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 장바구니에 상품이 없습니다.
cart chevron-down close-disc
:
Browse Categories
  • Interiors

홈 투어:
아르코산티

공상과학적인 집, 지중해식 마을, 유토피아적인 생태계: 팀 호냑이 애리조나 사막의 실험적인 공동체를 들여다본다.


Photography by Justin Chung.

“사막에서는 발견자가 된다.” 레바논계 미국인 작가 아민 리하니는 이렇게 썼다. 그는 영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사막의 힘을 암시했지만, 사막은 다른 변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애리조나 소노란 사막에 자리한 아르코산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재구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20년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이런 과감한 시도가 50년째 되는 해이다.

아르코산티는 피닉스 북쪽으로 96km 떨어진 외딴 메사에 건설된 기발한 구조물들의 집합체이다. 이곳의 구조물은 모듈형 블럭 유닛, 로마네스크 양식의 하프돔과 아래의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둥근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건조된 콘크리트 지역에서 원형과 반원형의 모티브가 반복된 광경이 어떤 각도에서 보면 마치 007 영화 속 악당들의 은신처 같지만 (실제로 1988년 SF영화 <나이트폴>의 촬영지였다.), 전체적으로는 현대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지중해 언덕 마을을 더 닮았다. 이러한 특징은 1970년 아르코산티를 건립한 이탈리아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가 남긴 유산의 일부이다. 그는 친환경의 원칙에 입각해 최대한 땅과 자원을 아껴 정착지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건축과 생태학을 결합한 개념인 아르콜로지(Arcology)에 따라 이 마을을 구상했다.

1919년 투린에서 태어난 솔레리는 194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스콧츠데일의 탈리신 웨스트에서 18개월 동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견습생으로 일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미국 남서부에 있으며, 아르코산티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생전 구겐하임 재단부터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이르는 다양한 조직으로부터 수많은 상과 회원 자격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의 건축 평론가 에이다 루이스 헉스터블은 그의 철학과 환경 인식을 칭송하며 솔레리를 “사막의 예언자”라고 표현했다.

2013년 사망 당시 그는 널리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4년 뒤 딸 다니엘라 솔레리가 성추행과 강간 미수로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모든 인간의 노력은 몇몇 사람들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들의 공헌은 매우 유의미하며 오래도록 지속되지만, 그들의 행동은 불쾌함부터 끔찍함까지의 범위 어딘가에 자리하기도 한다.” 아르코산티를 관리하는 코산티 재단은 “훌륭한 사상을 지지한다고 해서 창작자의 행위를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인정하면서 솔레리의 유산을 재고하도록 독려했다.

아르코산티와 솔레리를 완전히 분리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르코산티는 솔레리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1970년 발표한 저서 『아르콜로지: 인간이 생각하는 도시 이미지(Arcology: City in the Image of Man)』에서 현대 도시의 그림자를 고발하며 바다와 육지와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아르콜로지를 꿈꿨다. “아콜로지는 생태적인 특징과 차원을 가진 건축 유기체이다. 이는 삶은 담은 생태로서의 건축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바위투성이의 메사에 키 큰 삼나무들이 우뚝 솟아있고, 에셔풍의 오리가미로 만든 듯한 돔과 큐브로 이루어진 아르코산티는 반성과 자아 성찰을 위해 설계되었다. 특히나 이곳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토형으로 주조되었다는 점에서, 생태계의 일부이자 매우 인간적인 풍경이다.“건축가의 관점에서 아르코산티는 형식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좋은 기회였다.” 재직 중 아르코산티의 인테리어 개조 작업을 맡았던 설계자 케빈 파파가 말했다. “현장의 건축가와 사무실의 건축가 사이에 큰 간극이 있기 마련인데, 아르코산티에서 작업하며 그 간극을 메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아르코산티는 도시의 실험실로 알려졌다. 현대 도심과 무질서하게 팽창한 그 주변 지역과 대조적으로, 이곳은 거주자들이 30초 만에 출퇴근할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조밀하게 설계되었고 조명과 난방에 수동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여 환경 발자국을 최소화한다. 남쪽에 면한 개방된 작업장인 세라믹 앱스는 태양이 하늘의 낮은 각도에 있는 여름에는 그늘이 생겨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일부 주택 단지는 온실과 연결되어 열은 물론 식량도 공급받는다. 이 단지는 수평이 아닌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보행로, 정원 및 기타 공공장소용으로 사용될 법한 길을 최소화했다. 그 중간 지점인 볼트(Vaults)는 대형 아치형 천장 양식이 특징으로 만남과 공연 장소로 사용되며, 또 다른 공공 공간인 파운드리 앱스는 마을의 주요 수입원인 청동 녹인 물을 모래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풍종의 작업장이다.

아르코산티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은 1989년에 헌납되었고, 그 정착자의 규모는 초기 예상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처음에는 주민의 규모를 1,500명 정도로 예상했으나 현재 약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일부는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살아온 이들이고 나머지는 금속가공과 실트 주조 작업에 대한 인턴십과 워크숍을 위해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전 세계에서 연간 25,000명 가까운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건축가 제프 스타인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초기 건물을 짓던 당시 솔레리의 유토피아적 비전과 공동체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1970년대 일찌감치 전향했다.

“아르코산티는 상상력의 승리를 상징한다.” 코산티 재단 이사회 회원인 스타인은 말한다. “지구상 가장 새로운 생명체이자 인류가 창조한 가장 크고 비싼 문화적 산물인 도시도 다른 생명체들처럼 효율적이고 즐겁게 작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생명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면 어떨까? 더 적은 재료와 짧은 시간 안에서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아르코산티는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시 디자인에서 ‘복잡성’과 ‘복합성’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우리 인간이 그 안에서 번성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인 최초의 시도를 상징한다.”

알리 깁스는 교육, 농업, 디자인을 배울 계획으로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이후 요리사, 바텐더, 고객 서비스 담당, 주조 공장 직원으로 일했다. 높은 사막의 풍경은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이곳에서 보낸 첫 몬순 계절 동안 메마른 대지 위에 비를 쏟아붓는 진정한 자연의 힘, 파스텔 빛으로 물든 우뚝 솟은 뭉게구름이 주는 안도감을 경험하며 이 사막에서 삶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굳어졌다.” 지금은 청동 세공가이자 조각가가 된 깁스가 회상한다. “나는 금세 아르코산티의 주거 공동체에 빠져들었고,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 온 예술가와 장인 집단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주거지가 사막에서 상상을 실현한 건축적 실험, 그 이상의 의미라는 것은 분명하다. 향후 50년을 전망할 때, 세계가 기후변화 문제와 스마트 시티 같은 공동체의 재창조할 필요성에 대응하며 고군분투하면서 아르코산티의 의미는 더욱 널리 공명할 것이다.

“아르코산티를 방문한 이가 느껴야 하는 것은 이곳이 이례적인 지역이 아닌, 인류 역량이 증명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파파는 말한다. “아르코산티가 마치 유토피아처럼 잘못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은 이상주의적 공간이 아니다. 올바른 영양소와 보살핌이 있다면 전 세계 어디서든 자랄 수 있는 씨앗이다.”

“아르코산티는 상상력의 승리를 상징한다.”

“아르코산티는 상상력의 승리를 상징한다.”

kinfolk.kr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웹사이트 구조화, 웹사이트 트래픽 분석 및 맞춤형 광고 노출을 위해 쿠키를 사용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자사쿠키 정책을 참고하십시오. kinfolk.kr을 계속 사용하시려면 "동의하기"를 눌러 진행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