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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sign

뉴 미니멀리스트:
조셉 디랑

프랑스의 건축가 조셉 디랑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때인 열일곱 살에 처음으로 프루베의 의자를 장만한 이래, 늘 형태보다 기능을 중시해왔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해나가는 한편, 특유의 파리지앵다운 차분한 분위기를 <릭 오언스>와 <발렌시아가>의 매장에 불어넣고 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건축가인 카를로 스카르파와 미스 반 데어 로에, 테크노와 대지 미술을 향한 애정, 가족과 함께 머무는 소탈한 집에 관해 디랑이 들려주었다.
글 by Sarah Moroz. 사진 by Lasse Fløde. 스타일링 by Pau Avia.

호리호리한 몸으로 새가 지저귀듯 말하는 파리 태생 건축가 조셉 디랑은 프랑스 특유의 풍부한 매력을 지그시 눌러 표현한다. 그의 디자인은 화려한 본질을 명료하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디랑의 미감은 차분하면서도 노련하고, 소소하게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모습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파리의 로젠블럼 컬레션이나 생지롱의 빌라 피에르캥 등 자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베이루트의 사이피 펜트하우스 및 멕시코의 디스트리토 카피탈 호텔처럼 해외에서 선보인 프로젝트에서는 과거와 초현대의 요소를 강조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디랑의 사무실은 센 강 우안, 파리 9구에 있는 건물 6층에 자리 잡고 있다. 파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직원 스물댓 명이 일하고 있는 개방형 사무실에는 온갖 소재의 샘플이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근사한 장식이 된다. 디랑의 방에는 예술과 건축에 관한 많은 책들과 그가 좋아하는 잔느레의 의자가 놓여 있다.

디랑은 곧장 카를로 스카르파,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존경하는 건축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금세 테크노와 대지 미술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인터뷰 도중 희끗한 머리카락을 간간이 쓸어올렸고, 이따금 까칠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디랑의 깔끔한 매무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만의 놀라운 시각 언어로 무엇을 해내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수염은 완벽한 모습 밖으로 삐죽 튀어 나온 유일한 편린이었다.

디랑은 늘 미니멀리즘에 이끌렸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패션디자이너였던 어머니는 벼룩시장을 좋아했고 빈티지 물건을 사는 걸 즐겼다. 아버지는 영국의 인테리어 잡지 『더 월드 오브 인테리어스』와 함께 작업하는 등, 건축/인테리어 전문 사진작가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디랑은 아버지의 촬영에 따라다니며 조수 노릇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찍는 소재는 매일 달랐다.

“많은 정보와 멋진 문화를 접할 수 있었지만 모든 게 좀 뒤죽박죽인 느낌이 었죠. 너무나 많은 자극 사이에서 저만의 감각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어요.” 지나 치게 풍부한 경험을 한 나머지 포화감과 혼돈을 느껴 오히려 단순과 절제의 극단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디랑은 파리에 있는 댄스 스튜디오를 개조한 집에서 자랐다. 유리와 철조를 활용한 1930년대 건축물이었다. 집 안에 똑같이 생긴 의자는 없었다. 아늑한 빨 간 벨벳 의자와 소박한 농장 풍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듯 하다. “물론 멋지긴 했지만… 전 그렇게 살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촬영할 때마다 취향을 바꾸셨던 셈이죠.” 그 결과, 모든 걸 지우고 빈 페이지에서 다시 시작 하는 것이 ‘디랑의 취향’으로 굳어졌다.

디랑의 아버지는 늘 건축가가 되길 꿈꿨지만 건축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아 버지의 갈망은 아들에게 오롯이 전해졌다. 디랑은 열두 살 때 르 코르뷔지에 관한 글을 썼던 걸 기억하고 있다.

“휴가 때면 여러 도시의 건물을 보러 가곤 했죠.” 디랑이 즐거운 듯 말했다. 그는 열일곱 살 때 벼룩시장에서 600프랑을 주고 처음으로 프루베 의자를 샀다.

이자의 가치는 이제 거의 17,000달러에 달한다. 스물한 살 때, 디랑은 파리 벨립 건축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지인을 위해 작은 아파트를 디자인했다. 이는 강렬한 출발점이 되었고, 덕분에 1999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열었다.

