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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룸

'설명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축소된 연구’ 소름 끼치는 범죄 현장을 미니어처 세트에서 재현하다.
글 by Stephanie d’Arc Taylor.

살인에 대한 매혹은 영속적이다. 실제 범죄는 늘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의 카테고리 중 하나이며, 경찰 드라마는 그 어느 때보다 큰돈을 벌어들인다. CSI 시리즈 하나가 대략 20억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그러나 앙증맞은 형태로 이런 무시무시한 살인을 묘사한다고 하면 어떨까? 사랑스러운 인형 집 모형에 범죄 현장을 연출함으로써 이 흔치 않은 일을 해낸 것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라고 하는, 1940년대에 활동한 미국 여성이다.

1878년, 시카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글레스너 리는 이상한 소녀였다. 네 살 때 자기 어머니에게 “내 아기인형과 하느님 외에는 친구가 없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인형과 바느질 같은 정형화된 여성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의학 서적과 셜록 홈즈에도 푹 빠져 지냈다. 아버지는 그녀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금지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녀는 이렇다 할 일을 하지 않고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는 상당한 재산이 남겨졌다. 시간과 돈을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게 되자 그녀가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살인이었다. 수사관이었던 친구 하나가 그녀에게 범죄 현장에 대해 들려주자 그녀는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형사들이 갈팡질팡하며 시체를 마구 옮긴다든지, 혈흔을 만지고, 총알 구멍이 난 옷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현장을 훼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글레스너 리는 자기가 범죄 현장 감식관들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 사람들을 일일이 범죄 현장으로 데리고 다니며 교육할 수 없으니 범죄 현장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 ‘설명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축소된 연구’ 시리즈다. 섬뜩한 살인 장면을 정밀하게 축소한 스무 가지의 세트가 완성되었다. “감식관은 자기 키가 6인치 정도도 못 된다고 상상하면서 조사해야 최고의 감식을 할 수 있어요.”라고 그녀는 충고했다. 그녀는 범죄 현장을 선택할 때 실제 사건 중에서도 형사들의 관찰, 논리, 추리 능력을 테스트하기 좋도록 가장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가능한 한 추렸다. 개중에는 범죄를 아주 선명하게 묘사한 것들이 있고(10대 소녀인 도로시 데니슨 사건의 경우 흰 드레스가 찢겨 있고, 내장에 칼이 박혀 있으며, 온몸에 물린 자국이 있는 채로 부패해가는 소녀의 몸을 소름 끼치도록 자세히 묘사했다), 좀 더 수수께끼의 느낌을 부각한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계단 아래에 있는 루비 데이비스의 시신은 그녀의 남편이 밀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녀 자신이 성차별을 겪었으면서도, 글레스너 리는 유독 여성의 끔찍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동조하는 측면이 있었다.)

형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건을 늘 가장 작은 디테일이 단서가 된다. 그런 점에서 글레스너 리가 디테일에 쏟은 관심은 거의 완벽한 경지를 보여주면서, 마치 느와르 영화의 음울하고 미세한 세부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선사한다. 지저분한 모텔 방의 전등 스위치에는 언제부터 쌓인 건지 모를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있고, 반쯤 껍질을 벗긴 감자가 더러운 싱크대에서 시들어 있다. 재떨이는 넘치고, 술병에서 흘러나온 갈색 술이 썩어가는 카펫에 스며들고 있다. 작은 가족사진이 레이스로 장식된 화장대에 놓여 있고, 신문에는 관련 보도 1면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조그만 글자들이 있다. 영화 제작자인 존 워터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미니어처 범죄 현장들을 보고는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생각하면서 숨이 막힐 뻔했어요.”라고 말했다.

글레스너 리가 이 장면들에 쏟아부은 통제력과 정밀성은 사실상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살인적 분노를 손에 잡힐 듯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이 어쩌면 범죄에 직면해 있던 실제 피해자들의 삶에서 가장 통제 불능의 상태였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어서 우리는 아주 작은 입체 모형을 나란히 늘어놓은 이것들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상황과도 딱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살인과 죽음에 매료된 여성으로서, 글레스너 리는 모르긴 해도 당시의 여성 혐오적인 풍습에 의해 자주 자신의 재능과 열정이 좌절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이후 그녀의 미니어처들은 하버드 경찰학회에서 수습 형사들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1943년에는 뉴햄프셔주 경찰이 그녀에게 명예 경찰 대위 직위를 수여했다. 언론에서도 그녀의 남다름에 주목하여 여러 잡지에서 ‘예순여섯 살의 할머니 탐정’ 같은 문구로 표지를 장식했다.

글레스너 리는 훈련 도구로서 디오라마(diorama, 축소모형. 주로 영화 촬영에 쓴다옮긴이)의 유용성을 보존하기 위해 해답을 비밀에 부쳤다. 결국 그녀의 디오라마가 재현한 미스터리는 의학적 진단이나 용의자 심문 같은 추가 정보가 없이는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 지금에 와서 추가 정보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1 살인은, 우리 인생과 마찬가지로 어지럽고 복잡한 법이다. 앙증맞은 미니어처로 재현됐다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Photograph: Frances Glessner Lee, Kitchen (detail), about 1944-46. Collection of the Harvard Medical School, Harvard University, Cambridge, MA. Courtesy of the Office of the Chief Medical Examiner, Baltimore, MD.

(1) 2018년,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이 디오라마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실제 범죄에 대한 관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라서 관람객들은 아마추어 형사 놀이를 하고 싶어 안달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종종 실망해서 돌아가곤 했다. “제 생각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시 큐레이터였던 노라 애트킨슨이 NPR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실제 범죄 현장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를 깨닫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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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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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Frances Glessner Lee, Kitchen (detail), about 1944-46. Collection of the Harvard Medical School, Harvard University, Cambridge, MA. Courtesy of the Office of the Chief Medical Examiner, Baltimore, MD.

(1) 2018년,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이 디오라마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실제 범죄에 대한 관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라서 관람객들은 아마추어 형사 놀이를 하고 싶어 안달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종종 실망해서 돌아가곤 했다. “제 생각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시 큐레이터였던 노라 애트킨슨이 NPR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실제 범죄 현장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를 깨닫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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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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