을 하다가도 내가 아는 도예가가 내가 들어본 장소에서 만든 핸드메이드 컵을 들고 있으면 삶이 더 만족스럽게 여겨져요.”라고 천천히 그러나 열정을 담아 그녀가 말한다. “차가 더 맛있어지기도 하지요.” 그녀 뒤에는 옥스퍼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 딜런 보웬의 접시들이 벽면에 줄지어 있고, 각각의 접시에는 슬립(점토물)을 바른 선명한 줄들이 새겨져 있다. “저에게 공예는 인간성의 표현입니다.”

록은 18명의 팀원들과 함께 뛰어난 숙련도를 갖춘 공예가들에게 집을 위한 물건들을 기획하고 의뢰한다. “많은 제작자들은 그저 전통을 따르지만 우리는 여기에 장난기와 호기심을 더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찾습니다.”라고 그녀가 설명한다. 19세기에 가죽 바지 작업장이었던 메이페어 지역의 노스 로우 쇼룸은 다양한 천연 소재들이 사용되는 고요한 안식처다. 이곳에서는 동일한 가구나 도자기가 없으며 불완전함이 환영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은 쉽게 버리는 문화를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의 메카이며 노스 로우와 평행선에 놓인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직접적인 반격을 가하는 것 같다. 여기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우리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와 긴장을 풀고 어깨를 떨구며 숨을 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이곳은 매우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록이 말한다. “여기에 말을 타고 온 손님도 있었어요. 그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그의 안장 제작자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지요.”

가벼운 대화가 거대한 협업의 네트워크로 이어질 수 있는 공예 세계에서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저는 매일 런던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쉬는 날 영국 어딘가를 여행한다면 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일하는 제작자를 찾아가요. 그리고 그 지역에 어떤 제작자들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지요.”라고 록이 말한다. 그녀는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여러 곳을 들르는 투어를 하면서 글래스고의 도예가 제임스 리글러와 비브 리를 만나고 에어 마을 근처의 <베그 x 코> 직물 공장을 방문하고 왔다.

“제작자의 작업실 방문은 그들의 기술, 동기, 야망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때때로 저는 선반의 무언가에서 그들이 잊고 있었던 오랜 아이디어를 포착하기도 하고 우리의 고객을 위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해요. 우리는 이곳저곳을 들여다보고 있답니다.”

록은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패션 유행의 주기보다는 어부의 스웨터와 농부의 덧옷과 같이 시대를 초월한 작업복에 매료된 학생에게 패션 산업은 잘 맞지 않게 느껴졌다. 그녀는 졸업 후 <해비타트>와 대형 슈퍼마켓인 <세인스베리> 등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통업체에서 가정용품 개발자로 15년 동안 일했다. 하지만 그녀는 획일성과 일회성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녀는 <세인즈베리>에 식품의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고 이것이 가정용품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12년 전 사람들이 식품을 사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파머스 마켓에 가서 생산자들을 만나고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기 시작했지요.”라고 록이 설명한다. “슈퍼마켓에서조차도 고객들은 소시지를 생산한 농장을 알고 돼지의 품종을 알 때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가 식품이 아닌 영역에서도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변화의 기로에 서있었지요.”

록은 대학 시절에 지역 전통에 뿌리를 둔 아름다운 가구와 공예품에 매료되었던 일이 계속 떠올랐다.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래서 2010년 그녀는 런던 아파트를 세를 주고 가방을 싸서 영국 전역을 다니는 공예 순례를 떠났다.

록은 셰틀랜드 제도의 레이스 공예가, 아우터헤브리디스 제도의 뱃사람들이 입는 ‘간지(gansey, 바람과 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울 스웨터-옮긴이)’ 제작자, 셰필드의 가위 제작자, 자수 셔츠를 입은 컴버랜드와 웨스트몰랜드의 레슬러들을 만났다. 그러한 만남을 통해 그녀는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의 역사와 재료에서 영향을 받은 개성 있는 공예 활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분명한 상업적 기반이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어요. 정말 자유롭고 개인적인 여행이었지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이러한 발견을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런던에서 그녀는 마크 헨더슨과 나탈리 멜튼과 손을 잡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공예가들을 지원했던 경험이 있고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에 서사와 개성이 있는 물건을 더하고 싶어 한다는 믿음이 있는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설립자가 되었고, 2014년에 옐레나 포드가 임원으로 합류했다.