지난 20여 년간, 디랑의 스튜디오에는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디랑이 잘 하는 작업 중 하나는 명품 브랜드들을 위해 근사한 세트를 만드는 것이다. <발망>이 파리에 있는 플래그십 부티크의 디자인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디랑은 “지극히 고전적인 18세기 풍 설계”를 완성했다. “아무래도 존중받아 마땅한 오트 쿠튀르의 전통을 지닌 브랜드의 작업이었으니까요. 기존의 스토리가 있다면, 지키고 이어나가는 게 바람직하겠죠.” 디랑은 “매우 추상적이고, 극히 모던하고, 큐브릭한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런던에 있는 매장을 디자인할 때에는 18세기 프랑스의 분위기를 런던이라는 장소에 맞게 변주했다. 천장과 바닥,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18세기 영국의 분위기에 녹여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체 분위기는 같았어요. <발망>의 별장처럼 말이죠.”

<발망>은 그가 작업한 수많은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푸치>와 <릭 오언스>는 딴판이에요. 하나는 화려하고, 하나는 브루탈리즘이 묻어나죠.” 디랑이 다른 명품 브랜드를 예로 들며 말했다(디랑은 <발렌시아가>, <지방시>, <알렉산더 왕> 매장도 디자인한 바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브랜드가 하는 일과 그들의 생각, 정체성을 연결하는 시나리오를 만들 좋은 기회였어요.” 브랜드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디랑은 각 고객사에 맞게 새로운 형태, 비례, 스타일을 빚어낸다. “디자인이 브랜드의 현재 및 과거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는가가 가장 중요하죠.”

디랑의 디자인은 영화의 한 장면, 책, 여타 신화적인 디자인을 살펴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면 책장부터 훑어본다. LA의 신축 빌딩 작업을 맡았을 때는 에드 루샤의 사진을 바탕으로 모더니즘 시기의 풍경을 그려 냈다. 바하마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 선보인 식민 시대 풍 방갈로는 일본의 전통 주거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디지털 자료에도 영향을 받는다. “구글은 최고의 파트너예요. 요즘 사람들 은 모두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인터넷은 새로운 문을 계속해서 열어주니까요.”

요즘 디랑은 자신의 레퍼토리와 연관되어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 고 있다.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앞으로 파리의 고급 아파트를 디자인하는 일은 많지 않을 거예요. 이제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으니까요.” 디랑은 마지못해 덧붙였다. “물론 가능성이 크다면 주거 공간도 설계할 수 있겠지만요.” 그런 프로젝트는 혁신적인 작업을 해볼 기회를 준다. 비용이나 시간, 복잡성 면에서 상당한 투자를 할 역량이 있는 민간 부문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디랑은 매장이나 개인 주택을 뒤로하고 호텔이나 건물을 디자인하는 쪽으로 옮겨 갔다. 최근에는 파리의 장식미술관에 둥지를 틀고 있는 가벼운 느낌의 우아한 레스토랑 <룰루>를 완성했다. 파리 시내 건너편, 팔레 드 도쿄 현대미술관 에 있는 <무슈 블뢰>를 디자인해서 상을 받기도 했다. 대리석과 오크로 바닥을 마감하고 벨벳 소재의 긴의자로 꾸민 레스토랑이다.

“제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게 좋아요.” 작업의 범위를 넓히고 사람들이 더 많이 드나드는 공간을 디자인하고픈 이유다. “제가 디자인한 매장 중에는 없어진 곳도 있어요. 브랜드는 변하기 마련이고, 매장을 옮길 때도 있죠. 그래서 요즘은 오랫동안 변치 않을 공간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은 바람이 커졌어요.”

현재 디랑은 마이애미의 <포시즌스> 호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작업할 때 빠지기 쉬운 진부함이라는 함정은 정공법으로 해결한다. “마이애미에서는 대중적이면서도 시크하되 화려한 50년대 분위기를 내고자 했어요. 아르데코, 파스텔색, 야자수, 터키색, 구름이 드리운 하늘을 이용했죠.” 그 결과 태어난 디럭스 스위트룸에서는 호텔 앞에 펼쳐진 숨막힐 듯한 바다 풍경을 음미할 수 있다. 150센티미터 높이의 거울을 재치 있게 배치한 덕분이다. 거울은 방의 비율이 달라 보이게 하는 효과도 낸다.

