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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디자이너
피에트 아우돌프

전통적인 정원에 삶과 죽음을 불어넣은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글 by Alice Vincent. 사진 by Marina Denisova.

  • Arts & Culture

전통적인 정원에 삶과 죽음을 불어넣은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글 by Alice Vincent. 사진 by Marina Denisova.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공원과 정원의 느낌을 꾸준히 바꿔온 한 남자가 있었다. 피에트 아우돌프는 우리의 녹지 공간에 생기를 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전통적인 서양 정원에 남아 있던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제거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정원 디자이너다. 당신이 아우돌프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의 정원에 이미 감탄한 적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당신은 맨해튼의 고가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의 연간 방문객 800만 명 중 한 명일 수 있다. 아니면 런던의 2011년 서펜타인 파빌리온 내부의 다채로운 목초지 또는 독일 바일 암 라인에서 작년에 대중에게 개방된 비트라 캠퍼스의 아우돌프 정원을 방문한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는 솜털과 같은 흔들리는 풀과 나뭇잎의 촉각적 단면을 그의 언어로, 화려한 일년초 중심의 정원을 자연스러운 무언가로 변모시킨다. 식물을 통해 그는 낯설고 아름다운 꿈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아우돌프는 일흔여덟 살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점차 “속도를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하이라인 파크의 조경건축가들과 2004년에 처음 만났고 여전히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작은 변화를 계속해서 주는 과정입니다.”라고 그가 설명한다. 그는 커리어의 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영속성보다는 항상 경험을 더욱 중시하는 예술가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정원은 없어요.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만듭니다.”

 

“훔멜로(Hummelo)”를 온라인에서 검색하면 아우돌프가 품종을 개발한 다양한 석잠풀이 검색 결과로 나오기도 하지만, 훔멜로는 암스테르담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과 아우돌프가 40년 동안 살아온 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집 내부의 스튜디오에서 줌을 통해 만난 그는 흰색 티셔츠 위에 빨간 플란넬 셔츠를 입고 있으며 얼굴 옆쪽으로 흰머리 몇 가닥을 늘어뜨리고 있다. 50년 동안 야외에서 일을 해온 그의 그을린 얼굴에는 잔주름이 있지만 아우돌프가 거의 여든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다. 그는 사무적이고 진지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그의 스튜디오는 널찍하고 흰 사각형의 공간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고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아래쪽에는 그가 큰 디자인을 손으로 그릴 때 사용하는 종이들이 깔끔하게 말려 있는 선반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작업을 하며 현재 8개에서 10개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아우돌프는 프로젝트마다 조경건축가, 건설업체, 식재 전문가 등 그가 “네트워크”로 부르는 사람들과 협업을 하지만 정원이 시작되는 곳은 그의 긴 테이블, 기름종이와 형광펜이다. 그가 이곳에서 몇 주 동안 고심하여 만들어낸 상징과 글자로 이루어진 복잡한 패턴들은 움직이고 생장하는 식물들을 탄생시킨다.

아우돌프는 1982년 그의 아내 안야(Anja)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하를렘 교외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이 집은 버려진 농가였다. 당시 그는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일을 그만두고 여러 직업을 시도했지만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한 후 정원 일을 하게 된 프리랜서 정원 디자이너였다. “저는 식물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멋진 정원들을 만들었지만 크기가 너무 작았어요. 저는 특히 식물을 통해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디자인에 집중하는 대신 식물을 가꾸기로 했습니다.”

“식물 가꾸기”는 부부가 1.5에이커에 걸쳐 조성한 양묘장을 생각하면 너무 소박한 표현이다. 훔멜로는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힘든 다양한 품종의 식물을 세심하게 구비해놓은 진보적인 원예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나비바늘꽃(가우라 린드헤이메리)과 퍼플레인(살비아 베르티킬라타)과 같이 그가 개발한 품종들은 감각 있는 정원이라면 주로 사용하는 화단용 초화류가 되었다.

