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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투어:
패트리시아 라이드 바케로

오래된 외관 뒤에 온갖 수집품을 감추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집. 산토 도밍고에 있는 이 주택은 폐허에 써내려간 그녀의 자서전이다.
글 by Michelle Del Rey. 사진 by Victor Stonem.

정원에는 석류와 배가 가득하고 난초와 생강꽃이 만발했다. 야외 테이블에는 파인애플 장식품이 놓여 있다.

이 정원이 품고 있는 집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패트리시아 라이드 바케로의 보금자리다. 산토 도밍고의 콜로니얼 존에 자리 잡은 열대의 오아시스. 콜로니얼 존은 라소나La Zona라고도 하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아침이면 앵무새 노랫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도미니카의 수도에서 성장한 라이드 바케로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를 거닐며 도미노 게임을 하는 사람들, 보헤미안 화가들, 거리를 점령한 종교 행렬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1980년에 이 집을 발견한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집이라기보다 다목적 공방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이 집에 50-60명이나 살고 있었다. 폐허나 다름없었다.” 라이드 바케로가 회상한다. 라이드 바케로는 건축가인 아버지인 윌리엄 라이드, 오빠 카를로스와 함께 이 집에 16세기의 영광을 되찾아주기로 결심했다. 이 프로젝트는 10년이 걸렸다. 1991년에야 라이드 바케로는 남편, 두 딸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다가가면, 베란다의 아치가 드러나면서 손님들을 지금은 주거 공간으로 쓰이는 옛날마차 차고로 안내한다. 따뜻한 오렌지색과 베이지색으로 꾸며진 이 방에는 라이드 바케로가 10대때부터 수집한 성인상과 도자기 화분이 진열되어 있다.

다이닝룸은 가족을 위한 공간이다. 식탁은 라이드 바케로가 태어난 후 그녀의 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그녀는 그것을 가족의 일요일 만찬 때 사용한다. 라이드 바케로의 기억에 따르면 이 집에서의 첫 가족 모임 때 그녀는 르네상스 천사상을 놓고 손님들의 머리 위로 여러 개의 조명을 늘어뜨려 장식했다. 의자는 원래 쓰던 것들이다.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사연을 간직한 물건들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가구나 장식품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전부터 늘 수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한다.

라이드 베케로는 어쩌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접하고 인근 대학에 등록하러 갔지만 대부분의 과정에 정원이 다 찬 상태였다. 결국 장학금을 받고 멕시코에서 전시 디자인을, 스페인에서 미술사와 민족 예술을 공부했다. 그녀의 수준 높은 디자인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벼룩시장과 해외여행에서 새로운 보물을 구해, 온갖 장식품과 골동품으로 집을 채웠다. 파키스탄에서 가져온 시타르와 영국의 건축 프린트가 벽을 장식하고 있다. 어떤 물건은 깨지거나 퇴색했지만 라이드 바케로는 바꿀 생각이 없다. “오히려 특색 있지 않나?” 그녀가 말한다.

1973년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차린 이후로 라이드 바케로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작고한 도미니카계 패션 디자이너 오스카 델라 렌타도 한때 그녀의고객이었다. 델라 렌타는 그녀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였으며 이 집에 무척 감탄했다고 라이드 바케로는 말한다. “오스카가 꼭 가보라고 권해서 이 집에 찾아온 사람이 적지 않다.” 그녀가 말한다. 라이드 바케로는 자신의 집을 마음 내키는 대로 꾸미지만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작업에서는 계획을 착실히 따른다. 그럼에도 항상 동상이나 골동품 의자 등으로 그녀만의 특색을 입힌다.

기회가 찾아오자 라이드 바케로는 바로 옆집을 매수해 두 집을 합쳤다. 정원을 구획하던 오래된 담장이 지금은 통로로 바뀌었다. 두 딸을 위한 수영장을 만들고 낡은 칸막이가 차지하고 있던주방을 바비큐장으로 개조했다. 그녀는 장래에 누가 이 집에 살게 될지 궁금하다. “내가 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기보다 관리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녀가 말한다.

콜로니얼 존을 둘러싼 동네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생 바르톨로뮤가 도시를 건설한 14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이드 바케로가 500년도 넘은 벽에 페인트칠을 주저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건축 과정에서 새 구조물을 추가할 때 그녀는 건축양식이 쉽게 구별되도록 현대적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은 최근에 재생 중이다. 새 이웃이 이사를 오고 개발 업자들이 성공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을 훼손하지 않는 한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말한다. “도시가 박물관이 되는 건 원치 않는다.”

라이드 바케로는 다양한 요소를 아우르는 그녀의 스타일이 대부분 지금은 고인이 된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집 곳곳에 특히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잔디밭 한구석에서 집을 굽어보는 비슷한 키의 나무 두 그루는 그녀를 애상에 빠뜨린다. 라이드 바케로는 종종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지금도 그 나무들이 그녀를 아버지와 이어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도시가 박물관이 되는 건 원치 않는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도시가 박물관이 되는 건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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