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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k Journal Magazine

자유의 원칙

박물관장 키어런롱(Kieran Long)이 크리스티안(Christian Hallerod)과 룩산드라 할레로드(Ruxandra Hallerod)와 함께 캐비닛메이커와 스웨덴의 건축 기준을 탐험하고 그들의 숲 속의 집을 통해 어떻게 자유롭게 즐거움을 위한 설계를 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스타일링 by Helle Walsted. 사진 by wichmann+bendsten.

키어런롱: 할러우드(Halleroed)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두 사람 커리어가 궁금하다. 두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일에 있어서는 파트너인데.

CH(크리스티안): 스웨덴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웁살라(Uppsala) 외곽에서 자라 노르텔리에(Northelje)로 이사한 후 스톡홀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때 캐비닛메이커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칼 말름스텐(Carl Malmsten) 학교에서 목수와 디자인 과정 교육을 거쳤다. 나는 1998 년에 내 가 만든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만난 것은 2003년이다.

RH(룩산드라): 나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났고 8살 때 부모님과 이곳에 와 한동안 린셰핑(Linköping)에서 살았다 . 우리가 만났을 때, 나는 우리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웨덴왕립공과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내 배경은 예술보다는 공업고등학교에 가까웠다 . 반면 크리스티안은 이미 그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는 사람과 건축, 예술, 가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해 본 많은 스웨덴 건축가들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크리스티안 당신도 그러한지?

CH:  물론 나도 그렇다 . 나는 내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 가구 작업을 더 많이 하던 시절에는 그랬고, 인테리어를 더 많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RH: 보다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5 년이다. 건축학교에서는 인테리어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센델샌드버스(Sandellsandberg)에서 5-6 년간 일했다. 이후 5년 동안 오스카 프로퍼티(Oscar Properties)에서 근무했다.

 

크리스티안, 공예가 백그라운드가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건축가로 정식 교육받은 것과는 다른 방식일 것 같다.

CH: 완전히 다르다. 퀄리티와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생산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늘 갖고 있기 때문에 공예가 배경은 내게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항상 특별히 만든 작품들이 있고, 그게 강점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에겐 다양성이 있다 문 손잡이를 만들기도 하고 집 전체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리테일 프로젝트에서 건축가가 가끔 통제력을 잃거나 참여하지 못하는 여러 단계의 디테일과 가구, 전체적이고 다양한 사항을 통제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리테일 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CH: 클라이언트는 과정과 그들이 짓는 공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깊이가 없고 표면적으로 겉만 짓는 셈이다.

 

아크네나 바이레도 같은 곳에서 당신이 같이 일한 사람들은 멋지고, 매우 높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하게 연결되어 있다.

RH: 한가지는 우리가 이 모든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모두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크리에이티브와 돈을 함께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은 더 쉬워진다.

 

당신과 함께 일했던 그 굉장한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CH: 함께 한 첫번째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바이레도 창립자 벤 고햄(Ben Gorham)을 위한 것이었다.그 첫번째 스토어는 24평방미터 정도로 매우 작았다. 리테일을 보았고, 도시에 새로운 방식의 스토어를 만들기 위해 모든 디테일과 공간 전체를 맡았다. 좋은 출발이 되었고 사람들이스토어를 좋아했다.벤이 정말 관대한 사람이어서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 것도 있다. 지금은 모두가 스토어에서보여 주는 방식에 매우 관심이많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RH: 이제는 독특한 가게를 만들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 일을 벌이고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 붓고있다. 우리만의 미적 특질이 없었다는 게 잘 작용했다고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찾아볼 수도 있는 것들을 좋아하지만, 항상 똑같이 하는 것은아니며, 클라이언트를 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더 신뢰하게 된다. 리테일에서는 그런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 이제 숲속의 집[블리되의 섬 위에서(on the island of Blidö)]로 넘어가 보자. 약간의 백그라운드를 들어보면, 얼마나 오래 작업했나?

RH: 아마 4년 전쯤 땅을 산 것같다. 6개월 뒤부터 설계를 시작했다.