그의 미학 뒤에는 그가 격렬하게 고민한 철학이 깔려 있었다. 아우돌프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원예 기법인 ‘더치 웨이브(Dutch Wave)’를 개척한 생태학자 출신의 정원 디자이너 헹크 헤릿선(Henk Gerritsen)과 친구가 되었다. “그의 정원은 야생적이었어요.”라고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여 세계 도처에서 이어지는 영국식 정원의 엄격한 전통을 교육받은 아우돌프가 말한다 “영국식 정원의 세계에서 온 저와 야생 정원의 세계에서 온 그가 만나 함께 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어떻게 정원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우리는 즉흥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릿선은 2009년까지 HIV 보균자였고 1990년대 중반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파트너를 잃었다. 그는 아우돌프에게 정원에서 죽음의 기운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는 꽃이 지고 난 후의 식물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어요. 그는 정원에서 저에게 모든 것을 놓아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놓아주기”는 아우돌프의 정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10월의 어느 화창한 날 잉글랜드 브루턴의 아우돌프 필드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절굿대와 에키네시아의 검게 그을린 머리들은 깃털 돋은 풀들 속에서 점들을 찍고 있었고 과꽃이 산들바람을 맞아 바스락거렸다. 죽어가고 있는 식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꽃이 지고 나면 모든 것을 잘라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깊이, 흥미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1992년 헤릿선과 아우돌프는 1,200종의 다년초 개요서인 「드림 플랜트(Droomplanten)」를 출간했다. “다년초는 좋은 정원 식물이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야생의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지요.”라고 아우돌프가 말한다. “우리는 골격과 씨앗머리가 훌륭한 식물들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책에서 다룬 다수의 다년초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어떤 사람들은 아우돌프를 헤릿선의 제자라고 보았지만 아우돌프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시각을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바를 강하게 밀고 가는 편이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의견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2000년 아우돌프는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 아르네 메이나드와 함께 런던의 RHS 첼시 플라워쇼에서 데뷔했다. ‘밀레니엄 워터’의 광택 속에서 선보인 그들의 ‘에볼루션 정원’은 쓸쓸한 분위기의 나뭇잎 색상들과 구름이 덮인 듯한 박스 형태의 울타리나무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열렸던 첼시 플라워쇼에서 선보인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돌프 정원에 서 있으면 그의 화려한 성과와 업계의 찬사는 저 멀리 사라진다. 내가 2010년 처음으로 하이라인 파크에 갔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에는 하이라인이 무엇인지, 아우돌프의 디자인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때는 9월의 늦은 오후였는데, 허드슨강과 긴 풀숲 사이로 노란 햇볕이 갈라져 내리쬐고 있었다. 내가 2017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곳에 나무숲과 작은 목초지가 더해져 있었다. 이것이 뉴욕시의 보도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양한 색상과 구조, 이 모든 작은 생명들의 삶과 죽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원은 일종의 말 없는 대화입니다.”라고 아우돌프가 말한다. ‘저는 우리가 [디자이너로서] 하는 일은 인생,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작은 것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한데 모아 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중에 그러한 작은 것들로는 “계절의 변화, 시간 속의 특정한 순간, 맥락, 결합, 그리고 이것이 보는 이에게 미치는 영향”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우돌프는 식물의 사용, 정원의 디자인 등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식물을 음악이나 음식에 비유한다. 그의 디자인의 뉘앙스를 “그냥 ‘이것은 사우어크라우트’ 또는 ‘이것은 채소스프’라는 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의 맛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식물이 페인트나 피아노처럼 그의 창의성을 촉진하는 매개일 때도 있다. 훔멜로에서 양묘장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것을 하면서 제 자신과 저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몇 달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러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창조에 대한 욕구가 그를 움직이게 합니다.”라고 다큐멘터리 「다섯 개의 계절: 피에트 아우돌프의 정원(Five Seasons: The Gardens of Piet Oudolf)」을 위해 아우돌프와 많은 시간을 보낸 영화감독 토머스 파이퍼가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되었어’라고 소감을 말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그것이 피에트가 그의 정원을 통해 하는 일이지요. 그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우돌프는 항상 정원 디자인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가 현재 재작업을 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위슬리 정원과 같이 정원 디자인의 수명은 20년이다. 그 후 식물은 자연스럽게 변해가면서 그가 처음 디자인한 정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잃는 것과 새롭게 얻는 것이 있으며 때때로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실제로 구현될 때보다 종이에서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한다. 아마도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창의적 유산은 그의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디자인일 것이다. 내년에 <파이돈> 출판사는 그의 모든 디자인을 책으로 담아 출간할 예정이다. “저는 디자인 방법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을 공개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저는 정원을 만들어왔지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정원은 없었어요.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을 만듭니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우리가 살고 있는 맥락을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는 그것을 만드는 시간의 복잡성이 따릅니다.”

내가 그가 남기는 유산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대해 묻자 그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항상 우리가 더 나아진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우리의 아이디어는 더욱 견고해지고 디자인도 더욱 좋아지지요.” 그가 20년 전에 디자인한 정원의 일부는 현재 그의 취향에 맞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한다. 아우돌프는 작년 겨울에 3년 이상 걸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지 않기로 결심했다. 수십 년간 그와 함께 일해온 안야도 “일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그가 “힘”이라고 부르는 창의적인 욕구, 새롭고 다양한 식물의 조합을 만들 필요성, 또 다른 감정을 포착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더 멋지게 또는 다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것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라고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가 잠시 말을 멈춘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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