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절차는 짧게는 1년 반, 일반적으로는 훨씬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회사와 고객과의 관계는 계속된다. 폭풍이나 질병으로 손상된 정원에 식물을 다시 심으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1 “가치는 과정에 있습니다.” 카룬초는 디자이너보다는 정원사로 불리는 편이 좋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디어는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그저 잘 일구면 되는 겁니다.”
그는 대개 기존의 정원과 기후를 지침으로 삼고, 새로운 종을 도입하기보다는 현장에 이미 존재하는 식물과 나무를 활용한다. 잔디와 연못이 엄밀한 직사각형으로 교차하는 마드리드의 개인 정원에서처럼 그가 구조물을 만들 때는 정원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기하학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들이 풍경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발상이 디자인으로 가장 잘 구현된 곳으로 소나무가 지나치게 무성해진 메인주 해안의 섬을 꼽을 수 있다. 그곳에서 카룬초는 단순히 일부 나무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바다가 보이도록 전망을 개방하고, 이끼와 지의류로 이루어진 자연적 정원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일한다. 현장을 방문한 지 한 달 만에야 비로소 영감을 받아 펜을 종이에 대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나 이러한 창의적인 반응은 항상 질서에 대한 감각, 즉 그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 10년 동안 익힌 ‘문법’을 통해 표현된다. 예를 들어, 남부 이탈리아에 우아하게 굴곡진 대열로 심은 포도나무는 겨울에 방문한 포도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마세리아(농장)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 마세리아에서 눈 내리는 것을 보면서 카룬초는 “음악이 주는 놀라운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현장의 요구들, 즉 태양과 관련된 덩굴의 방향, 포도밭의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요건들을 중재하여 단순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 경험이었다. 요구들을 중재한 경험이었다. 4년이 걸린 그 프로젝트 덕분에 카룬초는 피렌체의 권위 있는 예술과 드로잉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으로 인정받았다.
형식적인 엄밀함 이상으로 카룬초의 작품을 잘 정의하는 것은 정원을 인간과 자연 사이의 매개체로 이해하는 인식이다. 그의 말처럼 “화분 두 개가 있는 발코니나 꽃병 한 개가 있는 창문”부터 그가 카탈루냐에서 만든 깔끔하고 네모난 밀밭 농경지의 ‘농업 정원’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넓은 정의다. 그의 디자인은 일반적으로 정원의 사적인 공간과 그 너머의 넓은 공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린다. 조밀한 식물 배치와 잔디밭은 모두 계곡과 산, 하늘을 포함하는 구성의 한 부분이다. 간소한 색조는 자연의 풍부한 스펙트럼과 조화를 이룬다.
어린 시절, 카룬초는 스페인 남부 깊은 협곡 위에 아찔하게 세워진 마을 론다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는 땅이 갑자기 사라지는 곳의 난간 사이로 눈을 크게 뜨고 건조한 안달루시아의 풍경을 바라보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많은 대상을 향한 나의 열정은 바로 그 절벽에서 바라본 그 시각, 그 놀라운 장소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정원사인 그에게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자연 세계 안에서 인간의 자리는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수많은 상을 받으며 40년을 일한 뒤에, 그는 그 답을 찾았을까?
“그건 보편적인 질문이지만 지금처럼 이 질문이 중요한 때는 없었습니다. 정원은 항상 정치를 넘어서고, 종교를 넘어서고, 사람들 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장소였습니다. 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변화하여, 우리가 오직 과학적으로만 자연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