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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야 알루왈리아

다른 디자이너들의 오프컷으로 멋진 남성복을 만들어낸 런던 출신의 프리야 알루왈리아를 만나다.


Words by Fedora Abu. Photography by Annie Lai.

2020년은 그 누구보다 프리야 알루왈리아에 큰 격변의 시기였다. 4월, 런던에 기반을 둔 이 남성복 디자이너는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해 공동 수상자를 선정하겠다는 LVMH 프라이즈의 발표 이후 다른 7명들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상을 기반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와 그레이스 웨일즈 보너처럼 이번의 최종 후보자들도 언론 홍보와 화보 촬영을 해야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정지 상태였던 탓에 페이스타임과 줌을 통한 인터뷰만 이어졌다. 새 화보집 『잘레비(Jalebi)』와 더불어 전시회가 계획되어 있던 알루왈리아의 작품은 VR 갤러리에서 온라인으로 전시되고 있다.

현재 패션 산업은 인종차별과 엘리트주의로 큰 비난을 받고 있으며, 패스트패션 공급망에 대해 진행 중인 조사로 심판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 중 어떤 것도 27세 신예 디자이너의 성공 가도에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 같지 않다. 알루왈리아의 브랜드는 참신하고 포용적인 느낌을 주는 럭셔리의 추구를 상징한다. 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남성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디자이너 알루왈리아는 데드스톡 원단(다른 패션하우스에서 폐기한 원단)의 지속 가능한 사용법을 모색하며 자신의 인도-나이지리아 혈통을 반영한 놀라운 이미지로 스스로 영역을 개척해냈다. 그녀는 수상에 따른 부상으로, 패션계의 유력인사들로부터 멘토링을 예정이다. 하지만 자의식이 강한 이 신진 디자이너는 옛 동료들과의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당신의 혈통과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것 중 기억에 남는 패션 이미지는 무엇인가?

집에서 MTV 베이스로 많은 뮤직비디오를 즐겨보았고, 그래픽이나 패션, 영화 보기를 좋아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다. 인도 쪽 문화에서는 결혼식이 굉장히 화려한 행사이므로 사우스올에 가서 적절한 의상을 마련해와야 할 정도이고, 나이지리아 쪽 역시 가족이 원단을 결정하면 그 원단을 주문하여 그것으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차려입는 데 익숙했다.

두 나라를 여러 번 방문했는데, 이러한 경험이 작품에 어떠한 영감을 주었나?

모든 부분에 영감을 받았다! 인도에서는 지역의 장인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직물과 기술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는 활기와 에너지가 가득하며, 열기가 멈추지 않는다.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도 마찬가지다. 활기차게 생동하는 도시다. 두 나라에 가면 시장에서 파는 것,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것, 심지어 모래색의 환경조차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 남성복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여성복에는 여러 시도가 있었던 반면, 남성복은 50여 년 가까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경계를 넓힐 범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성복을 사는 여성들도 많이 있나?

그렇다. 많은 여성이 남성복을 입는다. 나 역시도 그렇고. SS20 시즌의 풀룩을 입은 IAMDDB의 사진에서 태그가 되었는데, 정말 굉장했다. 여성복을 만들라는 요청이 빗발쳐서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당신은 데드스톡 원단을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특정 원단을 찾아나서는 편인가, 아니면 찾아낸 원단을 출발점으로 삼는 편인가?

둘 다 해당한다. 어떤 시즌에는 코듀로이나 낙타털, 데님을 사용하고 싶어서 이를 중점적으로 찾고, 어떤 때는 물건을 둘러보다 “좋아, 바로 이거야.” 느낌을 따르기도 한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계획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 좋다.

데드스톡 원단만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그로 인해 한계가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것을 만들 원단을 더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일례로, 작년 여름에 SS20 컬렉션을 준비할 때, 라이트그레이 트랙수트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데 생산에 들어가야 해서 9월에 원단을 찾으니 온통 검정과 네이비뿐이었다. 악몽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한계가 있긴 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원단으로 무엇이든 만들 여지가 있다. 조금만 더 창의력을 발휘하면 참신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당신은 보통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로 분류된다. 정확한 분류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나는 스트리트웨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나는 스트리트웨어를 “도시”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흑인이면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라고 분류하는 것 같다. 나는 트랙수트는 두어 벌 정도 만들었고 테일러링과 비딩, 니트 작업도 많이 했는데 말이다. 그런 식으로 분류하는 건 그저 게으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 패션계는 인종차별, 엘리트주의, 착취적인 공급망이라는 비난에 직면해있다. 이 업계에 대한 의견과 그중 당신 레이블의 위치는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지 들려달라.

(럭셔리 패션이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생각은) 나 스스로도 고민했던 문제다. 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멋지게 만든 좋은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했던 부분은 옷을 엄청나게 싸게 파는 브랜드들이다. 내게는 오히려 그 브랜드들이 “배타적”으로 보인다. 고객이 아니라, 천에 구슬을 박고, 천을 염색하고, 천을 꿰매어 만든 옷을 선적하는 사람들이 배제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에게 패스트패션을 사지 말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고객이 아닌 회사의 책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내 사업은 그렇게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자신의 첫 스튜디오로 이사했다. 마침내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되어 행복한가?

지난 2년 동안, 스튜디오로 개조한 우리 집 손님용 방에서 작업했다. 나를 지지해주는 멋진 가족들로부터 응원을 받고, 덕분에 집세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이 많아지면서 균형 찾기가 불가능해졌다. 인턴과 스튜디오 매니저가 퇴근하고도 10시까지 일을 해야 했으니까. 최근 조명이 환하고 널찍한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했는데, 사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 느낌이다. 이제 일할 공간이 생겨서, 집에 돌아가면 일에 신경 끌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알루왈리아는 사우스 런던의 부모님 집의 손님용 방에서 브랜드를 시작했다. 올해 초, 첫 스튜디오 (오른쪽 사진)으로 옮겨갔다. “일이 많아지고 있었거든요.”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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