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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에세이:
열린 관계

테라피가 대중적 오락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글 by Allyssia Alleyne. 사진 by Aaron Tilley. 세트 디자인 by Sandy Suffield.

쇼타임에서 방영한 커플 테라피의 첫 에피소드. 시작한 지 채 10분이 못 되어, 시리즈물의 악당에 대적할 만한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복잡한 걸 요구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극히 솔직하게 다 털어놓습니다. 상대하기 제일 쉬운 사람이죠.” 잘생긴 외모를 한 대립적인 태도의 남편이 23년 동안 함께 산 아내 옆에 앉아서 이렇게 설명한다. (“설마,”라고 아내는 기운 없이 받아친다.)

“내가 원하는 건 책임 제로예요. 아무런 책임 없이 내가 원하는 온갖 섹스를 하는 거예요. 내 쪽에서 짊어져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야 해요. 제로 워크, 제로 씽킹하는 거죠. 두 가지 모두 화려하고, 열정적이며, 진실해야 하니까요.”

이쯤 되면 왜 커플 테라피가 2019년 방영 이래로 미국과 그 너머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으며, 올해 호주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다. 30분짜리 에피소드 9개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실제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해묵은 싸움을 다시 시작하고, 환자이면서 통찰력 있는 임상심리학자이기도 한 오르나 구랄닉의 도움으로 관계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누군가의 삶이 해부되고 있는 순간에도 이 테라피스트의 사무실은 개인적 우여곡절과 비밀스러운 수치심, 감춰져 있던 적개심에 대해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무대가 되며, 이 모든 것들이 멋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다.

이 쇼는 최근 TV 쇼, 유튜브 시리즈, 팟캐스트에서 유행하는, 테라피 세션을 엔터테인먼트로 전환한 사례 중 하나다. 관계에 얽힌 드라마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벨기에의 저술가이면서 심리치료사인 에스더 페렐의 팟캐스트 어디서부터 시작할까(Where Should We Begin)?와 요즘 어때(How’s Work)?를 다운로드해서 보면 좋다. 각각 커플과 동료 관계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유명인을 좋아하면 바이스랜드의 2017년 시리즈인 더 테라피스트를 다시 보는 것을 권한다. 케이티 페리와 프레디 깁스를 포함한 뮤지션들이 정신과 의사인 시리 샛 남과 함께한다. 캐나다방송협회(CBC)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타인의 문제(Other People’s Problems)는 테라피스트 힐러리 맥브라이드가 자신의 오랜 고객들을 익명으로 출연시켜 치료 과정을 방송한다. 그리고 아이하트라디오의 디어 테라피스츠는 가이 윈치와 로리 고틀리브(2019년에 쓴 회고록 누군가에겐 말해야 해(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가 에바 롱고리아 출연의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가 진행을 맡아 일회성의 치료 과정으로서 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지침을 제공한다. 테라피스트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오랫동안의 구속에서 벗어나 비밀 보장과 사생활 보호의 전통을 깨트리는 것(물론 환자의 동의를 얻어서)은 사생활과 공적 생활 사이의 경계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테라피와 맺고 있는 관계의 모순성, 변화하는 속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테라피는 전체 시리즈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는 선정적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방송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는 충분히 정상적인 지점을 고수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정신 질환보다는 관계, 트라우마,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테라피와 여러 정신 건강 서비스들을 한데 묶어 이런저런 오명을 씌운 바람에, 정작 필요한 데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때에 이런 프로그램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테라피를 엔터테인먼트로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의 역사는 1920년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조의 문제에 관한 원조 구루(guru, 힌두교 및 시크교의 스승이나 지도자. 많은 경우 전문가를 가리킨다-옮긴이), 매리언 세일 테일러가 미국인들에게 ‘인간관계’의 조언을 제공한 것이 시초다. 이때 그가 제작해서 방송국에 판매한 프로그램이 경험의 소리(The Voice of Experience)이며, 지금껏 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리얼리티 TV 쪽에서는, 테라피가 서사 장치로서 현대적인 다큐드라마라는 특색을 강하게 띤다. 스타의 내면을 꿰뚫어 보거나(뉴욕의 진짜 주부들(The Real Housewives of New York)에서 베서니 프랭클은 테라피스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열어 보인다), 갈등이 쉽사리 드러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애틀랜타의 진짜 주부들(The Real Housewives of Atlanta)에서 네네 리크스가 그룹 테라피 세션을 준비했다가 방해한다). “텔레비전은 언제나 치료에 관련된 분야와 관계를 맺어왔어요.”라고 뉴욕 포드햄 대학교의 미디어 연구 및 흑인 문화 연구 부교수인 브랜디 몽크 페이튼은 말한다. 그녀는 오늘날의 토크 테라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작을 스튜디오 관객들 앞에서 사적인 문제를 논의했던 오프라 윈프리 쇼와 같은 초창기 토크쇼로 본다. 그 후, 지금은 유비쿼터스라고 할 수 있는 고백 카메라가 리얼월드에서부터 베첼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채용되어 현재의 투명성 수준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한편에서는 닥터 드류와 함께하는 셀러브리티 재활치료(Celebrity Rehab with Dr. Drew)와 인터벤션 같은 프로그램들이 마음 아픈 내용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임상적 테라피의 비옥한 토양을 일구었다.

