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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제러드 & 켈리

춤, 가정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거인들에 관하여
글 by Charles Shafaieh. 사진 by Adrien Dirand.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부터 미스 반데어로에의 에디스 판스워스 하우스까지, 상징적인 모더니즘 주택의 상당수는 이제 미국의 예술가 제러드 & 켈리가 “폐허”라고 부를 만한 상태가 되었다.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고 종종 이상향을 추구하는 그러한 집들은 잊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되며, 비어 있거나 미술관으로 변형되어 방문객들을 화석화된 내부로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듀오인 브레넌 제러드와 라이언 켈리가 계속 진행하고 있는 영화·퍼포먼스 프로젝트 「모던 리빙(Modern Living)」에서 그들은 이러한 구조물들을 움직임, 단어, 음악의 풍부하고 재치와 에너지가 넘치는 융합을 통해 되살린다.1

그들의 가장 최근 영화인 「밝은 시간(Bright Hours)」에서 그들은 르코르뷔지에의 실험적인 마르세유 주거 단지인 시테 라디우스를 그가 무용수이자 배우인 조세핀 베이커와 데이트를 하던 대서양횡단 여객선으로 변모시킨다. 배우 잔 발리바르는 건축가를 연기하며 모스 섬니의 음악에 즐겁게 춤을 춘다. 이 유쾌한 작품이 말해주듯 제러드 & 켈리는 모더니즘 프로젝트에 대한 단순한 오마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러한 기이한 현장에 내재된 성, 인종, 윤리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건축이 만들거나 금지하는 친밀감과 관계를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CHARLES SHAFAIEH: 왜 당신들의 확장된 프로젝트의 이름이 「모던 리빙」인가?

RYAN KELLY: 움직임과 춤에 중점을 두고 우리는 두 주택의 형태를 보며 한계, 가능성, 일탈, 규범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의 아방가르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폭넓은 사고와 유토피아적 욕구의 측면에서 현대적 순간은 너무나 피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던 리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현대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관계에 관한 것이며, 그러한 관계가 우리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BRENNAN GERARD: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두 부부가 코뮌(이익과 재산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옮긴이)으로 살기 위해 웨스트 할리우드에 지은 쉰들러 하우스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이 현대화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으며 그러한 관계가 실현될 새로운 공간을 필요로 했다는 시각에 주목했다. 이것이 “리빙(살아 있는)”의 의미이다.

CS: 이러한 특정한 집들이, 또는 어떤 집이든 특정한 친밀감과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BG: 술집, 화장실, 공원과 같은 일부 공공장소를 퀴어들이 차지하는 것과 같다. 퀴어로 살려면 집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듯이 집은 퀴어 생활과 주관성이 금기시되는 곳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집이 퀴어 자녀가 만들어지는 장소였던 대안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역사에 대해 생각했으며, 우리는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종종 원형적인 퀴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고객이 없었고 아무도 그들의 작업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집을 먼저 지어야 했던 것이다.

RK: 쉰들러 하우스는 그들에게 자녀가 생기면서 [코뮌으로서] 붕괴했지만 어떻게 보면 여전히 살기 좋은 공간으로 보인다. 글라스 하우스는 남성 게이 커플이 살았던 곳이지만 우리에게 더욱 복잡한 대상이었다. 투명한 집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폐쇄성의 망령이 짙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특점 시점에 그러한 폐쇄적인 문화가 어떻게 보면 더욱 생산적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려고 했다. 에디스 판스워스 하우스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어서 언론은 에디스 판스워스를 일종의 공산주의자로 규정할 정도였다. 의사이며 시인인 50대 여성이 홀로 벽면이 모두 유리인 집에 살기로 선택한 이유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코르뷔지에와 조세핀 베이커의 관계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따라서 유색인종의 여성, 무용수이며 미국인인 베이커가 르코르뷔지에의 세계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 추측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피카소와 다른 모더니스트들과 그녀를 나란히 두고 생각하는 일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CS: 이러한 공간에 성애를 다시 불어넣으려는 것인가?

