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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ts & Culture

탕헤르의
영화관.

이토 바라다는 자신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도시를 위해 영화관을 만들었다.
글 by Aida Alami. 사진 by Emma Trim & Karima Maruan.

이토 바라다는 어머니와 함께 탕헤르로 이사한 일곱 살 때 황홀한 영화의 세계를 발견했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시내에 있는 극장인 시네마 룩스Cinema Lux에 자주 놀러 갔다. 그곳에서 영사기사는 그녀를 옆에 놓인 의자에 앉혀 영화를 보여주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성공한 멀티미디어 비주얼 아티스트가 된 바라다는 여전히 영사기가 투영하는 영화 감상을 즐긴다.¹ 하지만 이제는 모로코 전역에 방치되었던 극장을 재생시킨 상영관에서 영화를 감상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 탕헤르의 구시가지에는 시네마테크 드탕헤르가 있다. 이곳은 모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 공간이다. 영화관뿐만 아니라 미술관과 카페도 품고 있는 이곳은 그랑 소코Grand Socco라고도 불리는 도시의 명소 아브릴 1947 광장 9번지에 있다.

약 15년 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다 쓰러져가던 시네마 리프Cinema Rif를 매입한 바라다는 오늘날 탕헤르를 상징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베이루트 함라에 있던 카페들처럼, 당장 손대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녀가 뉴욕에서〈줌〉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전부 네온사인과 에어컨이 설치된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있다. 자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탕헤르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바라다는 도시의 급속한 고급화에 반대한다. “사람들이 정원을 말끔히 다듬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다. 가로등도 너무 많이 세운다.” 그녀가 한탄한다.

2006년에 개관했고 지금은 비영리로 운영되는 시네마테크 드탕헤르는 도시 문화의 구심점이 되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이 극장은 천천히 개조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운 겨울에는 관람객에게 담요를 제공해야 했다. 이제는 관광객, 현지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커피숍을 찾는다.

바라다는 활동가와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 하미드 바라다는 1960년대에 정치 운동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년간 망명 생활을 하다가 사면을 받은 모로코의 기자였다.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탕헤르에 살면서 그녀는 항상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고 탕헤르에서 예술영화관을 여는 것이 도시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그럴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그녀는 극장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 상영을 포함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행사가 풍성하게 열리는 이곳은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 영감을 얻고 창작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보수를 맡은 건축가는 오래된 화강암 바닥을 공사하고 인근 카사바라타 벼룩시장에서 구한 빈티지 장식품으로 파랑, 노랑, 빨강의 강렬한 색감을 연출했다. 입구에 설치된 구식 천막에는 상영 중인 영화 제목이 표시되어 있다. 신문처럼 펼쳐지는 월간 상영 프로그램에는 「히로시마 내 사랑」, 「이브의 모든 것」, 「나의 달콤한 페퍼 랜드」 같은 기념비적 영화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액자에 넣는다. 또 이곳은 모로코에서 가장 마지막은 아니더라도 오픈 릴 필름을 상영하는 몇 남지 않은 극장에 속한다.

전반적인 영화관 운영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지만 바라다는 여전히 이곳의 일원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은 아직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다. 사진작가로서 그녀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도시를 수년간 거닐며 사람들을 사귀었다. 탕헤르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풍부한 경험이 그녀의 예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나쁜 평판이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탕헤르는 항구도시다. 이곳 사람들은 생존력이 대단하다. 오랜 세월 경제적으로 방치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곳은 자유의 도시가 되었다.”

탕헤르는 매력을 쉽게 드러내는 도시가 아니다. 유럽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을 거치는 사람은 많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그 비밀을 밝히고 모험에 뛰어들려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하다.” 바라다가 말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탕헤르에서 장화를 신고 비를 맞으며 진흙탕을 걷거나 길거리에서 칼린테(병아리콩 파이)를 먹을 때만큼 행복한 적은 없었다. 이곳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곳은 없었다.”

(1) 바라다의 작품은 모로코나 지중해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있다. 올해 초 이스트 햄튼의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녀는 탕헤르의 정원에서 얻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 직물 콜라주, 1960년에 발생한 아가디르 지진을 표현한 종이 콜라주, 모로코 전통 고리버들 공예 기법을 활용한 가구 등을 선보였다.

(1) 바라다의 작품은 모로코나 지중해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있다. 올해 초 이스트 햄튼의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녀는 탕헤르의 정원에서 얻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 직물 콜라주, 1960년에 발생한 아가디르 지진을 표현한 종이 콜라주, 모로코 전통 고리버들 공예 기법을 활용한 가구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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