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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걸출한 영화감독이 몇 번이나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글 by Poppy Beale-Collins. 사진 by Rick McGinnis.

 

영국 영화감독 마이크 리가 지난 50년 동안 만든 영화와 연극은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아왔다. 그는 협동적이고 즉흥적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하다. 마이크 리의 영화는 시간 순서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실세계에서처럼 관객이 알아야 할 모든 정보가 담긴 인상주의적 단일 장면들로 제시된다. 「인생은 향기로워」에서 10대 딸의 방 문 앞에 서 있는 엄마, 차 한 잔을 들고 있는 베라 드레이크의 모습, 「네이키드」 속 런던 거리의 나른한 고요함 등이 그 예다.

POPPY BEALE-Collins: 지금 어디서 통화하는 중인가?

MIKE LEIGH: 원래 런던에 살지만 지금은 콘월에 머무르고 있다. 이곳에서 1년 넘게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 손자가 그립지만 우리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괜찮다. 작년에도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지만 내 작업 방식으로는 코로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PBC: 평소 당신의 작업 방식에는 글쓰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나?

ML: 글 쓰는 과정은 배우들과 함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의 일부다. 관습적인 의미에서 나는 사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갈 뿐이다. 「비밀과 거짓말」과 「베라 드레이크」는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비밀과 거짓말」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에서, 「베라 드레이크」는 내가 낙태법 이전의 상황이 어땠는지 기억할 만큼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인물들을 다듬고 그들 간의 관계를 구축하고 리허설을 통해 장면을 형성하는 여정이었다. 글쓰기는 리허설을 통해 완성된다. 결국에는 글로 써야만 모든 것이 분명해지지만 내가 현장을 떠나 대본을 써들고 다시 돌아오는 방식은 아니다. 마지막 결과물의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나온다. 내가 만든 20여 편의 영화는 모두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PBC: 요즘처럼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독서를 더 많이 하는가?

ML: 그렇다. 읽어야 할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넉넉했던 적은 없다. 그리고 평소 일과를 생각해보면 내 독서량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18개월 전쯤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필립 로스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포트노이의 불평」밖에 읽은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필립 로스가 쓴 책을 전부 다 읽었다. 독서 습관을 붙인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나?”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대답한다. 그러다 문득 오즈의 크라이테리언 박스 세트를 갖고 있으면서 다 보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에 허세가 섞여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한자리에 앉아 오즈 영화를 다 보았다.

PBC: 작년까지 당신은 주로 런던에서 일했다. 당신의 창작 과정에서 지역은 얼마나 중요한가?

ML: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편이다. 배우들에게서 그들의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는 자극을 받는다. 콘월에서는 사람들을 관찰할 기회가 적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맙소사, 사람들을 못 만나니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어’ 하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1년 이상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지난해를 낭비한 걸까?’, ‘왜 나는 소설 한 편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은 시간 낭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서식지는 항상 극장과 영화판이었다.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제작팀의 분위기가 결과물에 큰 영향을 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

영화나 연극을 만들 때 내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은 학교 같은 빈 건물을 구하는 것이다. 그곳은 완벽한 공간, 아무런 제약 없이 탐구할 수 있는 실험실이 된다.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규칙적인 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우주 최강의 늑장꾸러기로서 그런 작업 방식의 좋은 점은 6개월간 날마다 일찍 일어나 9시까지 꼼짝 없이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가서 뭐든 만들어내야 하는데 가끔씩 평소보다 창조성이 샘솟는 날이 있다. 아침에 무조건 일어나 현장에 나가는 것이 내게는 ‘성공의 비결’이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령을 피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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