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는 2003년에 로스앤젤레스를 떠났다. “릭 오웬스가 파리로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으로 이사했다.” 그가 누구인지, 우리 대화가 뻔히 들릴 것 같은 방 뒤편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그의 성까지 붙여서 불렀다. (오웬이 파리로 간 이유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모피 회사 〈레비용Revillon〉의 예술 책임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로스앤젤레스를 사랑하는 라미는 이 도시에 처음 찾아온 손님을 데려갈 만한 명소를 줄줄 읊었다. 베니스 해변의 스케이트 공원과 산책로, 그녀가 손가락에 문신을 새겼다는 팜스프링스, 전설의 샤토 마몽. “계곡에도 꼭 데려가야 한다!” 그녀가 말한다. 내게 LA 이야기를 할 때 라미는 꼭 “당신이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당신이 있는 LA로 돌아갈 거다! 나는 그때 당신이 있는 LA를 떠났다. 이런 식으로. 이 도시를 그리워하는 여성이 찾은 나와의 작은 연결점이었다.
웨스트 할리우드에 있는 릭 오웬스의 옷 가게에서 라미의 조수인 재닛 피슈그룬트가 〈리졸리Rizzoli〉에서 출판된 멋진 그림책 「릭 오웬스: 가구Rick Owens Furniture」 한 부를 내게 보내왔다. 수년간 라미는 남편과 함께 가구 시리즈를 제작했는데, 실용적이고 편안한 가구라기보다 예술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에 가까웠다(LA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최근의 전시회에는 대리석, 콘크리트 및 소뼈로 만든 작품이 소개되었다). 이 책은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가구 화보와도 비슷하지 않다. 토스카나, 두바이, 몬트리올, 사해를 거치는 여행기, 다니엘 레빗과 장 밥티스트 몬디노가 찍은 부부의 모습과 가족 사진첩, 아트북이 한 권에 담겼다. 알루미늄을 부어 만들었으며 엉덩이가 놓이는 위치에 두 개의 뿔이 솟아 있는 ‘뿔 의자’ 사진 옆에는 황금 충전재에 여러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라미의 앞니가 클로즈업되어 있다.⁴ 수정 재질의 변기, 담배꽁초, TV 리모컨은 부부의 집에 있는 물건을 찍은 것이다. 〈오웬스코프〉의 본사가 있는 플라스 뒤 팔레 부르봉(프랑스 국회의사당 부지) 소재의 5층 건물 일부가 두 사람의 집이다. 공장에서 지게차를 몰거나 생모리츠의 눈 속을 걷는 라미의 사진도 있다.
책 속 사진에 붙은 설명이 한두 단어로 되어 있어서 라미에게 몇 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1995년 12월, 할리우드’라 적힌 사진에서 라미는 1950년대 머그샷처럼 보이는 두 개의 커다란 사진 앞에 서 있다. 한 무더기의 팔찌를 낀 그녀의 왼팔은 골반을 짚고 있고 오른손은 담배를 끼운 채, 마치 그녀가 담배 광고에 나오는 화려한 스타이기라도 한 듯 높이 들려 있다. 그녀는 모델 같다. “이 사진은 내가 〈레 듀 카페〉를 짓던 중에 찍었다. 그때 길 건너편에 릭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가 첫 번째 패션 라인을 발표할 무렵이었다. 컬렉션이라 하기도 뭣했다.” 두 사람은 그 스튜디오에서 함께 살고 일했다. 오웬스와 라미에게는 치열한 창작의 시기, 즉 ‘축제의 시간’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다. 내가 예쁘게 나오기도 했다.”
“공연을 하고 싶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넓은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을 보면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2013년 벨기에 몽스’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 시리즈에서 라미는 거대한 대리석 판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이곳은 벨기에와 프랑스 사이에 유일하게 남은 검은 대리석 채석장이다.” 그녀가 설명한다. “지하로 60미터를 내려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이너마이트로 대리석을 채취한다.” 그녀는 릭 오웬스의 가구 라인에 사용할 크고 흠 없는 대리석 판을 찾으러 그곳에 갔다. 나중에 그것은 침대와 의자, 테이블로 만들어졌는데 그 무게가 상당했다. 라미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가장 아름다운 표본(‘줄무늬가 없는 것’)은 어떻게 찾는지 금방 깨우쳤다. 그러다 그녀의 화제는 하얀 시벡 대리석으로 만든 아부다비의 거대한 모스크, 검정 대리석이 검정이 된 이유(석탄과 관련이 있다)로 넘어갔다가 이제는 “우리가 세상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액체 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콘크리트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말한다. 사실 어쩌다 나온 이야기 몇 가지가 이어지다가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기도 하고 딴 길로 새기도 했다. 라미와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2016년 4월, 생파고 퐁티에리 에베니스테리 다곤’이라 적힌 사진에서 라미는 공장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있다. 청소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 “다들 트럭을 타고 어디 가버린 모양이다.” 그녀가 말한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아니면 내가 그냥 장난 삼아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