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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낮게

대화를 여는 건축학적 장치.
글 by Alex Anderson. 예술 작품 by Alexis Christodoulou.

대화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건축학적 하부 구조가 깔려 있다. 고대 로마의 트리클리니움은 3면이 긴 의자로 둘러싸인 작은 식탁으로, 음식과 이야기를 위해 할애된 공간이었다. 썰렁한 중세의 주택에서 중앙 벽난로 옆에 놓인 벤치는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된다. 잉글랜드와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이런 ‘잉글누크(난롯가)’를 19세기 단층 주택에 적용했다. 현대의 중앙난방 덕분에 훈훈한 벽감이 불필요해지면서, 20세기 주택 설계는 넓게 이어지는 방 공간에 기능을 조합했다. 건축가들은 방만하게 펼쳐진 열린 공간들 속에서 내밀하게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대화실’이라는 참신한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1949년, 핀란드 출신의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산업디자이너 찰스 임스와 함께 출판인 존 엔텐자를 위해 최초의 대화실을 설계했다. 건축사학자 에스터 맥코이의 1962년 기록을 살펴보면, 캘리포니아 퍼시픽 펠리세이즈의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9의 거실은 “탄력 있는 공간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40명이 모이는 파티에도, 아침에 친구와 커피를 마시기에도 적당하게 확장되거나 축소될 수 있었다.” 바닥에서 몇 계단 내려가게 만든 휴게 공간은 손님들이 카펫이 깔린 계단에 앉아 쿠션에 편안하게 기댄 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리넨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는 인디애나 콜럼버스에 있는 제니아와 어윈 밀러의 집에서 이 아이디어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1957년 완공되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집의 장식 없는 하얀 대리석 거실은 움푹 들어간 대화실을 빙 둘러싼 붙박이 소파와 다채로운 색상의 쿠션으로 한층 부드럽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되었다. 사리넨은 1962년, JFK 공항 TWA 터미널의 유선형 콘크리트 지붕 아래에 이와 비슷하게 강렬한 색감의 대화실을 만들었다. 크러시트 벨벳을 씌운 안락한 의자는 여행자들이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편안히 쉬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제격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 당대의 수많은 건축가가 이 유행을 따랐다. 1963년 『타임』의 기사는 “거실 바닥에 널찍하게 움푹 들어간 공간에 대한 세부 설계가 없는 청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라고 조소 섞인 주장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배치의 잠재적 “몰락”을 짓궂게 지적했다. 대화실이 파티에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과 “일종의 지하 토론 모임을 위해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더 진지한 태도”의 손님들을 구분해줄 뿐만 아니라, 경솔한 손님을 그들 사이로 굴러 떨어질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사는 “오늘날에는 대화 공간을 넣자고 주장하는 주택 건축업자들은 없으며, 집에 있는 대화 공간을 불만스러워하는 집주인들을 위한 해결책도 마련되었다. 얼마간의 콘크리트와 바닥재만 있으면 잘 해결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대화실 아이디어는 최근 몇 년 동안 다시 유행했다. 아마도 건축이 디지털 기기 화면에 빼앗긴 가족 구성원의 관심을 다시 서로에게 돌려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그 화면 때문에 대화실의 존재는 다시 불안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서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현대의 대화실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들은 세련된 디자인을 어쩔 수 없이 안전 울타리로 망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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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2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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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킨포크 42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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