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 Interiors

홈 투어:
로즈 유니애크

Pimlico에 있는 우아한 궁전.
글 by George Upton. 사진 by Christian Møller Andersen.

로즈 유니애크는 흰색 벽토를 바른 집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고, 정원을 깔끔하게 가꾸는 것으로 유명한 웨스트런던의 조용한 지역에 살고 있다. 런던 하면 떠오르는 이 전형적인 풍경은 1990년대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덕분에 불멸의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가, 유니애크의 집에 이르러 급작스러운 장애에 부딪힌다. 그녀의 집이 창이 엄청나게 크고 반듯함과는 거리가 먼 줄무늬의 벽돌 집이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상류사회 인사였던 초상화가 제임스 래니 스윈튼을 위해 1860년에 지어진 이래로, 이 집은 광장의 코너에서 변함없이 꼿꼿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분이 워낙 인맥이 탄탄해서 지역의 계획 규제를 무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유니애크는 말한다. 그녀는 15년 전에 가족과 함께 이 집으로 옮겨왔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근처에 있는 매장에서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 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렇게 질서정연한 광장이 조성되고 있는 때에 여기에 이런 집을 짓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러나 그런 식의 유별난 예술적 시도가 깃든 이 집의 감각이 유니애크의 흥미를 끌었다. 당대의 건축가 조지 모건은 스윈튼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채광을 위해 북쪽으로 광대한 창을 냈고, 덕분에 한때 이 집은 작가가 새로운 고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정교한 유리 돔 형태의 화랑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스윈튼 사후에, 이 집의 새 주인은 또 다른 아티스트 판화가인 이안 맥넙이 되었다. 그는 건물에 진보적인 그로브너 현대 미술 학교를 설립했으며, 1940년에 학교가 문을 닫은 후부터는 이따금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으로 사용돼왔다.

“아주 무미건조한 시설 같은 느낌이었어요.” 유니애크가 거의 20년 전 이 집을 처음 보았을 때를 회상했다. 섬세한 회반죽 칠 위로 두꺼운 흰색 페인트가 겹겹이 칠해져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런던 폭격으로 손상된 화랑의 돔 유리는 70년대의 흉물스러운 채광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 마법 같은 게 있더라고요.”라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그것과는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이 집은 네 명의 아이와 아기까지 있는 유니애크가 런던에서 찾아 헤매던 방과 바닥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을 집으로 복원하는 것은 길고 복잡한 과정이 될 것이었다. 원래 시대의 특징을 조심스럽게 회복시키면서 개조해야 했다. 가족이 이사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오늘날 이 집은 유니애크의 박식함을 바탕으로 본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 집 자체가 그녀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로 손꼽히며, 2021년에 <리졸리>에서 모노그래프를 주제로 하여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유니애크가 자신에게만 의뢰를 하는 비공개의 고객 목록을 소유한(그녀는 신중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유수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것도 결국 이 집 덕분이다. 그녀의 작업 방식은 가구 복원을 했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다. “살던 곳의 길 끝에, 가구 복원 작업장이 있었어요.” 그때가 1980년대 말이었고, 그녀는 마침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철학과를 졸업한 참이었다. “다행히, 아주 품격 있는 작업이더라고요.”

그곳에서 페인트와 래커를 전문가 수준으로 트레이닝한 후, 유니애크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남편인 금융인 로비 유니애크와 함께 프랑스로 옮겨갔다. “늘상 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앤틱과 오래된 직물을 찾았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런던에서 앤틱 상점을 하는 어머니께 가구를 돌려보내기 시작했죠.”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일하며 상점의 스타일링을 도왔다. 어느 날, 상점을 찾아온 고객이 집을 디자인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냉큼 ‘좋아요. 원하신다면.’이라고 대답하고는 디자인 실습에 돌입했죠.”

유니애크는 늘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며, 덕분에 접근법 자체가 다면적이다. 그녀가 ‘맥시멀리스트적으로 전면 컬러에 전면 패턴으로 뒤덮는 프로젝트’를 작업하고 있든, 향수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조 말론>의 런던 본사 작업을 하고 있든, (혹은 실제로 데이비드와 빅토리아 베컴의 런던 집을 작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매번 실험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들어가 머물고 싶은 방이 되게 하는 건 어떤 요소일까 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온다면 왜 그럴까요? 공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려면 뭘 해야 할까요?”

