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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베이루트의
등대지기.

빅토르 셰블리는 폭풍, 전쟁, 세 차례의 납치를 겪으면서도 가족의 빛나는 유산을 지켜냈다.
글 by Sabina Llewellyn-Davies. 사진 by Bachar Srour.

바다를 마주보는 베이루트의 언덕에는 오래된 마나라manara(등대를 뜻하는 아랍어)가 우뚝 서 있다. 이 25미터 높이의 흑백 줄무늬 탑이 위치한 지역의 명칭도 등대에서 따왔다. 이 나라에서150년 이상 등대지기로 살아온 집안의 빅토르 셰블리 역시 레바논의 과거를 환히 밝히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이 등대는 역사 유적일 뿐 아니라 국가의 재건을 찬양하는 기념물로서, 개인이 도시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어떤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SABINA LLEWELLYN-DAVIES: 어릴 때 등대 안에서 사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소망일 것 같다. 당신은 어땠나?

VICTOR CHEBLI: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다시피 등대의 부속 건물이 우리 가족의 집이다. 베이루트 해안가에 위치한 곳이라 섬에 나가 있는 등대지기들과 달리 고립감을 느낀 적은 없다. 이곳에는 늘 많은 일이 일어난다. 물론 항상 쉬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 나는 등대에 연료로 쓸 등유를 나르는 등 허드렛 일도 도와야 했다. 고된 일이었다. 1952년에는 베이루트 앞바다에서 프랑스 선박 샹폴리옹이 침몰했다. 등불을 밝히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구속되었다. 당시에 나는 어린 꼬마였다. 아버지는 감옥에 갇혔지만 다행히 무죄가 입증되어 석 달 후에 석방되었다. 같은 해에 프랑스는 등대 조사팀을 파견하더니, 그 후 좀 더 현대적인 시설을 짓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1957년에 새 시설로 이사했다.

SLD: 꼭대기까지 계단 300칸을 직접 올라와보니, 자동화 이전에는 등대 관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된다. 1950년대에는 일상적인 관리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VC: 새 등대로 이사했더니 새 기계와 전기 설비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주 진보적인 설비였다. 아마 그 지역에서 최신식이었을 것이다. 승강기가 설치되어 더 이상 장비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었다. 등대가 전기로 작동했기에 등유도 필요치 않았다. 관리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 하지만 꼭두새벽에 일어나 동 틀 녘에 불을 끄고 해 질 녘부터 해안가의 배들을 안내하기 위해 등대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생활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하고 있다.

SLD: 부친은 당신이 등대 관리하는 일을 물려받기를 바랐나?

VC: 셰블리 가족은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 때 처음으로 등대가 세워진 이래 150년 넘게 베이루트로 오는 배를 안내하는 일을 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도 그것을 바랐다. 나는 아버지가 은퇴한 1973년에 이 일을 이어받았다.

SLD: 당신이 등대지기가 된 직후, 레바논은 15년간 내전을 겪었다. 베이루트 주민 수천 명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 그곳에 남아 등대를 지키기가 힘들지 않았나?

VC: 전쟁은 1975년에 시작되었다. 힘든 시기였다. 나는 세 번 납치되었고 우리가 사는 건물은 총과 폭탄을 여러 번 맞았다. 1990년에 휴전하기까지 안전상의 이유로 등대를 꺼놓았지만 엔진이 녹슬지 않도록 낮에는 켜두어야 했다. 우리는 등대를 버리고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집을 최대한 수리했고 네 아이를 데리고 지하실에 숨어 살며 평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SLD: 등대나 베이루트를 떠날 생각, 또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VC: 우리 가족은 베이루트에서 200년을 살았다. 등대처럼 우리 집도 심하게 부서졌지만 매번 다시 지었다. 베이루트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죽을 곳이다. 지금은 내 아들 조지프와 레이먼드가 날마다 등대 정비를 돕고 있다. 내가 은퇴하면 둘이 내 일을 물려받을 것이다.

SLD: 일흔 둘인 당신은 아마도 세계 최고령 등대지기일 것이다. 감회가 어떤가?

VC: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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