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라이에게 그녀의 삶에 한 획을 그은 영화를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인지 묻자, 그녀는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영화 시사회를 마치면 그 영화를 절대 다시 보지 않아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크라이테리온 발매를 위해) 유튜브에서 몇 작품 본 것 같긴 하지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이걸 해내다니 하면서 감탄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녀가 해냈다고 한 것 중에는 6살짜리 남자아이가 중년 여성과 온라인 채팅으로 섹스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과 10대 여학생 둘이 이웃집 아저씨와 성적인 추파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가끔 누군가 날더러 소아성애자나 뭐 그런 변태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러면 나는 ‘맞아,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성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테고, 당연히 불편해지겠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있고요. 한편으로, 그때 내가 어리기도 했어요. 나는 늦게 어른이 된 편이거든요. 그리고 당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글을 썼죠. 소녀, 꼬마 아이의 이야기에요. 나 자신을 닮은 캐릭터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다른 인물들의 경우는 막연히 어른이라면 이렇겠지 생각한 것을 느슨하게 표현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고 몇 년 동안, 적어도 줄라이가 연기한 역할의 위력 덕분에 그녀는 영화 속 크리스틴의 팬들의 마음 속에 크리스틴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크리스틴은 재능있고 창의적이며, 독특하고 자유분방하며, 감정적으로 연약하다.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안아줄까요?’ 물을 때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연기를 잘했구나 느껴요. 그 캐릭터에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게 하는 무언가 있었나 보다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입을 모아 말할 거예요. 아니! 얘는 절대로 당신과 포옹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포옹을 원하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줄라이의 많은 작품이 우리가 얼마나 타인과의 관계를 원하며 얼마나 잘 맺지 못하는지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내용을 탐색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녀의 모노그래프에서 다룬 대부분 작품에 담긴 주제이다. 줄라이는 노트와 일기를 훑어보고 지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분류하는 일을 벽장을 정리하는 것에 비유한다. 곤도 마리에 같은 정리 전문가가 추천할 만한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는 정리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자의식을 버리고, 내가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리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아마 많은 예술가나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자극하지 않는 일을 할 겁니다.”
줄라이가 눈을 감았다. 위아래로 붉은 옷을 입고 사진작가 앞에 서서 손으로 멋진 동작을 펼쳐 보인다. 프린스 (<1999>)에 이어 두아 리파(<Don’t Start Now>)가 흐른다. 휴식 시간 동안 세트에서 나와 모니터에서 촬영분을 살펴본다. 그녀는 요청하기만 하면 이 세트에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카메라 앞과 밖을 오갔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는 법을 배웠다. 실제로 새 모노그래프를 계획하던 초기에 줄라이는 자신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 역시 작가로서의 오랜 경력이 있으니 다른 누구보다 책에 관련한 프로젝트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하게 두기로 했다. 모노그래프에서 다루어진 각 프로젝트는 친구들과 협업한 동료들의 회고가 수반된다. 식료품점에서 연고 네오스포린을 훔치다 걸리자 겁에 질린 나머지 바닥에 오줌을 쌌다던가 (현 에머슨 컬리지 공연예술과 조교수 린제이 비미쉬), 포틀랜드의 젊은 예술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했던 일에 대한 일화 등 그들이 줄라이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다. “내가 삼켜버렸거나 뭐 그런 흥미로운 일들이 더 있어요. 뭐, 세상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아요.”
한편, 줄라이는 카조니어를 본 사람들의 반응에 흥미를 보인다. 모든 가족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옮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대체로 돈에 대해 걱정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을 모델로 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나는 이 영화가 나와 내 가족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대본 초고를 다 썼어요.” 그녀는 이 영화의 주제인 부모의 역할과 양육이 어느 정도는 자신이 느꼈던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기인했다고 인정한다. 많은 면에서 그녀의 영화는 극단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일상생활을 위한 연습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고양이가 죽는다는 데 대해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화를 내고 있지만 말이죠.”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언급한 영화는 2011년에 개봉한 장편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The Future)>인데, 줄라이는 다친, 말할 수 있는 고양이 ‘포포’의 내레이션과 그를 입양하려는 30대 여성을 동시에 연기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포포는 죽지만, 줄라이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생각해요. 그래, 현실은 끔찍하지만, 내 아이는 아직 살아있어. 나는 내 예술에서 어둠을 완벽히 구현하고, 현실에서는 표현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