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맘 편히 발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는
집에서 자랐다. 인스타그램 속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첫 2년은 의류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치자 자연스레 가정용품 컬렉션으로 넘어갔다. 이 컬렉션의 상품이 챔버스의 다른 소장품 사이에 당당히 놓여 있다. 그녀의 모로코풍 쿠션에는 이제 〈콜빌〉 모포가 덮여 있다. 그녀의 미적 감각에는 분명 타고난 자신감이 담겨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녀가 설명한다.
이토록 쉽게 균형을 찾는 비결은 편안함이라고 챔버스는 설명한다. “옷에서도 집에서도 편안함이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다.” 선반과 벽난로 위에는 도자기와 유리 제품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주방 벽은 글자와 그림으로 덮여 있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 하나를 집어 들어도 정교한 진열 상태가 흐트러지는 것은 아니다. 찻잔들은 컵 받침 하나 없이 테이블 위에 쪼르르 놓여 있다. “나는 편히 쉴 수 있는 집에서 자랐다. 소파에 널브러진 채 발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한다. “구석구석 포토존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장식된, 인스타그램 속 인테리어와는 전혀 달랐다.”
어린 시절 챔버스는 자주 이사를 다녔다. 어머니가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되파는 사업을 했기에, 챔버스와 남동생은 런던 서부의 수리 중인 집 여러 채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다. 항상 <해롯백화점>과 브롬턴 오라토리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정 범위 안에서만 이사를 다녔다.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않듯이.” 챔버스의 어머니는 항상 잼을 만들고 교복을 수선하는 등 부업을 하다가 50대 후반에 미대를 다닌 후에는 제본 기술자가 되었고 마블링 기법과 장식용 종이에 관한 책 10권을 템즈 앤 허드슨 출판사에서 펴냈다. 그런 모습은 챔버스에게 뭐든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어머니는 어떤 일이든 소매를 걷어붙이고 손수 해결했다.” 그녀가 말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챔버스는 자신이 이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늘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벽을 무너뜨리고 계단의 위치를 바꾸던 어머니와는 달리 그녀는 집의 구조를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젊음의 상징인 지칠 줄 모르는 창의력은 여전하다. 벽은 칠하고 또 칠했다. 포토벨로 시장과 프랑스 집 근처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가구를 이 방 저 방으로 옮겨가며 배치한다. 촬영을 위해 전 세계를 돌며 ‘까치처럼’ 수집한 장식품들은 벽난로 위에 진열하거나 문손잡이에 매달았다.
“몸이건 집이건 결국 꾸며야 한다.” 그녀가 말한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기분도 좋아지게 한다.”
몇 년 전 생일에 챔버스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전문가의 그림 배치 서비스를 받았다. 그녀의 그림과 사진 컬렉션(에드워드 웨스턴, 르네 뷔리, 말리크 시디베, 그리고 실라 메츠너, 마리오 테스티노 등 과거에 협업한 아티스트)이 특이한 회갈색 층계의 벽에 패치워크를 이루었다.¹ 창의적이고 충동적인 챔버스다운 행동이다. 그녀의 이웃들은 정기적으로 집을 갈아엎고, 지하실과 별채를 만들어 매도하지만 챔버스는 살아 있는 존재인 듯 서서히 노화하는 집과 일종의 공생 관계를 맺는 것에 대체로 만족한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절대 한꺼번에 뜯어고치지 않는다. 여기저기 손대는 것이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