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불편함과 복잡성에 대한 스리니바산의 태도는 다소 구식이며, 대단히 참신하기도 하다. 섹스할 권리의 리뷰에서 아일랜드 소설가 나오이즈 돌란은 스리니바산에 대해 “책을 주로 트위터에 올리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 하는 꼬장꼬장한 검토에 대해 대범하다. 아무리 애써도 험담이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써서 쓴 단락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그녀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 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 비평가들이 그녀의 연구와 작업에 대해 반지성주의적 태도라고 한 것에 대해 우려했다. (섹스할 권리에 덜 우호적인 어느 리뷰에서 이 책은 ‘소비에트 스타일로 성을 재교육’하는 ‘전체주의적 소책자’로 요약되기도 했다)3 “사람들이 분노하고 성내는 대상이 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으려 하는 건… 그건 정말 거슬리더라고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스리니바산의 작업은 철학자들에 비해 훨씬 더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올해 초, 그녀는 『보그』지에 모습을 보였다.4 나는 그녀에게 철학이나 철학자의 사회적 쓰임 및 대중들이 쉽게 자신들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일반적으로 철학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스리니바산은 대중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버나드 윌리엄스와 데릭 파핏 같은 철학자들을 존경한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철학의 복잡성과 난해함에 대한 비판이 계속 있었고, 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늘 있었어요. 저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대중에게 복잡한 사상을 전달하는 데 따르는 문제는 철학자들의 빈약한 글쓰기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공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지식이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보수적인 공격용으로 쉽사리 이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를 두렵게 한다. “그래서 흔히 ‘쓸데없다’고 하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스리니바산의 저술에서 보이는 섬세한 붓놀림은 강의실 외부 세상의 어지러움과는 담을 쌓은 것 같다. 실제로 그녀의 책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주로 그녀의 제자들과 학문적 동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물론 대학 풍경도 10년 사이에 많이 바뀌기는 했다. 지금으로부터 채 20년이 지나지 않은 과거, 스리니바산이 예일대 학부생이었던 시절만 해도 페미니즘은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서, 그녀가 옥스퍼드에서 가르치는 페미니즘 이론의 학부 교과목은 팬데믹 이전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수강해서 대학 내에서 가장 넓은 강의실로 옮겨야 했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성내는 대상이 되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으려 하는 건… 그건 정말 거슬리더라고요.”
스리니바산이 성인이 된 후 엘리트 대학들을 오가며 배우고 가르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그녀가 그 안에서 늘 편안하게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즈 프로젝트(The Rhodes Project)』에 실린 2015년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옥스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연결되는 느낌이 거의 없고 어울릴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낯선 땅의 이방인” 같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의 진행자가 그녀에게, 인생에서 앞으로의 10년이 어떨 거라고 상상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루할 틈이 없고, 남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지금의 그녀를 보면 쉬운 대답, 환원적 사고에 대한 저항으로 자신의 열망을 실현시켰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