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이제 학교에서도 당신의 작품을 가르친다. 소감이 어떤가?
NS: 아직도 어리벙벙하다. 아이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문자 메시지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는다.
ON: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해 잘 모르는 교사들이 당신의 책을 잘못 해석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나?
NS: 물론 교과 내용이 광범위하게 바뀔 때마다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학습 곡선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런 상황에 불만은 갖지 않겠다. 새로운 것을 가르치려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다행히 나는 수많은 교사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내가 틀렸다면 기꺼이 인정할 마음도 있다. 청소년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그런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ON: 「마틴 선생님께」는 마틴 루터 킹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오늘날의 세상에 적용하려는 아이가 주인공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다가가려면 역사 속 영웅들의 메시지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NS: 물론이다. 나 역시 역사적 사건의 전모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젊은이로서 하는 생각이다. 2001년에 들은 미국 역사 수업을 기억한다. 우리 교과서에는 노예무역에 대해 한 단락, 시민 평등권 운동에 대해 반 페이지가 전부였다. 200년 이상 지속된 노예무역이 딱 한 단락으로 끝나다니! 내가 직접 조사에 착수하기 전에는 킹 박사 같은 역사적 인물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 아이들, 특히 소외된 아이들에게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사람들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사람들이 킹 목사의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그가 반대할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올해 마틴 루터 킹 데이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국경 장벽의 필요성에 대한 연설을 하면서 킹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사람들이 킹 목사와 그의 심오한 철학, 가르침, 원칙을 제대로 이해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그래서 내 작품에서 그런 역사적 인물들을 계속 언급할 생각이다. 청소년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정확하게 배워야 한다. 킹 목사가 평화주의자였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그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비폭력주의자였다. 둘은 절대 같지 않다.
ON: 청소년들이 당신의 글에서 어떤 메시지를 얻기를 바라나?
NS: 나는 「저스티스에게」의 메시지가 ‘자신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큰 인물이 될 자격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저스티스에게」는 ‘작가의 말’에 큰 비중이 실려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믿게 했다면 그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지금껏 당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젊은이들이 「저스티스에게」에서 얻었으면 하는 또 다른 교훈은 연민과 공감이 선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생존에만 골몰한 나머지 공감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공감을 선택하고, 연민하거나 공감하는 데 누구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주위 사람들을 믿고 그들의 존엄성을 존중하겠다는 결정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