CH:  다른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서 1년은 걸린 것 같다.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거의 3년 동안 부지를 찾고 있었는데, 다도해에서 이곳을 발견했다. 이 숲은 마치 고전적이고 오래된 스웨덴 소나무 같다. 오랜시간 그 곳에 있었던 것처럼.

RH: 상당히 일찍부터 집을 세울 곳을 찾았는데, 그 곳은 숲 한가운데라 특정한 방향이 없었다.우리는집을 그냥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집은 실제 슬로베니아에서 지어지고 현장으로 배송된 후 조립되었다. 집의 두 면에는 숲을 매우 가까이 두었고, 공사 당시 다른 두 면은 조금 훼손되어 현재 조경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높은 박공지붕의 상징적 모양 디자인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RH: 집은 네 방향으로 향해 있다. 이 숲 전체 뷰를 원했고, 집이 숲과 매우 가까워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톡홀름의 스웨덴 건축 및 디자인센터 ArkDes[Josef Frank –Against Design, 2017]에서 열린 요세프 프랭크(Josef Frank)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이 상상 속 집들을 위해 그가 만든 모델을볼 수 있었다. 이 집을 봤을 때 모양이 불규칙해서 설계도가 너무 이상해 보였는데, 직사각형 모양을 한 이 커다란 지붕이 있었다. 불규칙한 용적으로 작업하는 스마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조금은 규칙적으로 보이긴 한다. 내가 사물을 보는 눈이 조금 엄격하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설계도면이다. 침실과 모임 공간이 있는 등의 여전히 꽤 기능적인 현대 스웨덴 여름 별장의 전통방식은 아니다. 회전풍차처럼 생긴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가?

RH: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으로 그것을 사용한다. 때때로 대칭과 더 기념비적인 공간을활용해 작업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우리는 연중 상시 그곳에 있고 싶었고, 다른 기능으로 활성화되는 다른 구역을 만들고자 했다. 각각의 구역이 우리가 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어떤 면에서기능적이다. 식탁에서의 아침 식사로 시작해서 큰 창이 있는 피카(fika) 장소로 이동하며 저녁 식사 전에는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소파에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아주 사교적인 집이다.

 

편안함과 삶의 현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현대 디자인에 매우 비판적이 된 요세프 프랭크를 언급한 게 흥미롭다. 프랭크와 디자인에 대해 그가 한 말에 대해 폭넓게 공감하는가?

RH: 나는 두가지를 모두 생각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어떤 프로젝트들은 느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편안함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프랭크가 참고할 만한 최고의 건축가는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든다.

CH: 아닐지도 모른다. 동감이긴 한데 정말 이상하다.

RH: 아마 그가 스웨덴 사람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난 그가 출신 때문에 스웨덴에서건축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CH: 그럴수도. 하지만 난 그가 만든 가구를 정말 좋아한다.

RH: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급진적이지 않다. 그는 사실 급진적이지만 현대주의적인 방식은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CH: 학교에서는 그의 솜씨가 매우 뛰어나서 그의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끌었다.

RH: 그는 취향 있는 상류층 여성 스벤스크트 텐(Svenskt Tenn)과 매우 긴밀해졌고, 그 후 그것이 평범한 일이 되었다. 특히 건축가들이 다른 것들을 중시하던 시대에말이다.

 

스웨덴에서는 여전히 부유층에게 어필하는 것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긴다. 시구르드 레베렌츠(Sigurd Lewerentz) 대규모 전시회(2021)를 준비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이 항상 부유층 손님들이그의 가구에 관심을 보였고 어필했는데 언론이 그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그는 현대적이지도 기능적이지도 않다는 끔찍한 악평을 받았다. 그것은 부르주아적 취향이었고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급진적인 건축가였다. 집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크리스티안, 생명을 불어넣은 개별 작품에 대해 더 듣고 싶다.

CH: 시골 저택이었고,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학교에 다니던 1994년에 만든 오래된 칼 말름스템(Carl Malmsten) 체어가 있다. 놓을 곳이 없어서 부모님 댁에 두었다. 모던한 공간에 둘 만한아이템은 아니다.

