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미학 뒤에는 그가 격렬하게 고민한 철학이 깔려 있었다. 아우돌프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원예 기법인 ‘더치 웨이브(Dutch Wave)’를 개척한 생태학자 출신의 정원 디자이너 헹크 헤릿선(Henk Gerritsen)과 친구가 되었다. “그의 정원은 야생적이었어요.”라고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 도처에서 이어지는 영국식 정원의 엄격한 전통을 교육받은 아우돌프가 말한다 “영국식 정원의 세계에서 온 저와 야생 정원의 세계에서 온 그가 만나 함께 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정원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우리는 즉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릿선은 2009년까지 HIV 보균자였고 1990년대 중반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파트너를 잃었다. 그는 아우돌프에게 정원에서 죽음의 기운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는 꽃이 지고 난 후의 식물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어요. 그는 정원에서 저에게 모든 것을 놓아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놓아주기”는 아우돌프의 정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10월의 어느 화창한 날 잉글랜드 브루턴의 아우돌프 필드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절굿대와 에키네시아의 검게 그을린 머리들은 깃털 돋은 풀들 속에서 점들을 찍고 있었고 과꽃이 산들바람을 맞아 바스락거렸다. 죽어가고 있는 식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꽃이 지고 나면 모든 것을 잘라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깊이, 흥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1992년 헤릿선과 아우돌프는 1,200종의 다년초 개요서인 「드림 플랜트(Droomplanten)」를 출간했다. “다년초는 좋은 정원 식물이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야생의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지요.”라고 아우돌프가 말한다. “우리는 골격과 씨앗머리가 훌륭한 식물들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책에서 다룬 다수의 다년초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어떤 사람들은 아우돌프를 헤릿선의 제자라고 보았지만 아우돌프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바를 강하게 밀고 가는 편이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의견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2000년 아우돌프는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 아르네 메이나드와 함께 런던의 RHS 첼시 플라워쇼에서 데뷔했다. ‘밀레니엄 워터’의 광택 속에서 선보인 그들의 ‘에볼루션 정원’은 쓸쓸한 분위기의 나뭇잎 색상들과 구름이 덮인 듯한 박스 형태의 울타리나무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열렸던 첼시 플라워쇼에서 선보인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돌프 정원에 서 있으면 그의 화려한 성과와 업계의 찬사는 저 멀리 사라진다. 내가 2010년 처음으로 하이라인 파크에 갔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하이라인이 무엇인지, 아우돌프의 디자인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때는 9월의 늦은 오후였는데, 허드슨강과 긴 풀숲 사이로 노란 햇볕이 갈라져 내리쬐고 있었다. 내가 2017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곳에 나무숲과 작은 목초지가 더해져 있었다. 이것이 뉴욕시의 보도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양한 색상과 구조, 이 모든 작은 생명들의 삶과 죽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원은 일종의 말 없는 대화입니다.”라고 아우돌프가 말한다. ‘저는 우리가 [디자이너로서] 하는 일은 인생,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작은 것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한데 모아 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중에 그러한 작은 것들로는 “계절의 변화, 시간 속의 특정한 순간, 맥락, 결합, 그리고 이것이 보는 이에게 미치는 영향”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우돌프는 식물의 사용, 정원의 디자인 등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식물을 음악이나 음식에 비유한다. 그의 디자인의 뉘앙스를 “그냥 ‘이것은 사우어크라우트’ 또는 ‘이것은 채소스프’라는 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의 맛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식물이 페인트나 피아노처럼 그의 창의성을 촉진하는 매개일 때도 있다. 훔멜로에서 양묘장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것을 하면서 제 자신과 저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몇 달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창조에 대한 욕구가 그를 움직이게 합니다.”라고 다큐멘터리 「다섯 개의 계절: 피에트 아우돌프의 정원(Five Seasons: The Gardens of Piet Oudolf)」을 위해 아우돌프와 많은 시간을 보낸 영화감독 토머스 파이퍼가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되었어’라고 소감을 말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그것이 피에트가 그의 정원을 통해 하는 일이지요. 그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우돌프는 항상 정원 디자인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가 현재 재작업을 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위슬리 정원과 같이 정원 디자인의 수명은 20년이다. 그 후 식물은 자연스럽게 변해가면서 그가 처음 디자인한 정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잃는 것과 새롭게 얻는 것이 있으며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실제로 구현될 때보다 종이에서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한다. 아마도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창의적 유산은 그의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디자인일 것이다. 내년에 <파이돈> 출판사는 그의 모든 디자인을 책으로 담아 출간할 예정이다. “저는 디자인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을 공개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저는 정원을 만들어왔지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정원은 없었어요.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만듭니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맥락을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는 그것을 만드는 시간의 복잡성이 따릅니다.”
내가 그가 남기는 유산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대해 묻자 그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항상 우리가 더 나아진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우리의 아이디어는 더욱 견고해지고 디자인도 더욱 좋아지지요.” 그가 20년 전에 디자인한 정원의 일부는 현재 그의 취향에 맞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아우돌프는 작년 겨울에 3년 이상 걸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지 않기로 결심했다. 수십 년간 그와 함께 일해온 안야도 “일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그가 “힘”이라고 부르는 창의적인 욕구, 새롭고 다양한 식물의 조합을 만들 필요성, 또 다른 감정을 포착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더 멋지게 또는 다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라고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