“정말 효과적이었죠.” 디랑이 말했다.(샤워를 하면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 도록 욕실에도 거울을 설치했다). 디랑은 투숙객이 머무는 동안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L자형 석회석을 이용해서 소파 겸용 침대를 만들었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모래와 같은 색을 사용했어요. 저는 작업에 있어서 특별한 비주얼만큼이나 생활도 중시해요. 사람들이 나란히 앉거나, 테이블 앞에 앉아 일을 하거나, 사랑을 나눌 수도 있겠죠. 정말 멋질 거예요. 이 모두가 중요합니다.” 디랑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모습을 상 상할 때면 마치 영화를 촬영하듯 사고한다.

“깊이감을 내기 위해 대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공간과 빛, 시점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죠. ”구성력, 기하, 빛에 대한 세심한 감각 덕분에 디랑은 공간의 마술사로 거듭난다. “보자아자 기분이 좋아지되, 곧 건물에 대한 인상을 잊고 삶의 멋진 순간을 흠뻑 누리게 해주는 건물이야말로 좋은 건축이라 생각해요.”

디랑은 철저히 실험적이기 때문에 실내 디자인의 범위를 벗어난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작업 중인 공간과 관련된 로고, 웹사이트, 곡 목록을 검토하는가 하면, 레스토랑에서는 셰프와 함께 음식을 맛본다. 호텔에서 작업할 때면 스위트룸의 완벽한 모형을 만들고 침대를 직접 이용해본다.

“음식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식당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리 멋진 공간을 완성해놓아도 맛이 없다면 고객에게 좋지 못한 경험이 될 테니까요.” 디랑은 이처럼 엄밀하게 접근하는 자신의 스타일이 댄디의 꼼꼼한 성향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댄디란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아름다움을 위해서 삶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미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말하죠. 저는 이렇게 완전한 비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요. 요즘은 리스크를 꺼리는 시대여서 전의 것을 베끼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 쪽이 잘 팔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동산 개발업체에서도 그걸 환영해요. 하지만 꿈꾸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음, 하지만 훨씬 멋진 결과를 위해 기꺼이 비용을 좀 더 지불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저와 같은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고객과 함께 일하는 게 중요해요. 하나씩, 하나씩 이런 사람들을 안나게 되고, 다음에도 또 손잡곤 하죠. 그렇게 되면 다른 고객은 필요가 없을 정도예요.”

이처럼 탄탄한 파트너십은 자유와 신뢰로 맺어져 있다. “저는 고객을, 고객은 저를 사랑해야 해요. 제게 더 많은 자유를 주고,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낼 기회를 주는 고객과 함께 일하죠.” 구현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제트에 전력투구하려면 삶을 통째 쏟아부어야 한다.

“생활 리듬이 극단적이에요.” 디랑은 정신 집중, 잦은 출장, 완벽을 향한 쉼 없는 작업을 두고 말했다. “저는 제게 도전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고객이 까다롭게 굴고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게 좋죠. 때로 게을러진 제 정신을 일깨워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처럼 정신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은 디자인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언제나 두 번, 세 번 바꿀 수 있는 요소들이 있어요. 개선해야 하는 부분 은 늘 존재하죠. 기능적 요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팀 사람들은 어려운 과제를 좋아해요. 시제품을 만드는 걸 즐기고, 모든 걸 디자인하고 싶어 하죠. 문고리, 수도꼭지, 심지어 기업과 손잡고 냉장고를 맞춤 제작할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더 멀리 나아가도록, 자신을 밀어붙이는 과제를 찾아내고, 스스로도 놀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해요. 우리는 모든 비례와 색을 제대로 잡아낼 때까지 작업해요. 더 많이 작업할 수록 욕심이 커져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되죠.”

“완성도를 위해 세계 최고의 장인과 함께 일해요. 그 사람들이 프랑스 태생인 건 우연이죠.” 디랑이 웃었다. “사실 프랑스 문화는 유서 깊기 때문에 기량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어요. 과거를 잊지 않고 배워나가죠.”

디랑은 수세기에 걸쳐 닦아온 장인의 기술만큼이나 내구성과 수명도 중시한다. 보편적인 콘크리트 대신 아름다운 석재를 쓰길 주장하기도 한다. “석재가 이유 없이 비싼 건 아니에요. 석조 건물은 백 년 뒤에 더욱 아름다워지는 반면, 다른 건물은 십 년만 지나도 흉해지죠.” 품질에 관해 엄격한 그의 모습을 보면 그를 찾는 고객층의 분위기도 가늠할 수 있다. “제 고객, 나아가 주변 사람들이 주거 공간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면 해요. 그게 제가 바라는 바죠.”

