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 Interiors

아를의 집.

알라르의 집 입구에 사이 톰블리의 『로만 노트Roman Notes』와 피라네지Piranesi의 석판화가 걸려 있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남의 집 사진을 찍으며 명성을 쌓았다. 이제 그의 렌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글 by Daphnée Denis. 사진 by François Halard.

주로 머무르는 집이 아니기에 유명 인테리어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는 아를에 있는 자신의 집을 ‘꾸미기용 건물’로 여긴다. 약 30년 전 호텔 <파르티큘리에>를 처음 본 순간 그는 사랑에 빠졌다. 프랑스에서 ‘가장 로마 같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웅장한 18세기 주택의 지중해 감성은 그에게 추상 표현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의 유명한 이탈리아 저택을 연상시켰다. 아를에 있는 알라르의 아름다운 집은 톰블리의 마음을 돌려 알라르의 렌즈 앞에 자신의 집을 개방하게 한 구실이 되기도 했다.

“톰블리를 찾아갔지만 그는 집에서 사진을 찍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라르가 회상한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내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예술품이 톰블리의 작품이어서 그를 만나고 싶었을 뿐이며, 그의 집 사진을 보고 비슷한 분위기의 집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집의 사진을 보고 싶다고 했고, 그것을 본 다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틀간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아.’ 내 집을 직접 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할 거다.”

알라르의 아를 자택 입구는 톰블리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제는 이 예술가에게 헌정한 제단 같은 곳이 되었다. “나는 2천년 된 물건에서 영감을 얻어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그의 솜씨에 매료되었다.” 이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원형 경기장으로 유명한 옛 로마의 지방행정 중심지인 아를도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중해의 분지는 문명이 탄생한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이 집을 꾸밀 때도 그 사실을 늘 염두에 두었다.”

알라르는 한평생 톰블리, 루이즈 부르주아, 로버트 라우센버그 같은 예술가들의 은밀한 집 내부를 상세히 포착하고 집주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일생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자신의 집은 별로 촬영하지 않았다. 주로 뉴욕에 거주하는 그와 아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봉쇄되자 아를에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격리 생활을 사진에 담아 달라는 『뉴욕 타임스』의 요구와 큐레이터이자 출판인인 친구 오스카 험프리스의 설득 끝에 그는 결국 자신의 집으로 렌즈를 돌렸다. 현상실에 가서 아날로그 필름을 현상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그는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하지 않는다) 알라르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자신의 집을 재발견하기로 했다.¹ “여러 공간을 이동하는 빛을 관찰하기 위해 나도 오랜 시간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가 설명한다. “일을 하기 위해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비로소 주변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 의뢰받은 작업과 달리 이 프로젝트에서는 작업 조건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 자체는 다른 예술가의 집을 촬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알라르는 말한다. “내 집의 인테리어라 해도 카메라가 끼어들면 나와 피사체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나의 관심사는 필름 자체의 감성과 더불어, 나의 역사와 내가 촬영하는 대상을 향한 나의 감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평생 여행을 다니며 손에 넣은 장식품과 공예품으로 각 방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라르는 물건과 대화를 나누듯 모든 소유물을 가장 어울리는 자리에 세심하게 배치한다. 아프리카의 가면, 조각상, 사진, 더 이상 꽂을 데가 없는 책들이 박물관 전시물처럼 진열되어 있다. 안방 벽난로 선반에는 브라사이Brassai가 찍은 피카소의 손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몇 년 전에 구한 엽서이고 다른 하나는 알라르가 나중에 손에 넣은 대형 사진이다. “나는 파편을 좋아한다.” 그가 설명한다. “파편을 모으는 것도 좋아한다. 크메르 불상 머리와 아내에게 선물 받은 호쿠사이의 목판화를 대리석으로 만든 인간 주먹과 함께 둔다. 마치 인간의 부서진 신체 부위를 모아둔 것 같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3층 집은 알라르가 ‘내가 만든 가족의 집’이라 생각하는 곳으로 서서히 성장했다. 처음에 그는 주방과 욕실만 개조해놓고 철거 중인 방 한가운데에 야전 침대 하나만 두고 지냈다고 회상한다. 보수 공사는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에 창문 수리를 끝냈다. 창문 일부는 루이 15세나 프랑스혁명 이후로 교체한 적이 없어서… 꽤 망가진 상태였다.” 시간은 빈 공간에 추억과 의미를 채워 넣었다. 이제는 집이 자신의 동반자처럼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가족과 추억을 나누면 신뢰가 쌓인다. 내 집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이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 같다.”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