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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상상 속의 나라

마이크로네이션의 짧은 역사
글 by Okechukwu Nzelu. 사진 by Josh Hight for Begg & Co.

١٩٦٠년대에 로이 베이츠가 북해 한가운데의 버려진 해군 기지에 라디오 방송국을 열었을 때 나라를 건설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한때 영국 육군 소령이었던 베이츠는 방송법을 피해가려는 의도밖에 없었다. 영국 정부가 그의 무허가 방송국을 곱게 봐주지 않자 베이츠는 어쩔 수 없이 피신해야 했다.¹ 그리하여 ١٩٦٧년에 그는 영국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버려진 기지로 이동해 시랜드를 세웠다. 아내, 자녀들과 함께 베이츠는 그 기지를 공국으로 선포했다. 그곳은 주권국가를 표방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독립체인 마이크로네이션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를 자처하는 시랜드의 면적은 총 ٥٥٠제곱미터다. 세금 대신 개인 맞춤 문장(٢١٩.٩٩달러)이나 귀족 작위(٦٥٦.٥٣달러) 등을 판매한다.

베이츠 같은 사례가 딱 하나는 아니다. 호주 정부와 농업 분쟁을 겪던 레너드 캐슬리는 ١٩٧٠년에 헛리버 공국을 세웠다. 그는 자신을 왕자로, ٧٥제곱킬로미터의 땅을 공국으로 선포했다. ٢٠١٨년에 건지섬의 주민 스티브 오기어는 자기 소유의 토지를 독립 국가로 선포하여 건축 허가 거부에 대응했다. 하룻밤 사이에 왕이 된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 행위가 낯설어 보일지 몰라도 그 이면의 동기는 그렇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속으로 관공서의 성가신 요식 행위, 울퉁불퉁한 노면, 분탕질하는 정치 지도자만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삶이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원래 인생이 골치 아픈 것이 아니라) 남들 때문에 우리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생각에 솔깃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따라서 마이크로네이션에 매력을 느끼는 심리는 실제로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의 불완전 자치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 자치지구는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했고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일부 장기 거주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났다.² 사람들은 건국자의 업적을 찬양하거나 아쉬운 대로 실현된 허접한 꿈을 두고 낄낄대기 위해 찾아온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할 기회에도 매력을 느낀다. 누구나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실제로 떨어져나가 정치적 위험을 초래하는 독립국과는 달리, 마이크로네이션은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무해한 별종 취급을 받는다. 헛리버 공국이 자체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발행하거나 말거나 호주 정부는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나라도 국민의 의무를 피할 수는 없었다. ٢٠١٩년에 캐슬리 왕자가 사망하자 ٢١٥만 달러의 세금을 떠안게 된 그의 아들은 빚을 갚기 위해 땅을 팔아야 했다. ٥٠년 만에 공국은 원래 존재하던 자리인 ‘아이디어’로 돌아갔다.

그러나 꿋꿋하게 살아남은 마이크로네이션도 있다. 영국 정부는 방치된 옛 해군 요새들을 모두 파괴했지만 시랜드(한때 러프 요새라 불렸다)만은 남겨두었다. (여느 마이크로네이션처럼) 한 사람이 지배하는 작은 지기는 조용히 존재를 허락받았다. 이 나라의 국시國是는? ‘E Mare, Libertas(바다에서 자유를)’

notes

    1. 베이츠는 정부와 싸우면서도 다른 법적 이단아들과 연대하지 않았다. 그는 방치된 다른 기지를 빼앗기 위해 무허가 라디오 방송국 운영자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그 과정에서 귀에 총을 맞거나 손가락을 잃은 라디오 운영자도 있다.

    2. 1971년에 불법 거주자들이 크리스티아니아를 점거하고 자치지구로 선포한 주된 이유 한 가지는 코펜하겐의 주택이 너무 비싸서였다. 50년 후, 덴마크의 세법을 적용해 크리스티아니아를 ‘정상화’하려는 압박이 생기면서 주택 임대비는 오랜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notes

    1. 베이츠는 정부와 싸우면서도 다른 법적 이단아들과 연대하지 않았다. 그는 방치된 다른 기지를 빼앗기 위해 무허가 라디오 방송국 운영자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그 과정에서 귀에 총을 맞거나 손가락을 잃은 라디오 운영자도 있다.

    2. 1971년에 불법 거주자들이 크리스티아니아를 점거하고 자치지구로 선포한 주된 이유 한 가지는 코펜하겐의 주택이 너무 비싸서였다. 50년 후, 덴마크의 세법을 적용해 크리스티아니아를 ‘정상화’하려는 압박이 생기면서 주택 임대비는 오랜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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