록이 그녀의 여행에서 발견한 공예품의 상당수는 일상의 필요에서 탄생한 소박한 제품이었지만 팀은 이러한 노동 집약적 활동이 오늘날의 세상에서 지속 가능하려면 물건들에 어느 정도의 가격이 매겨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 크래프츠맨>의 컬렉션은 특별한 배경에서 온 것이 아니지만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다. 쇼룸이 부유한 지역인 메이페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특징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전에 ‘럭셔리’는 정제되고 매끄럽고 빛나지만 개성이 없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저는 ‘럭셔리’라는 단어가 두려웠어요.”라고 록이 말한다. “저의 감성은 불안정하고 인간적인 것이에요. 저는 흙을 느낄 수 있고 따스하고 기능적이며 풍부한 역사를 담고 있는 슬립웨어 도자기와 같이 미학적 약자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2년 후 메이페어에 <뉴 크래프츠맨>의 첫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때 광택이 가득하던 메이페어 분위기의 대안으로 질감이 풍부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시골의 일상에 깊은 관심이 있는 가구 디자이너 개리스 닐은 그들이 초기에 소개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그들은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 <뉴 크래프츠맨>은 닐을 스코틀랜드로 보내 전통공예협회에서 영국의 소멸 위기 전통 공예로 지정한 밀짚 등받이의 오크니 의자를 만드는 케빈 골드를 만나게 했다. “저는 의자의 형태를 약간 현대적으로 수정하고 케빈이 조금만 더 빠르게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라고 록이 말한다. “그때 개리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브로드가 오케이저널 체어’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영구소장품이 되었다.

<뉴 크래프츠맨>은 여러 차례 팝업 매장을 연 후 2014년 노스 로우에 정착했다. 록과 그녀의 팀은 1년에 4회 정도 가구와 공예품을 교체하고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녀가 영국 전역을 여행한 이래로 핸드메이드에 대한 대중의 취향이 급격히 변화했다. 영국 공예청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경우 2010년 2650만 명이었던 공예 시장의 규모가 2020년 3810만 명으로 급성장했다.1 <뉴 크래프츠맨>의 런칭 당시에는 인스타그램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저희는 처음에 인스타그램 계정도 없었지만 이제 인스타그램은 공예 시장의 판도를 몰라볼 정도로 바꾸어놓았습니다.”라고 록이 말한다. “누구나 그들의 작품을 팔로워들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지요.”

인스타그램에서의 경쟁과 새로운 세대의 아마추어 메이커들이 매출을 잠식할 수도 있었다. 누구나 도예가가 될 수 있는 지금 찻주전자에 250파운드 이상을 지불할 고객이 있을까? “우리와 일하는 예술가들의 뛰어난 기술과 그들이 장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1만 시간의 훈련에 대해 알리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우리의 가격을 설명할 필요가 있으니까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소셜미디어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록은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독점적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그녀는 무언가를 만들어본 일이 있었을까? “전에도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병을 하나 만들다가 한 시간 만에 포기했어요. 저에게는 인내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봉쇄 기간 동안 그냥 피아노를 쳤지요.”라고 록이 말한다. “공예가가 되려면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호텔과의 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공예에 대한 점차 큰 갈망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햄프셔의 헥필드 플레이스에서 깨어난 손님은 호텔이 BTW 디자인 스튜디오와 2018년 맺은 파트너십 덕분에 침대 옆 협탁에서 질감 처리된 유리 물잔을 발견하고 욕실에서는 유리공예가 마이클 러의 조명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뉴욕의 휘트비 호텔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바에서 칵테일을 즐기는 동안 천장에 매달린 영국 공예가 20명의 바구니들을 보고 그들의 솜씨에 놀라워한다. 록이 꿈꾸는 프로젝트는 몇백 년 전 우리의 인테리어가 모두 그러했듯 집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든 표면을 핸드메이드로 꾸미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은 집주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0년 변화를 감지한 록의 직감은 정확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도자기에 모든 것을 바친 세스 로건과 자수 놓는 것을 즐기는 그레타 툰베리 등 공예를 사랑하는 유명인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공예는 이제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생 시절 “유행”이라는 말에 그러했듯 “트렌드”라는 단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컬렉션이 세월의 시험을 견디기를 바랍니다.”라고 그녀가 말한다. 툰베리도 이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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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예청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공예품 구매자 중 거의 3분의 1(32%)이 35세 미만으로, 밀레니얼이 공예 시장을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영국의 공예제품 판매는 30억 파운드(37억 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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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예청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공예품 구매자 중 거의 3분의 1(32%)이 35세 미만으로, 밀레니얼이 공예 시장을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 영국의 공예제품 판매는 30억 파운드(37억 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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