RK: 지금 내 귀에는 리한나의 노래 가사 “우리는 절망적인 곳에서 사랑을 찾았지”가 들려오는데, 이것이 우리의 의도일 때가 있다! 발명과 혁신은 욕망에서 나온다.

BG: 성(性)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이성애 규범성에 의해 가정의 영역에 국한되어 왔다. 공연을 하며 우리는 한때 사적이었던 공간을 택한 후 관객을 내부로 불러들여 그것을 공개 장소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공연자들이 손에 닿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CS: 이 프로젝트는 당신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집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RK: 브레넌과 내가 살았던 집들,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연애 감정을 가진 파트너에서 연애가 끝난 파트너로 어떻게 진화하고 변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일하는 방법, 우리의 우정과 파트너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집으로 기능하고 전형적이지 않은 것이 확실한 관계를 지지해줄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찾고 있다. 즉 우리의 관계는 생식력은 없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산적이고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친밀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관계를 통해 단기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많은 인물이 스쳐갔다. 만약 세상이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가 「모던 리빙」을 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CS: 당신들이 예술을 통해 탐구하는 주제들이 어떻게 삶에서 드러나는지 의식하고 있는가?

RK: 사람들은 우리에게 “창의력이 어디에서 나오나요? 가족?”이라고 물으면 나는 항상 “아뇨.”라고 말한다. 우리는 2세대째 농부와 광부 집안이다. 할머니가 98세에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이탈리아에 있는 할머니의 형제자매에 대한 이야기, 할머니의 열세 가족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농담을 주고받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아, 바로 그거야. 사람들은 한 공간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움직이고 서로를 웃게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기본이 되었고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곳에 어떠한 뿌리가 있음을 느낀다.

CS: 「모던 리빙」은 건물들과 건축가들을 그들의 과거가 어떠하든 ‘캔슬(논란을 일으킨 인물을 저격하거나 소셜미디어 팔로우를 취소하는 행위-옮긴이)’하려는 요구를 분명 거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필립 존슨의 파시스트적 시각은 이제 사실상 금기시되고 있다.

RK: 우리는 역사를 믿는다. 필립 존슨과 반데어로에는 분명 사랑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은 생산적일 수 있다. 우리가 역사의 혼란과 폭력과 거리를 두고 걷는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정체성 정치와 캔슬 문화를 앞세운 채로 단지 모래 위에 선을 긋고 세상을 다시 만들고자 한다면 곧 우리는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를 다시 서술하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BG: 「밝은 시간」에서 잔 발리바르는 르코르뷔지에를 연기한다. 우리는 그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말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현재의 순간을 위해 역사적 오브제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유적들을 보전하다 보면 유적이 생명력을 잃고 독특함이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이질적임을 인정하고 과거 건물들의 기이함을 보전하는 것이 윤리적인 접근법이다. 우리는 공연과 영화를 대안적 형태의 대표성이자 보전이라고 본다. 글라스 하우스와 시테 라디우스에서 다름의 급진성을 주장하는 방법으로서 이러한 사회적 실험들의 급진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이다. 이러한 모르는 상태에서의 급진성은 알기 위해 분류하는 계몽주의 프로젝트와 다르다.

(1)
제러드 & 켈리는 종종 중요한 건물이나 조각품 주변에서 춤 공연을 위한 안무를 선보인다. 2018년 그들은 솔란지 놀스와 함께 놀스가 디자인한 독특한 흰색 정육면체 작품 주변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메타트로니아(메타트론의 큐브)」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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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 켈리는 종종 중요한 건물이나 조각품 주변에서 춤 공연을 위한 안무를 선보인다. 2018년 그들은 솔란지 놀스와 함께 놀스가 디자인한 독특한 흰색 정육면체 작품 주변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메타트로니아(메타트론의 큐브)」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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