RH: 우리는 그 곳을 별장이나 오두막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게 들리지만 당신이 수집한 모든 좋은 물건들을 버릴 수도 있다. 우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체계적이었지만 여기서는 좀더 직관적이고 싶었다.

 

고급스럽고 아름답지만 항상 최상의 순간을 느낄 수는 없는 여름 별장의 품격을 지닌 것 같다.

CH: 정확하다.

RH: 난 루마니아 물건들을 넣으려고 했다. 드디어 벽에 세라믹 접시를 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CH: 덜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넣는 것에가깝다.

 

‘더 많은 것’이라면 무엇을 뜻하는가?

RH: 크리스티안의 어머니가 어릴 때 사용하시던 월러그 같이 부드러운 아이템이다.보면 예쁘다는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집에 두면 정말 멋지다.

CH: 히스토리가 있으면 그건 더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다. 루이지 카챠도 미니오니(Luigi Caccia Dominioni)의 미니 암체어는 우리가 항상 좋아하던 아이템이었고, 어딘가에 사용하고 싶었다.

RH: 벽난로 앞에 두도록 디자인했다. 매우 작아서 들 수도 있고 한쪽으로 치워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나 카챠 도미니오니는 특정 시대에 살고 있으며 스웨덴 전통의 많은 디자이너처럼 순수 기능주의자는 아닐지 모른다. 레베렌츠도 마찬가지다. 그는 많은 동료들과는 달리 기능주의 스타일의 순수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RH: 지난 4, 5년 동안 우리는 프랑스 에이전시를 운영했고 그들과 세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해외 고객과 일해 보면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 당신이 매우 스웨덴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프랑스에서 일하려고 해보았지만, 정말이지 잘 되지않았다.

 

왜인가?

RH: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CH: 우리는 너무 미니멀리스트다.

RH: 우리는 “이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물건이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 그건 그들에게 텅 비어 있는것과 같다. 우리가 “하지만 다른 것은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그들은 여전히 “그래도 이건 너무 텅 비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집에서 절충을 하는 과정이었다.

CH: 그런 인테리어를 우리는 좋아한다.

RH: 하지만 당신이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연습이 필요하다.적어도 내 경우에는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모든 것이 엄격해야 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프로젝트에서 시도하기 전에 집에서 시도해 볼 수있는 것들, 좀 더 절충적이거나 기능적, 또는 미적으로 엄격한 것들을 해 볼 수있다.

 

아마도 이 질문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레베렌츠에 관한 내 생각에 관한 것이다.전개되고 있는 논쟁 중 하나는 그가 기능론자의 관심사가 아닌 즐거운 삶, 쇼핑의 삶, 선의 삶을 대표한다는 것이다.당신의 여름 별장을 보면, 많은 즐거움이 있고 인테리어는 호화롭다. 즐거움을 위한 장소를 설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스웨덴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인가?

RH: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미국이나 프랑스 출신, 또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클라이언트들이 즐거움을 요구하고 심지어 별도 예산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즐거움을 다루는 데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비싸야 할 필요는없지만, 비쌀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즐거움과 럭셔리함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해야하는 리테일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축물과 디테일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고, 디자인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까지도 이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체계적이었지만 여기서는 좀 더 직관적이고 싶었다.

 

지붕이 있는 테라스는 실내 공간과 거의 비슷해 겨울철에는 햇빛과 그늘을 제공하고 때때로 날씨가 험악한 스웨덴의 여름을 보내기에 완벽하다.

룩산드라와 크리스티안 할레로드가 디자인한 이 집은 슬로베니아에서지어진 후 시트 또는 보드 상태로 배송되어 현장에서조립되었다. 100% 천연자재를 사용한 이 구조물은 100밀리미터 두께의 CLT(Cross Laminated Timber) 가문비나무와 목재 섬유 절연재를 사용하고 방부처리하지 않은 삼나무로 외부패널과기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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