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프로젝트들에서 페리앙은 목재로 많은 실험을 했다. 자기가 쓸 식탁과 『스수아Ce Soir』의 편집장이 의뢰한 책상을 만들 때는 공예가이자 “진정한 나무 애호가”인 장 슈타유와 함께 오래된 가구를 재활용한 두꺼운 판을 활용했다. 모서리는 둥글게 갈고 표면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매끈하게 문지르기만 했다. 그리고 “자유로운 형태의 테이블”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가구들은 “공간을 장악하고” 대화와 협동을 위한 생산적인 공간을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쟁 중에는 일본과 인도차이나반도에, 그 뒤로는 브라질에 살면서 대나무, 곡면 합판, 열대 목재로 만든 주택 설비를 개발했다. 그리고 각 소재에서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뽑아내어 “디자인은 소재와 그 활용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소재, 최소한의 주택, 가구를 통한 공간 장악력에 대한 연구, 그리고 산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앙드레 투르농이라는 기술자와 함께 작업한 작지만 중요한 프로젝트, 높은 산속, 극한의 환경에 지은 산장에 모두 녹아들었다. 두 사람은 원통형 외부 프레임과 조립식 알루미늄 외장 패널, 그리고 붙박이 합판 가구를 활용했다. 니스를 칠하지 않은 목재 내부 벽은 사람들의 몸과 젖은 장비의 습기를 흡수했다가 다시 내뿜을 것이었다. 지극히 작은 공간(4미터×2미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이 장비를 넉넉하게 보관하고, 대화를 나누고, 요리를 하고, 밖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페리앙과 친구들은 이 산장을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한 뒤 몽블랑을 마주하고 있는 산마루에 설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페리앙은 메리벨 레잘뤼Meribel Les Allues와 레자르크Les Arcs의 고산지대 리조트를 위한 좀 더 규모 있는 실내 건축설계에 주로 힘을 쏟았다. 메리벨에서는 “재료의 부족함이 나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근처의 샬레(*스위스 산간 지방의 지붕이 뾰족한 목조 주택), 그 지역 목수가 만든 둔탁한 가구, 그리고 편안하지만 이젠 비어 있는 일본의 집에 대한 기억도 모두 상상력에 기여했다. 맥레오드는 자유로운 형태의 테이블, 소나무와 골풀로 만든 의자와 침대, 그리고 붙박이 수납장이 있는 그 산장을 “평온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고 호평했다. 1967년부터 20년간 페리앙은 레자크에 4만 개의 침대가 들어가는 거대한 리조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친구 장 프로베를 포함한 그녀의 팀은 이 프로젝트를 “건축의 실험실”이라 생각했다. 이들의 목표는 사람과 눈과 산이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좁은 공간에 들어갈 인테리어 설비를 광범위하게 실험했다. 대량생산된 욕실들, 통합적 수납공간, 책상과 침대, 그리고 자유로운 형태의 테이블까지. 페리앙은 수수한 방 하나하나가 손님들을 위한 편안한 안식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일상의 걱정거리들을 잠시 뒤로하고, 저 멀리 알프스의 얼음 뒤덮인 산등성이들과 그 너머 짙은 파란 하늘의 무한함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반생 이전에 젊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