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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세 비 올슨:
내게는 큰 야망이 있다.
나는 청중을 원한다.

스물한 살이 된 세계 최연소 편집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패션 업계가 흠모의 대상인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출판 전문가 엘리세 비 올슨을 톰 파버가 만나본다.

“내 나이와 별로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집에서 지내는 엘리세 비 올슨과 〈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2주 전에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내 나이를 다 빼앗긴 기분이었다. 언론은 관심은 항상 ‘최연소 편집자’라는 타이틀에만 쏠렸다. 처음부터 나를 틀에 가둬버린 거다.”

언론이 올슨을 다룰 때 ‘최연소 편집자’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열세 살에 청소년 문화 잡지 『리뷰Recens』를 창간하면서 그녀는 세계 최연소 편집장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제한 연령에도 한참 못 미쳐 기네스 세계 기록을 주장할 수 없었다). 8년 후 이 노르웨이 소녀는 일찌감치 성공한 Z세대 사업가의 전형이 되었다. 그녀는 두 종의 잡지를 창간했고, 누구나 선망하는 패션 회사들을 상대로 컨설팅했으며, 최근에는 노르웨이에 국제 패션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이룬 인물이다 보니 그녀와의 대화가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올슨의 말투는 빠르고 경쾌했으며 대화 주제는 진지한 토론에서 야릇한 유머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5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업에 매진했던 그녀는 이제 부모님 집 지하에 위치한 어린 시절의 침실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전염병이 발병하기 두 달 전에 중병을 얻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가 아버지가 회복할 때까지 곁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설명했다. “내 삶과 관련된 모든 일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2020년 1월에 올슨은 집에서 1년을 지내기로 결심했다. 웹캠을 통해 내게 집 안 구경을 시켜주면서 그녀는 눈썹과 같은 색조로 염색된 연한 금발을 뒤로 젖히며 양쪽 손목에 새겨진 정교한 검정색 문신을 드러냈다. 노르웨이의 사진작가 토르비욘 롤란드가 찍은, 풍성한 적갈색 고수머리를 지닌 중성적인 소녀의 사진 밑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분리된 벽의 반대편에는 철사 구조 선반에 알록달록한 ‘개인 연구용’ 대형 패션 서적과 잡지가 꽂혀 있는 포근한 잠자리가 보였다. 반대편에는 벽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침대를 금속 거치대에 설치된 대형 TV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TV를 보며 킥킥 웃었다. “누가 봐도 싱글의 안식처 같지 않나.”

 

    Hair & Makeup: Malin Åsard Wallin

올슨은 1999년 오슬로 동부 교외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주로 숙제와 가족의 저녁 식사 준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이었다. 2012년에 그녀는 친구들과 웹사이트 유지 비용을 분담하며 스칸디나비아의 10대를 위한 블로깅 네트워크 〈아키타입〉을 시작하여 인기를 얻었다. 이 경험은 그녀가 열세 살 때 창간한 청소년 문화 잡지 『리뷰』를 낳았다. 창간호는 엉망진창이었다. “우리는 잡지를 워드로 편집했다.” 그녀가 설명했다. “이미지 해상도는 심하게 떨어졌고 종이 질은 형편없었고 문장은 비문 천지였다. 하지만 나는 잡지를 영어로 만들고 싶었다. 세계적인 잡지로 키우겠다는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많은 독자를 원했다.”

『리뷰』는 청소년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로 창의적인 이야기를 쏟아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패션 업계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으면서도 그들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만 했다. 당시에 패션계의 관습에 도전했던 청소년이 올슨 혼자만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10대 소녀 타비 게빈슨이 패션 블로그 ‘스타일 루키Style Rookie’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게빈슨과 달리 올슨은 인쇄 매체에 주력했다. 자비로 『리뷰』 창간호를 낸 다음 광고주를 모집하고 당시 자기 나이의 두 배였던 모르테자 바제기와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아트 디렉터로 협업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미니멀리즘, 무광택 용지, 흑백 패션 페이지 등 당시의 유행을 보란 듯이 무시하고 올슨의 잡지가 현란하고 전문적인 출판물로 거듭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통관, 물류업에 종사하던 그녀의 부모는 열세 살 난 딸이 잡지를 만든답시고 방과 후에 사무실로 직행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그리 되지 않았다. 『리뷰』가 뜨면서 올슨은 전업으로 일에 매달리기 위해 열여섯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사업을 하다 보니 그녀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문화적 소양이 아주 풍부한 집안 출신이거나, 부모님이 내게 억지로 일을 시켰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매우 자발적으로 벌인 사업이며, 내가 오늘 당장 일을 때려치운다 해도 부모님은 내 뜻을 지지할 것이다.”

