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획을 세우기에 너무 이른 나이는 몇 살일까요?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삶을 마감하는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네, 18세까진 아이들의 선택에 부모의 책임이 커요. 그러니까 그 시점 이후부터, 특히 자녀들이 대학에 가거나 독립해서 자기 명의의 은행 계좌[반드시 만들어야 해요]를 만들 때부터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저는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한 개념을 청소년기에 심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그들이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아준다기보다는 좀 더 신중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평범한 보통 사람이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해요. 일단 각자 자신의 삶의 마지막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걸 시작으로 그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기 시작할 거예요. 누가 나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줄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생명 유지 장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무엇일까? 저는 이번 코로나19라는 판데믹/전 세계적인 유행병이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어딜 가나 산소 호흡기에 대한 얘기를 하거든요. 나의 시신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생각해야겠죠. 어떤 식의 장례 형태를 원하는가? 어떤 식의 방향 제시도 다 좋아요. 작약 대신 해바라기를 원한다고만 말해도 장례식의 테마가 달라지니까요. 반려동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도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유언장이 있나요, 아니면 신탁이 있나요? 있다면 어디에 두었나요? 사람들은 이런 걸 숨겨두는 경향이 있고 결국 아무도 찾지 못 해요. 나의 모든 자산도 명시해야죠. 내 은행 계좌에 연계된 사람은 누구인지, 은퇴자금 계좌는 어디에 있는지, 생명 보험은 있는지? 핸드폰, 컴퓨터의 비밀번호는 무엇이고, 온라인 뱅킹과 이메일의 비밀번호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종이에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이미 죽음에 대한 교육이 시작됐다고 봐도 좋아요.
만약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당신의 죽음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사람들―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고 당신이 무엇을 원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애써야 해요.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접근인데 사실 우리 문화 자체가 그래요, 그래서 모두가 힘들죠. 우리는 우리가 공동체에 속한 인간이란 것보다 독립적인 인간을 너무 강조하는 면이 있어요.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죽을 거고 우리의 공동체는 당신이 여기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당신의 삶을 정리할 책임을 맡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죽음을 앞당기진 않는다. 죽음은 이미 오고 있다. 그저 죽음이 우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준비를 갖추고 있도록 도울 뿐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