유니애크의 집을 보면, 그녀의 이런 호기심이 고급 자재 사용과,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는 형태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건물 자체와 그녀가 들여놓은 사물에서도 고결성이 배어나온다. 예를 들면, 페인트를 벗겨내고 중간중간 덧입힌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 뒤에야 각 방의 기능이나 미학적 접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다 벗겨내고 나니 꼭 베네치아 궁전 같더라고요.” 그녀가 설명한다. “이런 유쾌함과 수도원의 단순성, 기능을 결합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흥미로운 조합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니애크에게 영감을 준 베네치아 궁전 스타일은 문 위쪽의 문틀 같은 세부 디자인에서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서, 유니애크는 벽 속에 파묻혀 있던 원래 돌계단의 일부를 발견하여 인상적인 캔틸레버형의 계단을 복원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겨울 정원이 된 곳에서는 원래의 서까래가 온전하게 발견되었고, 이것 역시 철사로 된 붓으로 조심스럽게 복원되었다. 방의 배치를 다시 정할 때는 벨기에의 유명한 건축가 빈센트 반두이센(46쪽 인터뷰)의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이 컬래버레이션한 결과 평면도가 단순하게 바뀌었다. 분할되어 있던 커다란 방들을 원래대로 되돌렸고, 방들 사이의 입구 공간을 다시 열었으며, 극적인 열린 공간과의 사이에 뜸을 두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응접실을 만들었다.

촉감을 강조하며 편안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반두이센의 영향을 받은 것은 18세기와 19세기에 파묻혀 있던 오크 재질의 바닥을 드러내고, 난간을 칠하지 않은 것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치장 벽토 역시 흰 도료의 일종인 디스템퍼로 덧입혀, 얇은 층이 점차 쌓이면서 원래 벽토의 질감이 훼손되지 않게 했다.

“어디에 내놔도 책임질 수 있게 복원하는 게 중요했어요.”라고 유니애크는 말한다. “창문틀에서부터 문짝 하나까지 모든 디테일이 적절해야 하는 거죠. 뼛속부터 옳다는 확신이 들어야 해요. 그때부터는 집을 21세기에 맞게 변신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돼요. 이를테면 나는 각각의 방에 딱 한 가지 색만 썼는데, 천장 돌림띠나 다른 벽토 작업이 새삼스럽게 두드러지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이는 유니애크가 건물의 규모와 웅장함을 인정하면서도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취한 많은 조치 중 하나였다(심지어 1층의 천장 높이가 10피트다).1 “천장을 실제보다 훨씬 낮은 것처럼 다루었어요.” 유니애크는 그동안 남편(<해리 포터> 영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헤이먼이다)과 함께 수집한 상당한 수준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어떤 식으로 벽에 걸지를 정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가구 역시 그녀의 배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되듯이,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편안하고 만만한 18세기, 19세기 영국 작품뿐 아니라 20세기의 프랑스 조명에서부터 카레 클린트나 폴 헤닝센 등의 작품인 현대 스칸디나비아 가구들까지 골고루 들여놓았다. “시간을 들여서 모은 것이라는 티가 나게 가구를 배치해요.” 그녀가 말한다. “오랫동안 집에서 쓰던 식탁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죠. 여행에서 사 올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정말로 시기와 날짜, 스타일이 섞여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성공한 앤틱 딜러라면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 것은, 어쩌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일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윌트셔의 폰트힐 수도원에 두기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나무 벤치다. 이 벤치야말로 유니애크가 집을 꾸미기 위해 취해온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접근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면 인상적인 벽돌과 겨울 정원의 무성한 식물에 정신을 빼앗길 수도 있겠지만, 이내 정교하게 조각된 이 벤치의 등받이나 팔걸이한 세기 반 넘게 사용하면서 길이 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집과 마찬가지로 이 벤치도 1860년에 제작되었다. “실용적이고 단순하면서 수도원의 분위기가 풍기죠.” 그녀가 말한다. “그런데도 유쾌하고 장난스러워요. 작게 보면, 여기엔 내가 이 집에서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이 구현되어 있어요.”

정교한 의자 등받이는 유니애크가 앤틱에 대해 날카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예다.

(1) 유니애크는 제임스 래니 스윈튼에게 집의 천장을 높게 지어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회의 저명인사였으며, 집을 짓도록 의뢰한 이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최대한 빛나 보일 수 있는 집을 원했다. 결국 그의 집은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와 갤러리, 거주지를 하나로 결합한 런던 최초의 공간이 되었다.

K43_Cover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정교한 의자 등받이는 유니애크가 앤틱에 대해 날카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예다.

(1) 유니애크는 제임스 래니 스윈튼에게 집의 천장을 높게 지어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회의 저명인사였으며, 집을 짓도록 의뢰한 이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최대한 빛나 보일 수 있는 집을 원했다. 결국 그의 집은 아티스트의 스튜디오와 갤러리, 거주지를 하나로 결합한 런던 최초의 공간이 되었다.

K43_Cover
이 기사는 킨포크 43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구입하기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