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크라신스키(1925-2004)는 유럽의 전후(post-war) 전위(avant-garde) 예술가 중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손꼽힌다. 그는 조각품을 단순한 선으로 축소하고자 했으며, 130센티미터 높이에 설치 작품 전체를 가로지르는 파란색 접착테이프를 둘렀다. “나는 이 띠로 모든 걸 에워싸서 어디까지든 간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예술이다, 혹은 예술일까?” 파란색 테이프는 바르샤바에 있던 그의 작업실의 벽면 전체, 그곳에 놓인 사물들 위로 빠짐없이 둘려 있었고 그가 떠난 뒤에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처음 그의 작업실-공산주의 시대의 평범한 아파트 꼭대기층-을 방문했을 때, 나는 놀랍고도 혼란스러웠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테이트모던과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크라신스키의 회고전을 큐레이팅하면서, 방문객들이 그의 복잡하고도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작업을 발견해가며, 그의 작업실에서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기를 바랐다. 전시장 내부는 작은 함정과 시각적 장난으로 가득하다. 복도의 외투걸이는 벽에 박힌 쇠스랑으로 교체되어 있는데 너무 높아서 아무도 손이 닿지 않는다. 바닥에는 봉투가 떨어져 있는데, 아예 붙어 있어서 주울 수 없다. 마룻바닥에서는 마른 가지가 돋아나고 방구석에는 가짜 쥐가 숨어 있다(그래도 쥐덫은 진짜다). 금속 지느러미가 식탁을 가르고, 거실에는 쓸 수도 없는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장 자체가 원래 책장을 찍은 커다란 사진이며, 원래의 책장은 사진으로 복제된 이미지 뒤에 서 있다. 이 작업실 겸 아파트에서는 현실과 왜곡된 거울 이미지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실제와 가상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크라신스키가 거주 공간은 물론 전시 공간을 대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핵심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그의 쇼는 종종 전체적인 환경의 형태, 즉 무대 장치로 꾸며졌다. 거기서는 아름답게 구상된 예술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질 준비가 된 소품처럼 보였다. 예술가의 손에서 능수능란하게 변신한 공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암시가 담겨 있었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미심쩍은 마음을 접어두고 대본 없는 공연의 참여자가 된다는 의미다. 크라신스키의 공간 배치는 이처럼 예술가와 관람객을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순식간에 ‘다른 어딘가’로 데려가는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Photograph: Eustachy Kossakowski © Anka Ptaszkowska and archive of Museum of Modern Art in Warsaw. Courtesy Paulina Krasinska and Foksal Gallery Foundation. Photograph: Todd Hido (1) 에드워드 크라신스키는 1964년, 바르샤바 인근 잘레시에의 들판에서 펼쳐 보인 행위예술 스피어(Spear, 창)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나무 사이에 늘어뜨린 전선에 매달려 있는 창들은 움직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휙휙 흔들리고 있었다. 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일단 준비가 끝나면 그 뒤는 창이 알아서 행한다.” 이런 선형의 조각품들은 실내에 전시될 때는 갤러리 안에 매달린 채 움직임과 정지의 완벽한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운동성에 대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의 감각과 놀이하는 것이다. 이런 환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주 단순한 방법이면 된다. 색과 파편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각품이 지닌 전통적인 기념물의 성격을 부정하고자 하는 크라신스키의 욕망을 증폭시켜 하나의 선으로 압축해버리면 그것들이 아티스트의 미장센에서 완벽한 소품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Photograph: Eustachy Kossakowski © Anka Ptaszkowska and archive of Museum of Modern Art in Warsaw. Courtesy Paulina Krasinska and Foksal Gallery Foundation. Photograph: Todd Hido (1) 에드워드 크라신스키는 1964년, 바르샤바 인근 잘레시에의 들판에서 펼쳐 보인 행위예술 스피어(Spear, 창)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나무 사이에 늘어뜨린 전선에 매달려 있는 창들은 움직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휙휙 흔들리고 있었다. 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일단 준비가 끝나면 그 뒤는 창이 알아서 행한다.” 이런 선형의 조각품들은 실내에 전시될 때는 갤러리 안에 매달린 채 움직임과 정지의 완벽한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운동성에 대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의 감각과 놀이하는 것이다. 이런 환상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주 단순한 방법이면 된다. 색과 파편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각품이 지닌 전통적인 기념물의 성격을 부정하고자 하는 크라신스키의 욕망을 증폭시켜 하나의 선으로 압축해버리면 그것들이 아티스트의 미장센에서 완벽한 소품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Fashion Arts & Culture 바늘 작업 서울, 고대의 타투 예술이 화려하고 생생하게 피어나다. Arts & Culture 닉 스톤 청소년 소설가가 10대 독자들의 희망을 빼앗지 않고 인종차별, 불평등, 감금에 대처하는 방법은? 오케추큐 은젤루가 닉 스톤을 인터뷰한다. Arts & Culture 관객 참여 영화 관람의 새로운 규칙. Fashion Arts & Culture 엘리세 비 올슨: 내게는 큰 야망이 있다. 나는 청중을 원한다 스물한 살이 된 세계 최연소 편집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패션 업계가 흠모의 대상인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출판 전문가 엘리세 비 올슨을 톰 파버가 만나본다. Arts & Culture 임계 질량 모두가 비평가라면 누가 비평가인가? Arts & Culture 바보들의 사슬 행운의 편지가 소셜 네트워크로 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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