7호 이상 발행된 『리뷰』에는 대부분 25세 미만인 전 세계 500명 이상이 기고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올슨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18세 생일 직전에 편집장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성인이 만든 청소년 잡지는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올슨은 이미 자기 세대의 대변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2016년 TEDx 강연 제목은 ‘Z세대의 출현’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지만, 올슨은 지난 10년간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도적인 공헌을 했다.

『리뷰』는 디지털 원주민이 주도한 종이 출판물이라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올슨은 용돈으로 신문 가판대에서 『데이즈드Dazed』와 『보그 이탈리아』를 구입하던 여덟 살 때부터 인쇄물을 사랑했다. “당시에 인쇄물은 내가 지닌 디지털 사고방식을 보완할 해독제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설명했다. “인쇄물은 냄새와 촉감이라는 감각을 선사했다. 그리고 느린 속도도 마음에 들었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소비할 때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정보에 자극받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 하나의 대상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올슨은 이런 사랑을 18세에 창간한 두 번째 간행물인 『월릿Wallet』에 담았다. 『월릿』은 『리뷰』보다 지적이며 그 형식은 내용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인쇄물 판매의 감소 추세를 분석한 결과 사이즈가 큰 잡지는 불편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월릿』을 청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얇은 ‘안티 커피 테이블 잡지’로 만들었다. 광고 페이지에는 찢어버릴 수 있게 절취선을 넣었고 뒷부분에 메모 작성을 위한 빈 페이지를 추가했다. 이 모든 특성은 독자가 『월릿』과 상호작용하고 그 물리적 특성을 즐기고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게 하는 장치다.

『월릿』은 ‘패션 저널리즘을 되살리자’라는 공약을 내세운다. 이 구호는 문화와 제도에 대한 비판이 없는 잡지들을 향한 날선 공격이다. 이런 잡지들은 고유한 신념보다 광고와 브랜드 콘텐츠를 우선시한다. “패션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분야로 인식된다. 부자 남편을 둔 아내가 은밀하게 즐기는, 영화나 예술과 달리 평론 따위는 필요 없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올슨이 말한다. 『월릿』은 패션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평론을 다룬다. “정치, 돈, 권력 등 패션을 둘러싼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릿』은 업계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되었지만 올슨은 제10호를 끝으로 발행을 끝낼 계획이다. 그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는 다 이런 식이다. 그녀의 부모가 처음에 예상했듯이 모든 프로젝트가 다른 일로 넘어 가기 전에 임시로 거치는 단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녀의 해명은 다르다. “패션계 종사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보그』의 애너 윈투어만 봐도 그렇다. 내가 볼 때 그녀는 시대에 완전히 동떨어졌고 출판물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몰아간다. 누구나 그만둘 때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도 올슨은 세계화된 21세기 패션 업계의 프리랜서 크리에이티브로서, 자유를 포용하고 변화무쌍한 경력을 지닌 디지털 유목민으로서 사회 변화의 첫 물결을 타고 있다. 하지만 부모 세대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직업 안정성이 사라진 것만큼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패션계 종사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그만둘 때를 알아야 한다.”

