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샤워

이제 막 깼거나 혹은 잠자리에 들 준비 중이거나, 달리고 나서 땀에 흥건히 젖었을 때나 한겨울 추위에 꽁꽁 언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샤워는 우리 몸에 활기를 되찾아준다. 샤워 부스 안은 어느새 생각과 고민으로 가득 찬다. 인지과학자 스콧 배리 카우프만(Scott Barry Kaufman)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약 72%의 사람들이 샤워를 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레딧(Reddit, 소셜 뉴스 웹사이트로 자신이 쓴 글을 등록하면 그 글을 다른 사용자들이 ‘up’ 혹은 ‘down’을 선택하고, 그 순위에 따라 주제별 섹션이나 메인 페이지에 올라가게 된다.)만 놓고 보자면, 해괴한 아이디어도 많지만 좋은 아이디어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온라인 커뮤니티 ‘showerthoughts’는 1,63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회원들은 각자 샤워 중에 경험한 깨달음의 순간을 공유한다. 이렇게 등록된 포스팅은 “당신은 우주 태초부터 존재했지만, 존재의 순간을 알아차린 것은 자각을 하면서부터다.”라는 존재론적 담론부터 “젠가 블록을 만들고자 잘린 나무의 죽음은 반복된다.”와 같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한번은 래퍼 스눕독이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샤워 부스에서 한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한 줄 아니? ‘Mercedes’에 세 개의 같은 알파벳 ‘E’가 들어가는데, 어째서 각각 다르게 발음될까 생각했어.”

왜 하필 샤워하는 동안에 가장 획기적이고 의미심장하며 때로는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걸까? 성스러운 물의 흐름이 명상을 도와서일까? 서서 하는 샤워 자세가 정신을 자유롭게 해줘서일 수도 있겠다.(욕조에 반쯤 누워 몸을 담글 때는 몸과 정신이 그만큼 나른해질 수 있다) 아니면 두 가지 이유 다일 수도 있다.

향기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각성을 유도한다고 한다. 로즈마리 향 샴푸로 머리를 감을 때 퍼지는 꽃 내음도 한몫하는지 모르겠다. 카우프만은 ‘최상의 업무 수행’에 관한 회의에서 다른 이유를 내놓았다. “홀로 즐기는 느긋하고 평화로운 샤워는 긴장을 풀어주어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인생과 주위를 관조한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도파민이 생성되는데, 미지근한 샤워는 뇌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샤워로 에너지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 짧은 샤워일지라도 신체 오토파일럿 모드를 작동시켜서 씻는 행위를 잠시 잊고 감각에 집중해보자. 샤워하는 동안은 하루 중에 유일하게 핸드폰을 손에서 놓는 시간이다. 샤워 부스에 들어가 있으면 핸드폰은 물론, TV, 라디오, 잡담에서도 해방된다. 짧든 길든 샤워하는 동안은 당신의 정신이 두서없이 이곳저곳을 떠다니게 놔두자.

고민거리가 있나요? 일단 욕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