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프랑스 작가 미셸 드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우리가 어떻게 죽는지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모든 행복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죽고 나서야 우리가 행복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왕이라도 영지를 빼앗고 상속자들을 모두 죽인 그의 적수로부터 처형을 당할 수 있다. 반면 ‘형편없고 악명 높은’ 한 남자는 그 주변의 사람들과 ‘완벽히 화해한 채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생이 끝난 후에야 인생을 ‘진정’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자신의 인생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죽을 운명에 있다. 우리가 어느 시점에 우리 자신에 대해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은 일시적일 뿐이며 평판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문학 작품들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주인공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생 전체를 굳이 묘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브루스 채트윈이 농장을 배경으로 좌절된 희망을 그린 「검은 언덕 위에서」나 존 르카레의 반자전적 소설 「완벽한 스파이」에서 보듯이 주인공의 탄생 순간부터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설들도 있다. 인생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다.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에서 화자인 스트리트럼 샌디는 두 권의 분량을 소비하고 나서야 그의 탄생으로 들어간다. 앨러스데어 그레이는 「라나크」에서 근심 많은 청년 던컨 소오의 사후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중에야 그의 죽음으로 돌아간다. 이 문제는 이제 제대로 조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생 전체에 대해 무엇이 중요한지 올바른 시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채트윈은 이러한 점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검은 언덕 위에서」의 말미에는 쌍둥이 농부 중 한 명인 나이 든 루이스가 평생 모험을 꿈꾸고 좌절을 겪다가 마침내 비행기를 타는 순간이 있다. 채트윈은 “갑자기 그는 찌들고 보잘것없는 삶에서 느꼈던 좌절감이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참으로 멋진 10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루이스는 행복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슬프고 대수롭지 않은 삶은 구원을 받았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에세이: 잇츠 올 그리크 Arts & Culture 나를 위한 또 다른 사랑의 방법 ‘컴퍼전’의 기술이 주는 교훈 Arts & Culture 문제적 사물 신박한 물건들의 기이한 역사 Arts & Culture 명백한 사실 문학적 특권 면책고지 Arts & Culture 훼절 예술과 돈의 도덕적 미로에서. Arts & Culture 바로잡기 ‘겁 없는’ 철학의 무서운 결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