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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도 중요하다

메멘토 모리의 섬뜩한 역사


Words by Katie Calautti. Photograph by Gustav Almestål. Styling by Andreas Frienholt.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씨름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 존재감이 큰 만큼 사람들은 메멘토 모리를 통해 그 투쟁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라틴어를 대략적으로 번역했을 때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인 메멘토 모리는 예술, 문학, 철학, 패션, 그리고 건축에서 죽음을 상기시키는 상징물이다. 죽음과 관련된 흔한 상징들―해골, 과일, 꽃, 꺼진 초, 시계―이 삶은 찰나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 쓰였다.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가 밝은 ‘양’이라면 메멘토 모리는 음침한 ‘음’이다.

철학으로서의 이 문구는 고대 로마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들이 거리에서 개선행진을 벌이며 돌아올 때 그 행렬의 뒤를 바짝 따르던 노예들이, 군중의 숭배를 받는 전쟁 영웅들에게 끊임없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속삭였다는 것이다. 흑사병이 13세기 유럽을 휩쓸어버리고, 가톨릭교회에서 연옥에 대한 견해를 굳건히 해감에 따라 메멘토 모리의 신학적인 프레임이 폭넓게 적용됐다. 기독교에서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렌즈를 통해 메멘토 모리의 호소력에 집중해서 현생의 인간의 삶을 사후 세계의 준비 과정으로 격하시켜버렸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세계 무역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며 메멘토 모리의 붐이 일었다. 15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죽음과 부패를 묘사한 상아 묵주, 조각상, 그리고 기타 부적들이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고 부유한 수집가들과 왕족들이 이런 물건을 탐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와 명예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이런 물건들은 값이 아주 비쌌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현실과 진실에서 미를 찾던 예술가들은 모래시계, 파손된 책, 시든 꽃, 부패한 음식을 묘사하는 정물화를 그려 세속적 존재의 덧없는 본질을 강조했다. 그 이후, 해골과 뼈대를 묘사한 빅토리아 시대의 반지는 여왕부터 그녀의 가장 가난한 백성까지 모두가 끼고 다녔다.

오늘날, 메멘토 모리는 패션 브랜드의 해골 프린트부터 <왕좌의 게임>에서 종종 인용되는 “발라 모굴리스”(“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에 이르기까지 집단 무의식 속에 깊이 섞여 들어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을지 모르나 죽음이 우리 모두를 지배한다는 진실은 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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