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껴안기”라는 용어는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 환경을 아끼는 것이 소수의 운동가들의 영역으로 보였던 시기를 연상시킨다. 대중문화에서 나무 껴안기는 보통 의도는 좋지만 약간은 괴짜스러운 히피들의 관습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나무 껴안기에는 대중의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폭력적인 역사가 숨어 있다. 원래 나무 껴안기를 했던 사람들은 오늘날의 인도 라자스탄주에 위치한 케잘리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1730년, 마하라자 압하이 싱은 새로운 궁전을 짓기 위해 마을의 나무를 베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무들을 신성시하던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의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껴안았다. 그들은 대학살 속에 희생되었고 363명이 살해된 후에야 압하이 싱은 그의 뜻을 접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제 정상회의와 유명 인사들을 전면에 세운 다큐멘터리가 항의의 수단으로서 나무 껴안기를 대체한 것 같지만 이 관행은 웰니스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매년 핀란드에서는 나무 껴안기 세계 선수권대회가 열릴 정도다(평가 기준은 스타일과 기술이다). 나무를 껴안는 일이 건강과 웰빙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팔로 나무의 몸통을 감싸면 몸은 사랑 및 친밀감과 관련된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분비하여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줄이고 혈압을 낮출 수 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잠시 손을 뻗어 나무를 안는다고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필사의 횡단 NGO 시워치의 올리비아 슈필리가 우리가 잘 모르는 지중해의 현실을 자세히 설명한다 Arts & Culture 파리는 언제나 우리 곁에 진부한 비교의 대상이 된 도시. Arts & Culture 피어 리뷰: 장 뤼르사 섬유 전문가 재니스 제프리스가 20세기 태피스트리를 부활시킨 프랑스의 예술가 장 뤼르사를 소개한다. Arts & Culture 경지에 이르러 포스트 팬데믹의 피로감을 벗어나는 길. Arts & Culture 튀니지의 예술가 도라 달릴라 체피는 튀니지의 수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보금자리도 만들어가는 중이다. Arts & Culture 권력을 내려놓음 권력 과시의 무의미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