의외지만 디랑의 집은 셋집이다. “하지만 다 부수고 6개월에 걸쳐 개조했어요. 창문, 천장, 난방 시스템을 바꾸었죠.” 디랑과 동반자는 각기 딸을 하나씩 두고 있다. “작은 여자아이들 둘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낸 다음 우리의 생활방식에 맞게 디자인했어요.” 아이들은 한 주 걸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없을 대에도 허전하지 않도록 꾸였어요.” 디랑은 파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신고전주의 풍 오스만 식 건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디랑의 집은 센 강 좌안에 있는 17세기의 오텔 파티퀼리에 풍 건물이다. 7구에 있는 이 집의 넓이는 약 185제곱미터로 아름다운 계단과 현관, 3.6미터가 넘는 층고, 널 아래 난방 시스템이 있는 베르사유 풍의 모자이크 마루, 소용돌이치는 모양의 코니스, 마모리노 석고로 마감 한 벽을 자랑한다. “각종 기술을 활용했고, 편안하고, 소재의 아름다움도 갖춘 집이에요. 피아노 노빌레(서양 저택의 주요층)라 할 만하죠.” 디랑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두고 자랑스레 말했다.

디랑은 평생 세 번 이사했다. “이사할 때에도 애정이 담긴 물건은 버리지 않았어요. 새로운 물건을 사긴 하지만 기본적인 건 변함없죠. 집에 있는 모든 것은 제가 수집한 물건이에요. 도자기 하나, 재떨이 하나까지도요.” 디랑은 집을 새로 꾸미는 법이 거의 없다. “박물관에 사는 듯한 느낌은 싫어요. 집은 친근한 공간 이어야 하죠. 네 살, 아홉 살인 딸들이 늘상 뛰어다녀요. 행복한 집이죠. 제가 모은 물건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끔찍이 아끼지는 않아요. 부서질 수도 있는 거죠. 따지고 보면 그저 물건에 불과하잖아요.” 디랑은 덧붙였다. “아름다움 을 추구하느라 편안함을 희생할 수는 없어요.” 디랑에게 있어 아름답지만 기능적이지 못한 물건은 조각품에 불과하다.

디자인 제품뿐 아니라 예술품도 수집하는 디랑은 아트페어와 갤러리도 자주 찾는다. 아르테 포베라를 변주한 작품과 미니멀리즘에 끌리곤 하며, 스털링 루비, 제이콥 카세이, 로런스 캐럴 등의 작품을 수집한다. 최근에는 세르게이 옌슨과 야니스 쿠델리스(“ ‘알파베토’를 하나 더 샀지 뭐예요. 중독된 것 같아요.” 디랑이 고백했다.)의 작품을 구입했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가치가 올라가죠. 게다가 애초에 팔 생각이 없으니 가격에 신경 쓸 필요도 없잖겠어요.” 그의 논리다.

아침에는 당근주스를 마신 다음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DJ인 동반자 안 소피 빌레 옆에서 일하곤 한다. “안은 음악을 믹싱하고 저는 디자인을 하죠.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기 때문에 따로 또 같이 있는 셈 이에요. 거실에서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요. 저는 바닥에 앉아 낮은 테이블 에서 드로잉을 해요. 제 프로젝트는 바닥에 앉아서 미농지에 그린 그림에서부 터 시작되죠. 완성된 드로잉은 사무실에 출근할 때 가져가고요.” 디랑이 상자 를 끄집어내더니 부스럭거리며 종이 더미를 뒤졌다. “곁에서는 안 소피가 음악 을 찾고 믹싱해요.”

둘은 곧잘 여행을 다니거나 출장을 떠난다. “하지만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집이에요. 집은 에너지를 주고 나를 나답게 해주죠. 미적 철학, 라이프 스타일, 미래에 대한 생각이 전과는 달라진 고객을 위해 집을 디자인한 적도 있어요. 전에는 각자 벽에 붙어 앉았더라도 아이들이 생기면 보다 편안하게, 함께 모여 앉게 되죠. 아이들이 뛰놀 수 있도록 말이에요. 집에는 삶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가 모여 있어요.”

“풍수를 배운 적은 없지만, 저희가 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볼 때 풍수라고 생각해요. 풍수란 집 안에 빛을 들여놓는 것과 같으니까요.” 디랑은 이렇게 설명한다. “디자인은 모름지기 넉넉해야 해요. 삶의 중요한 순간과 행복을 빚어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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