시청자들은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지켜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특히 그것이 대인 관계로 연결되면 더 좋아하죠.”라고 몽크 페이튼이 설명한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시청자들이 [실제 사람들 사이의] 더 친밀한 관계에 흥미를 보이는 이 공간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죠… 등장하는 커플들의 선정적이고 흥미진진한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데다 그들의 관계를 안락의자에 편하게 앉은 심리학자의 입장이 되어 평가해볼 수 있으니까요.”

CBC의 팟캐스트 타인의 문제의 창작자이면서 프로듀서인 조디 마틴슨은 ‘닫힌 문 뒤’라는 특징이 프로그램의 흡인력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고 지독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부터] 관음증의 측면을 염두에 두었어요. 사적인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니까요.1 대단히 좋은 팟캐스팅 또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사적인 공간에 관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가장 흥미로운 건 힐러리[맥브라이드, 테라피스트]와 내담자 사이의 관계였어요.”

기본적으로, 커플 테라피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전의 것들과 다른 점은 전문성을 내세우며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점, 그리고 진정 어린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점이다.2 “다른 치유 관련 프로그램은 주로 케이블-VH1, 브라보, MTV-에서 방영합니다. 그런데 커플 테라피 같은 프로그램들은 리얼리티 텔레비전과도 관계를 맺지만, 품질을 높여서 프레스티지 프로그램으로 나아가려 해요.” 그녀가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에피소드에서도 돈이 되는 순간, 즉 머니샷을 포착하려 한다는 점은 똑같아요.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진행하면 그런 순간들은 줄어들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가 소리치고 악다구니하는 걸 보고 싶어 해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프로그램들에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다.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치료 세션의 진행을 보고 듣는 것은 전문 지식을 전달해 받는 효과가 있다. 마틴슨이 타인의 문제를 제작하게 된 배경에도 직접 테라피에 참여해본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비용 때문에 테라피에 갈 수 없거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요. 테라피가 이루어지는 실제 방에 마이크를 설치해놓고 그 내용을 들을 수 있다면, 사람살이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내방자들에게 주어지는 조언이 시청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물론 한계는 있다. 디어 테라피스트 팟캐스트는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마다 진행자가 경고를 한다. 프로그램은 오로지 정보 제공만 할 뿐 “전문적인 조언, 진단 또는 치료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라는 것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가족연구소의 테라피스트인 레슬리 피셔는 이 부분을 결정적 문제라고 여긴다. “[이런 프로그램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의 어떤 행동에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할 겁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에요.” 그녀가 말한다. “화면에 나오는 사람과 우리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우리인 건 아니죠.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초기 환경, 다른 배경, 다른 리소스들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니 텔레비전을 보는 것만으로 필요한 것들을 다 얻을 수는 없는 거죠.”

피셔는 이런 프로그램의 진정한 영향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바른 방식으로 진행되기만 하면 테라피에 관한 문화적 태도를 폭넓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리소스들이 테라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고, 아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같은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도 있고요.” 그녀가 말했다. “팬데믹 이후 테라피를 시작한 사람의 수가 무척 많아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봐왔던 테라피스트들의 수를 넘어설 정도죠. 그렇지만 ‘당신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합니다.’ 같은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으려면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재미있는 구호를 하나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문제나 당신 자신의 문제나 거기서 거기다.’라는 것인데, 정말 그래요. 다른 사람의 반응과 고통, 치유 또한 나 자신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것과 비슷하죠.”라고 마틴슨은 말한다. “결국, 누군가가 진심으로 터놓고 고통을 이야기할 때는 귀담아듣는 것이 통합의 힘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1) 테라피스트들은 또한 틱톡에서도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다. 틱톡은 인기 있는 밈과 춤이 60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노출되는데, 틱톡의 형식과 시간을 이용해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플랫폼의 특성은 격식이 없다는 것이며, 덕분에 테라피스트가 전문가로서 개인을 대하는 엄격한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2) 커플 테라피의 스마트한 세트장 설계 덕분에 참여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공간에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임한다.

K43_Cover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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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라피스트들은 또한 틱톡에서도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다. 틱톡은 인기 있는 밈과 춤이 60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노출되는데, 틱톡의 형식과 시간을 이용해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플랫폼의 특성은 격식이 없다는 것이며, 덕분에 테라피스트가 전문가로서 개인을 대하는 엄격한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한다.

(2) 커플 테라피의 스마트한 세트장 설계 덕분에 참여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공간에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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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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