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는 원래 존재할 운명이 아닌 도시였다. 다른 지역에서 로스앤젤레스를 찾아가려면 건조하고 뜨겁고 지루한 사막을 건너야 한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천연 식생은 바다를 접한 산에서 안개를 먹고 사는 풀과 나무며,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식물은 타버리고 만다. 야자수와 수영장에 물을 공급하고 매년 발생하는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부터 끌어온 것이다. 그로 인해 물을 수송하던 멀홀랜드 수로는 한때 푸르렀던 골짜기를 북동쪽의 불모지로 만든 것으로 악명이 높다. 물, 그리고 가뭄은 영화와 고속도로만큼 로스앤젤레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끝없는 여름은 끝없는 가뭄으로 이어진다. 1976년부터 1977년까지 지속된 가뭄은 미국 문화에 특히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뭄으로 집주인들이 수영장에 물을 채울 수 없었던 시기는 스케이트보드 바퀴 기술의 혁신이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스케이트보드는 파도가 잔잔할 때 서핑을 할 수 없었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서퍼들에게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70년대 중반 스케이트보드의 바퀴로 점토나 금속이 아닌 폴리우레탄 소재가 도입된 후 스케이팅이 더욱 민첩하고 부드러워졌으며 접근성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도그타운(Dogtown)이라고 불린 남부 산타모니카와 베니스 지구에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빈털터리 10대들이 있었는데, 가뭄의 시기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물이 없는 수영장은 그들이 보통은 가볼 수 없는 곳이었고, 특히 그들의 어린 마음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새롭게 생겨난 도시의 놀이터는 새로운 스케이팅 기술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청소년 문화를 만들었다. 산타모니카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제퍼> 스케이트보드숍을 근거지로 둔 스케이터들인 토니 앨바, 스티브 올슨, 스테이시 페럴타, 제이 애덤스는 스스로를 ‘Z 보이즈(Z boys)’로 칭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탈 비어 있는 수영장을 물색했다. 그들은 조직적이었고 부지런했다. 수영장에 반쯤 물이 채워져 있다면, 그들은 펌프 장비를 끌고 가서 물을 완전히 뺐다. 만약 화가 난 집주인과 경찰이 나타나면 그들은 줄행랑을 친 뒤 다음 차례의 콘크리트 천국을 찾으러 갔다. 수영장 벽면의 경사는 그들이 새로운 기법을 마스터할 수 있는 소중한 연습장이었다. 그들이 1975년 델 마 내셔널에 출전했을 때 스케이트보드라는 스포츠는 서핑의 뿌리를 떨쳐버리고 독립적인 영역으로 공식적인 데뷔를 했다. 풀장 스케이팅은 위 사진에서 보듯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처럼 고루한 지역까지 퍼져나갈 정도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엑스게임즈」(ESPN에서 주최하고 방송하는 연례 익스트림 스포츠 경기 대회-옮긴이),「잭애스」(MTV에서 방영한 스케이트보드 리얼리티 시리즈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옮긴이), 블링크-182(스케이트보드 문화에 뿌리를 둔 펑크 록 밴드-옮긴이)가 뒤를 이었고 「독타운과 Z 보이즈」라는 다큐멘터리도 생겨났다. 빈 수영장은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한 장난기 있는 예술가 무리에게도 관심을 끌었다.1 남부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회화와 프린트메이킹 콜라주로 잘 알려진 영국의 화가 호크니는 1988년 어느 이른 아침 스프레이 캔과 손잡이가 긴 붓을 들고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에 몰래 들어갔다. 그가 그곳에서 네 시간 동안 한 일은 수영장 바닥과 벽면에 구불구불한 파란 선들을 연속적으로 그린 것이었다. 수영장에 물을 채우고 물결을 조금이라도 일으키면 파란 무늬가 물결과 함께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았다. 루즈벨트 호텔의 경영진은 말할 필요도 없이 미술계의 스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경찰을 부르지 않았고 수영장 바닥 덕분에 부동산 가치를 100만 달러 더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호텔은 안전을 위해 수영장 바닥을 단색으로 칠해야 한다는 캘리포니아주의 법에 대한 특별 면제를 받았고 면제 발표가 있었던 날에는 축하 파티를 열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파티를 위해 수영장에 물을 채웠으나 물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수영장에 물을 채우자 구불구불한 무늬가 물결처럼 움직였지만 빈 수영장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은 보이지 않았다. ( 1 ) 호크니의 가장 유명한 수영장 그림은 그가 1967년 4월부터 6월까지 작업한 「더 큰 풍덩(A Bigger Splash)」이다. 2009년 그는 다이앤 핸슨에게 수영장에 대한 그의 집착이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도시의 전역에 푸른색 수영장들이 내려다보였어요. 저는 잉글랜드에서는 수영장이 사치였지만 기후 덕분에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 1 ) 호크니의 가장 유명한 수영장 그림은 그가 1967년 4월부터 6월까지 작업한 「더 큰 풍덩(A Bigger Splash)」이다. 2009년 그는 다이앤 핸슨에게 수영장에 대한 그의 집착이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도시의 전역에 푸른색 수영장들이 내려다보였어요. 저는 잉글랜드에서는 수영장이 사치였지만 기후 덕분에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문제적 사물 카펫의 모호한 역사. Arts & Culture 사무실 밖으로 자동응답의 교묘한 기술. Arts & Culture 디지털 호딩 가상 메모리의 지배력. Arts & Culture 컬트 룸 '설명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축소된 연구’ 소름 끼치는 범죄 현장을 미니어처 세트에서 재현하다. Arts & Culture 패자에 관하여 실패에 관한 신선한 시각. Arts & Culture 애나 위너 애나 위너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으로 가는 여정에 있었다. 그런데 방향을 바꾸었다. 알레시아 알레인이 기술-회의론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