한 해에 『월릿』을 세 차례 출간하는 와중에도 올슨은 미술 전시회 큐레이팅, 영화 제작, 강연(너무 반응이 좋아 지난해에 ‘출판업에 대한 재고’라는 강연이 책으로 나왔다) 등 끊임없이 골치 아픈 일을 벌였다. 2018년에 그녀는 포르투갈 리스본 외곽의 포도원에 위치한 185제곱미터 크기의 창고를 구입, 개조해 작업실 겸 생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뉴욕이나 런던이라면 콧구멍만 한 공간을 겨우 구할 돈으로 무엇을 누릴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정신없이 보낸 지난 5년간의 생활을 접고 오슬로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격리 생활을 하는 듯 마음이 답답했다.” 그녀가 말한다. “친구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조금 외롭긴 해도 내겐 잘된 일이다. 몇 달 동안 내 감정을 마주하며 균형을 되찾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자연이 풍부하다. 오슬로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5분만 가면 숲이다.”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규칙적인 산책에 올슨도 매력을 느꼈다. “걷다 보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그녀가 말했다.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그녀는 이 기회를 활용해 오슬로에 ‘국제 패션 연구 도서관’을 개관하는 새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이 시설은 단행본, 잡지와 더불어,도서관에서 일반적으로 외면하는 룩북, 카탈로그, 광고 포스터 등 상업 출판물을 아우르는 패션 인쇄물의 저장소를 표방한다. “홍보물 역시 패션 업계의 본질적인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올슨이 말한다. “창조성은 상업적 측면에 크게 의존한다.”

올슨이 멘토로 여기는 문화 평론가이자 뉴욕의 음악 평론가 스티븐 마크 클라인이 수집품을 기증했다. 그는 컨테이너 하나를 가득 채운 출판물을 선적으로 오슬로에 보내왔다.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 미술, 건축, 디자인 박물관이 도서관 공간을 내주었다. 2020년 10월에 개장한 디지털 도서관은 5천 종 이상의 출판물을 소장하고 있지만 판권 문제로 모든 페이지를 읽을 수는 없다. 실제 도서관은 올봄에 개장할 예정이며, 〈꼼데가르송〉, 〈프라다〉, 『아이디 매거진』 소속 명사들을 비롯해, 올슨이 구성한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패션 인쇄물을 수집하거나 패션 저널리즘의 혁신을 위해 분투하는 사명을 올슨은 ‘책임’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문화 여건에 좌절하는 청소년은 많아도 상황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판단하는 청소년은 거의 없다. 나는 그녀에게 이 문제를 그토록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느낀 불만을 해소하고 싶었다. 어릴 때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패션 도서관을 만드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녀가 설명한다. “나는 내 동료, 독자, 특히 내 주위의 젊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낀다.”

“감당해야 할 것이 많을 텐데.” 내가 말했다. “감당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더니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작은 침실 창밖의 잿빛 노르웨이 하늘을 내다보았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생각을 바꿨는지 그냥 이렇게만 덧붙였다. “진짜 그렇다.”

열세 살에 편집장이 되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어린애답게 천진난만했다. 그 나이에는 다행히도 패션 산업과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꽤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당시의 나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잃을 게 없으니까. 이제 나도 스물한 살이 됐으니 더 이상 어린 나이를 핑계 삼을 수 없다. 그 당시에는 눈만 뜨면 나가는 게 전부였다.”

올슨은 나이를 빼앗긴 기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항상 완벽히 통제해온 것 같다. 그녀는 어린 나이가 유용할 때 나이를 이용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자 겨울 코트처럼 나이를 훌훌 벗어던졌다.

2018년에 〈구찌〉의 지원으로 올슨에 대한 「유스 모드Youth Mode」라는 단편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리뷰』의 출간과 18세에 사임한 그녀의 결정을 연대순으로 기록한다. 여기서는 미디어에서 흔히 드러나지 않는 올슨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자지러지게 웃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욕조에 앉아 친구들과 장난치는 그녀. 평범한 10대의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 언론에 노출될 때 일부러 진지한 이미지를 만든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이라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전화 저편에서 정체 불명의 목소리가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하는 순간에 영화는 끝난다. “어릴 때 성공을 한 대가로 뭔가를 놓친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나?” 전화는 끊기고 질문은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나는 올슨에게 이 장면 얘기를 꺼냈다.

“영화에서 당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할 수 있나?”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가족, 친구, 업계의 동료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너무 빨리 커버렸거나 어린 시절을 놓친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느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멋진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의 일부를 보았고,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굉장한 대화를 나눴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다른 길을 원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잃을 게 없으니까.”

“당시의 나 자신에게 조언을 한다면,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잃을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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