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없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슬로 TV는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격언에 위배된다. 그러나 갓 부화한 새끼 오리들이 연못에 떠다니는 장면이든 뱃머리가 가르는 잔잔한 물살이든 이 장르의 프로그램들은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사로잡는다. 슬로 TV는 주로 스칸디나비아의 현상으로 여겨진다. 본격적으로 슬로 TV가 부상한 계기는 2009년 노르웨이에서 방영된 「베르겐스바넨 미닛 바이 미닛」이었다. 이것은 인위적인 작업을 최소화고 연안 도시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일곱 시간의 기차 여행을 담고 있다. 역 안내방송과 철로 위의 기차가 내는 지속적인 소음을 제외하고 모든 장면은 거의 침묵에 가깝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교외의 풍경이 소나무 숲이 우거진 피오르드에서 눈 덮인 고지대로, 그리고 마침내 수도의 실망스러운 회색 지대로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노르웨이인들의 약 20%가 시청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 재방송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게 되었고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도 닿았으며 여러 국가의 모방 프로그램들을 낳았다. 고프로 장비를 갖춘 아마추어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고 자연보호구역에서는 새 둥지, 수조, 동물 서식지에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2020년 봄 전 세계 사람들이 집에 발이 묶여 있는 가운데 한 웹디자이너는 시청자가 하노이에서 몬테네그로까지 지역에 따라 슬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슬로 TV는 카누 여행, 정원 가꾸기, 뜨개 모임, 장작 패기, 타오르는 장작 등 기분에 따라 적합한 소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쓰촨성의 전원적인 생활을 말없이 보여주며 수백 만 명을 감동시킨 리즈치의 영상과 같은 파생 장르들도 생겼다. 적어도 내러티브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대부분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 중 어떤 프로그램도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 결국 이야기는 인간이 흥미를 느끼는 전부이자 끝이다. 그리고 슬로 TV는 그 모든 매력을 갖췄지만 프로그램 성격상 이야기가 부족하다. 이것은 비극도, 긴장도, 탈출할 구제책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슬로 TV는 좀처럼 매끄러운 줄거리가 되지 않는 실제 삶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것은 리얼리티 TV에 제작진이 꽤 많은 개입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렇듯이 줄거리의 부재는 우리의 생각이 내러티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노르웨이의 시골이 외로워 보인다면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의 마음뿐이다. 우리가 강가의 오두막에 홀아비가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의 이야기를 쓴 사람은 우리뿐이다. 긴 자동차 여행 중에 차창 유리를 타고 내려가는 빗방울이 바라보는 한 아이를 떠올려보자. 그 이미지 자체에는 긴장감이 없지만 지루함을 느낀 아이가 빗방울이 도로의 중심에 놓인 것으로 보이도록 머리를 살짝 움직여보거나 한 빗방울이 다른 빗방울과 합쳐질 것인지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볼 수 있다. 「베르겐스바넨」과 같은 슬로 TV는 이렇게 몽롱한 종류의 내적 내레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추측과 연상 작용이 중심이 되는 명상적인 분위기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생각들은 백일몽처럼 펼쳐지지만 슬로 TV는 때때로 구체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2014년 매사추세츠주의 우즈홀 해양학 연구소가 카메라를 둥지에 설치하고 어미 물수리가 아기 새들을 방치하기 시작한 장면을 방송하자 시청자들은 이를 맹렬히 비난했다. 아기 새들이 알을 까고 나오는 과정을 몇 주에 지켜봤던 팬들은 개입하여 새들을 살리라고 제작진에게 요구했다. 물론 전문가들이 이에 반대했고 제작진도 그 요구를 듣지 않았다. 아기 새들이 목숨을 잃자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다. 이러한 일은 시나리오 작가가 없는 자연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무자비하고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청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이 기사는 킨포크 44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TwitterFacebookPinterest Related Stories Arts & Culture 공상 과학 소설 <아마존>은 어떻게 소설을 다시 쓰게 되었나. Arts & Culture 문제적 사물 카펫의 모호한 역사. Design Arts & Culture 지난밤 디자이너 잉카 일로리는 어제 저녁 무얼 했을까? Arts & Culture 해나 트라오레 미술계의 다음 큰 흐름은 갤러리스트다. Fashion Arts & Culture 엘리세 비 올슨: 내게는 큰 야망이 있다. 나는 청중을 원한다 스물한 살이 된 세계 최연소 편집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패션 업계가 흠모의 대상인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출판 전문가 엘리세 비 올슨을 톰 파버가 만나본다. Arts & Culture 사라진 장엄함 세계 불가사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Fashion Arts & Culture 엘리세 비 올슨: 내게는 큰 야망이 있다. 나는 청중을 원한다 스물한 살이 된 세계 최연소 편집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패션 업계가 흠모의 대상인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출판 전문가 엘리세 비 올슨을 톰 파버가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